[여의도포럼] 한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K-CSR), 지금부터다
코로나19 백신 등장으로 드디어 팬데믹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 사태의 후유증이 얼마나 깊고 오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팬데믹 사태가 노동시장과 기업환경의 심각한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전염병이 이제 과학이 치유할 수 없는 사회적 전염병이라는 재난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유럽 국가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위기 그룹에 대한 대응책 준비에 바쁘다. 이들 정부가 내놓은 핵심 과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동시장 통합 정책의 강화다. 이어 교육·기술 및 연구 투자, 일자리 증가를 위한 조세 개혁, 그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행정 개혁 등이다. 나는 여기에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기업가정신 고양을 추가하고 싶다. 현재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최근 비대면 디지털 시대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몇몇 플랫폼 기업 대표들의 통 큰 기부 선언이 있었다. 수익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을 행하는 내용이다. CSR은 우리나라에서도 사회공헌 사업으로 널리 퍼져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이미 일부 벤처기업 사례가 주목받은 바 있다.
CSR의 기본 정신은 기업이 경제적·환경적·사회적 관점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책임을 나누는 데 있으며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다. 무엇보다 인권과 환경을 기본 가치로 하는 기업문화 조성에 초점을 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는 기업이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이윤 창출이 사회로부터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위기 극복 상황에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 ‘기업 이익 그 이상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관계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자의 78%가 답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디지털화와 동시적으로 발생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화와 비대면 문화는 시장의 희비를 가져왔다. 역대급의 파산 업체가 발생하는 비극과 동시에 초호황을 이루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플랫폼 시장이다. 플랫폼 시장의 성장은 디지털화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수많은 기업과 개인 그리고 디지털화에 따른 구조 변화는 엄청난 실업률 급증과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은 플랫폼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은 음식·물자 배달을 급증시켰고 이를 수행하는 배달노동자의 건강권·생명권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현행 근로기준법은 라이더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 이들은 4대보험 대상자가 되지 못하며 항상 재난 위기를 안고 산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생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 즉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의 ‘우분투’ 정신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과감한 실천이다.
한국 사회에서 CSR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며, 이후 대기업 중심으로 사회공헌 지출이 급증했다. 2019년 한 해 100대 기업의 총 지출액이 1조7000억원이나 된다. 양적으로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러나 질적 측면에서 사업에 대한 국제기구 평가는 매우 낮은 편이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영역별 평가점수도 평균 이하이며 그중에서도 노동 인권 영역에 대한 이행 정도가 아주 미흡하다. 저임금, 비정규직 활용, 외주 확대 등도 이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한국 CSR의 내용은 사회사업과 혼돈돼 사용되고 있다. 자사의 재단을 설치하고 현금 및 현물 기부, 임직원 봉사 활동 등의 자선적 사업이 일반적이다. 사업 내용을 바꿔 배달기업의 경우 일선에서 뛰는 라이더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노동환경 조성에 투자한다면 이는 아주 훌륭한 사회적 책임의 이행이 될 것이다. 또한 디지털화로 일자리 감축을 서두르기에 앞서 직원에 대한 정보기술(IT) 교육과 재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일부를 기업이 선도적으로 시작한다면 고용위기 극복에 진정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팬데믹 위기를 계기로 한국적 ‘K-CSR’의 방향과 내용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기를 바란다.
신필균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이사장·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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