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800개 쌓인 아파트.. "택배차 출입 못하면 한 개당 20분"

김종훈 2021. 4.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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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택배노조,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개별 배송' 거부..입주자대표회의와 조정안 필요

[김종훈, 권우성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택배차량 지상출입 금지'를 결정한 가운데, 14일 오후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협상을 요구하며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택배를 배달 한 뒤 직접 찾아가도록 쌓아두고 있다.
ⓒ 권우성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택배차량 지상출입 금지'를 결정한 가운데, 14일 오후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이 협상을 요구하며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택배를 배달 한 뒤 직접 찾아가도록 쌓아두고 있다.
ⓒ 권우성
 
"직접 단지를 걸어보면 택배노동자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카트를 끌고 단지를 도보로 이동해 배송을 하면 골병이 든다. 하나 배송하는데 20분 이상 걸린다. 하루 수백 개를 배송해야 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4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단지앞 길가에 800여 개 택배가 쌓였다. 이 아파트는 총 4932세대, 53개 동으로 아파트 한 쪽 길이만 해도 1-2개 버스 정류장 거리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우체국본부 윤중현 본부장은  "저 오르막길을 어떻게 카트로 배송을 하냐.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 여러차례 대화를 나누자고 요청했음에도 아무런 답이 없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이 아파트의 주민들은 욕설과 불만을 쏟아내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택배노조는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가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막자 이날 오후부터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 물건을 쌓아놓고 개별배송을 중단했다. 택배차량의 아파트 지상출입을 금지시킨 아파트 주민들이 직접 택배를 찾아가게 만든 것이다.   (관련기사 :  택배차량 지상출입 금지 아파트 전국 179곳... "골병든다" http://omn.kr/1sshx ) 

그라시움 입주자 대표회의 "갑질 매도, 심히 유감"
  
 택배노동자가 높이가 낮은 저탑차량에서 상자를 꺼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작업하고 있다.
ⓒ 권우성
 
 택배차량에서 물건을 꺼내 아파트 단지 앞에 쌓아두고 있다.
ⓒ 권우성
앞서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단지 내 지상도로 차량 통행을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모든 택배차량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차를 댄 뒤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거나 저탑차량을 이용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가 2.2~2.3m라 보통 높이가 2.5m에 달하는 일반 택배차량은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반 택배차량을 저탑차량으로 개조할 경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온전히 택배노동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날 오전 10시께 입주자대표회의는 택배노조에 공문을 보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해당 아파트 단지는 지상으로 차량이 통행할 수 없도록 건축됐고 택배회사에 2020년 3월부터 수차례 지상운행을 자제하고 저상차량 배차를 통한 지하주차장 운행 및 배송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아파트 지하에 일정 공간을 마련해 기존 탑차로 지하공간에 적치하고 이를 다시 저상차로 지하 주차장 내에서 배송하는 통합택배 시스템을 제안하는 등 원만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라면서 "그럼에도 노조가 소통없는 일방적인 협의 중단 및 기자회견, 언론제보를 통한 보도 등으로 입주민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특히 아파트 단지 및 입주민들을 갑질 프레임으로 매도한 행위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 택배노동자가 불편한 자세로 저탑차량에서 택배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 권우성
이날 그라시움 아파트 개별배송 중단에 참여한 택배노동자들은 롯데택배와 우체국택배 소속이다.  CJ대한통운과 한진, 소규모 민간택배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일부 택배사들이 저탑차량 운행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노동자들 입장에서 거절하기 너무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추가적인 압박까지 느끼고 있다.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도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에게 '정문 앞 배송에 동참하지 않는 택배사들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이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곤란함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라시움 아파트 주민 "주차장 높이 조절하면 된다"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에서 물건을 손에 든 주민들이 오가고 있다.
ⓒ 권우성
 
 '택배차량 지상출입 금지'에 항의하는 택배노동자들이 아파트단지 앞에 택배 수백개를 쌓아두고 직접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날 기자회견 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윤중현 본부장은 "협의를 통해 단지 내 시속 20km 이하 운행 등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단지 내 운행중단을 선언한 것은 노동자들 입장에서 배송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만난 그라시움 아파트 주민 B씨 역시 "택배차량 지상진입 시 노약자 사고위험 및 보도블록 훼손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저상탑차 및 손수레 등을 이용해 배송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혹독한 일"이라면서 "결국 대안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구 높이를 높여 일반 택배차량이 이용할 수 있도록 높이는 것 뿐이다. 공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입주자들이 나눠서 내면 된다"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대단지 아파트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해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대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3m에서 2.7m 이상으로 높일 것을 의무화하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다산신도시 아파트들의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와 택배사협의회가 합의해 아파트 내 특정거점에 택배를 전달하는 '거점 배송' 방식을 채택했다. 또 입주자와 협의해 특정 시간대에만 지상출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도 마련됐다. 

하지만 2016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는 바뀐 규칙이 적용되지 않아 저탑차량이 아닌 이상 출입이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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