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에 쫑긋한 말의 귀, 그리고 1억년 신비따라 벚꽃엔딩

남호철 2021. 4. 1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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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개마고원' 전북 진안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 도립공원 남부주차장 인근에서 본 마이산 일출. 오른쪽 마이산 입구에서 주차장을 지나 탑영제까지 U자 형태로 돌아가는 십리벚꽃길이 마지막 화려함을 장식하고 있다.


‘북은 개마고원, 남은 진안고원’. 전북 진안은 고원 마을이다. 산이 많고, 산과 산 사이를 물길이 굽이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를 말할 때 무주·장수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무진장’ 지역이다. 덕분에 뒤늦은 ‘벚꽃엔딩’도 즐길 수 있다.

진안의 대표적인 산 가운데 하나가 말 귀를 닮았다는 기이한 봉우리인 마이산(馬耳山)이다. 프랑스 여행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최고 점수인 별 3개(★★★)를 받은 곳이다. 큼직한 바윗덩어리 2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힌 듯 독특하고 신비롭다.

마이봉은 계절에 따라 달리 불린다.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文筆峰)이다.

그 바위를 만나러 멀리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길을 택했다. 더 많은 보석 같은 경치를 보기 위해서다. 출발지는 마이산 남부주차장. 매표소를 지나면 곧바로 왼쪽으로 고금당·비룡대 안내판이 보인다. 다시 삼거리에서 고금당 등이 적힌 푯말을 따라 왼쪽으로 간다. 고금당에는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였다고 전해지는 자연암굴인 나옹암이 있다. 이곳에서 멀리 마이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이산은 온통 바위로 이뤄져 있다. 1억년 전 호수에 쓸려온 모래와 자갈이 눌렸다가 솟구쳐 암봉이 됐다. 말의 귀처럼 쫑긋한 거대한 두 암봉이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다. 암마이봉(686m)과 수마이봉(680m)이다. 자갈과 모래를 섞어 비빈 콘크리트를 굳힌 것 같은 역암(礫巖)이 풍화되면서 벌집 모양의 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질 구조인 타포니(taffoni·풍화혈)다.

비룡대에 다다르면 빨간 철제 계단이 아찔하다.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암릉이 이어지고 반대쪽에 비룡대(527m)가 우뚝하다. 수마이봉이 암마이봉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현판 글씨가 용이 날아오르는 듯 꿈틀댄다. 황금빛 고금당 왼쪽 멀리 거대한 광대봉(609m)이 우뚝하다.

봉두봉(540m)으로 오르는 길에 멀리 비룡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코끼리 바위가 정자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투구를 쓴 용사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다.

봉두봉 아래 탑사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암마이봉 입구로 간다. 비룡대에서 실루엣으로 바라본 암·수 마이봉이 압도적인 실체로 턱 하니 서 있다. 된비알을 오르다 암마이봉 허리를 끼고 왼쪽으로 내리막길을 걷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만난다.

수마이봉 중턱에 세로로 깊게 파인 화엄굴 내부.


계단을 오르면 초소와 벤치가 있는 암마이봉 입구다. 암마이봉 정상까지 극심한 가풀막을 450m가량 올라야 한다. 중간에 수마이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수마이봉 중턱에 화엄굴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곳에서 정상은 가깝다. 독특한 글씨체의 정상석을 지나면 탑영제 등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 잘록한 능선인 천왕문에 내러서 화엄굴에 오른다. 세로로 깊게 파인 동굴 내부 바위 속에서 아들을 낳게 한다는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돌탑 80여기가 있는 탑사, 드라마 촬영지인 탑영제를 거쳐 남부주차장으로 돌아온다. 그 길에 절정을 지난 벚꽃잎이 꽃비로 흩날린다. 일대 십리벚꽃길이 장관이다.

4형제의 이름이 새겨진 타포니 속에 자리잡은 수선루.


진안에는 타포니 안에 들어선 정자도 있다. 마령면 강정리 수선루(垂仙樓)다. 조선 숙종 때 연안 송씨 4형제가 선조의 덕을 기리고 심신을 수련하기 위해 섬진강 변에 지었다. 마령면 평지리 쌍계정은 타포니는 아니지만 바위 동굴 안에 지어졌다. 경남 하동 쌍계사 입구 바위벽에 고운 최치원이 쓴 쌍계석문(雙磎石門) 글씨를 모방한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쌍계(雙磎)·석문(石門) 글씨를 크게 새긴 바위 속 쌍계정.

여행메모
고금당~암마이봉 회귀 코스 4.5시간
전국 유일 새끼 돼지 보양식 ‘애저찜’

수도권에서 진안으로 간다면 익산포항고속도로 진안나들목이 편하다. 마이산에는 남부와 북부 두 개의 주차장이 있다. 진안나들목에서 10분 거리인 북부주차장이 암마이봉과 가깝다.
빨간 철제 계단이 이어진 암릉 위에 올라앉은 비룡대.


고금당~비룡대~봉두봉~암마이봉 코스는 남부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원점회귀 코스는 8.5㎞에 순수 산행시간만 4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더 길게 산행하려면 마령면 강정리의 함미산성~광대봉을 포함하지만 이 구간은 산불방지기간인 5월 15일까지 출입금지다.

마이산 입구에 산채 음식을 내는 식당이 많다. 진안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양식 애저찜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사료 먹기 전인 생후 1개월 된 새끼 돼지에 마늘·생강 등을 넣고 푹 삶아 초장에 찍어 먹는 요리로, 닭백숙 맛과 비슷하다.

가위를 주제로 한 '진안가위박물관'도 볼만하다. 용담댐 수몰예정지였던 용담면 수천리에서 고려시대 철제 가위 5점이 출토됐고, 마이산의 형상이 '벌린 가위' 모습이어서 세워졌다.

진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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