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주민 소원 공공주택, 오세훈이 없던 일로 할까 걱정"

신나리 2021. 4.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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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 환영' 쪽방촌 주민 vs. '개인재산 침해' 소유주

[신나리 기자]

 2~3층짜리 건물에는 '신도시 투기세력 LH, 서울역 동자동 공공개발 자격없다'는 대형 현수막도 걸려있다.
ⓒ 신나리
  
 동자동 주민들이 모여 서로의 집수리를 돕거나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동자동사랑방' 앞에 '공공주택사업환영'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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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골목 곳곳에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철학관, 식당, 부동산, 약국을 비롯해 전봇대 곳곳이 빨갛게 물들었다. 2~3층짜리 건물에는 '신도시 투기세력 LH, 서울역 동자동 공공개발 자격없다'는 대형 현수막도 걸려있다. 지난 2월 쪽방촌 소유주들이 모인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다.

쪽방촌 주민들의 방문 앞 스티커 내용은 다르다. '우리 집은 공공주택 사업 환영해요', '우리도 사람이다', '집다운 집'이 쓰여있다. 동자동 5번지, 8호 방 주인은 문 앞에 '쪽방 떠나고 싶다. 공공주택 환영'이라고 썼다. 동자동 주민들이 모여 서로의 집수리를 돕거나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동자동사랑방' 앞에는 '공공주택사업환영'이 붙어있다.

지난 2월 5일 정부가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한 이후 동자동이 시끄러워졌다. 14일 <오마이뉴스>가 만난 쪽방촌 주민들은 "정부가 처음으로 쪽방촌 사람을 사람 취급하며 공공주택을 마련한다는데, 오세훈이 그걸 다 없던 일로 할까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마침 이날, 국민의 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는 공공이 주도하는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보겠다며, 쪽방촌 소유주들과 LH용산특별본부에서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 시간에 맞춰 쪽방촌 주민들은 "정작 쪽방촌에 사는 건 우리들인데, 국민의 힘은 우리를 간담회에 초대하지도 않았다"며 LH용산특별본부 앞에서 '공공주택사업 중단없이 추진하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쪽방 재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쪽방 주민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재정착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2월 5일)했다. 여기에는 LH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나서며,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와 공공분양주택 200가구, 민간분양주택 960가구 등 총 2410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쪽방촌 주민 "평생 소원인 공공주택, 국민의 힘이 빼앗나"
 
 쪽방촌 주민들이 14일 LH용산특별본부 앞에서 '공공주택사업 중단없이 추진하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 신나리
 
정부가 영구임대주택 건설뿐 아니라 지역을 개발하는 동안 주민들이 옮겨 살 이주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한 후 쪽방촌 주민들은 '공공주택'을 환영했다.

20여 년째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조아무개(78)씨는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어떤 지경인지 아느냐. 방에 물이 새고 있다"며 "여든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공공주택에 살 수 있게 됐다. 너무 설렌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그의 방은 170cm가 안 되는 조씨가 누워 두 발을 뻗으면 꽉 차는 1평도(3.3㎡) 채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한 달에 방값으로 36만 원을 내는 조씨는 "계좌이체로 방세만 받아 갈 뿐, 보일러가 터져도 고쳐주지 않았던 집주인이었다"면서 "정부가 재개발한다니까 이제와서 얼굴을 들이민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쪽방촌에서 10여 년째 부동산중개를 하는 김아무개(63)씨도 "정부 발표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쪽방촌 소유주들이 붉은 깃발을 들고 와서 집마다 꽂았다"고 말을 보탰다.

조씨를 비롯해 현재 쪽방촌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공공주택사업 중단'이다.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재개발에는 주민들의 공간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4월 7일), 쪽방촌에 찾아와 "어차피 시장 바뀌면 (공공주택사업) 정책도 바뀌게 되어 있다"고 말하던 쪽방촌 소유주들의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우리 쪽방촌 사람들이 수십 년간 최악의 상황에서 꼬박꼬박 월세 내며 바라던 게 바로 공공주택"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공공주택을 마련한다는데, 국민의 힘과 쪽방촌 소유주들이 공공주택 계획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짓밟으려는 것"이라고 힘을 줬다.

연대발언자로 나선 최현숙 서울시인권위원회 위원은 "국민의 힘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아예 대놓고 가진 자들의 편을 들면서 탐욕스러운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면서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퇴행으로 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쪽방촌 소유자 "정부, 개인재산 빼앗아"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14일 "LH 주도 공공개발의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정부가 졸속 행정으로 주민동의 없이 동자동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 신나리
사실 서울시는 동자동 쪽방촌의 민간개발을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적이 있다. 민간 개발을 지지부진하게  만든 건 오히려 재개발을 추진하던 조합측이라는 게 쪽방촌 주민들의 주장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5월, 5층 20m로 건축할 수 있었던 동자동의 건축기준을 평균 12층, 최고 18층 이하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가 동자동을 '특별계획구역' 지정하며, 내건 조건은 '2020년 5월까지 세부 정비계획'을 제출하라는 것. 하지만 조합은 서울시의 요구 날짜에 맞춰 세부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고, 결국 동자동은 다시 기존 5층 20m의 지구단위계획으로 환원됐다.

이에 쪽방촌 소유주들은 "오랫동안 민간이 개발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었다"면서 "대책위가 민간기업과 개발을 준비하는데, 난데없이 정부가 끼어들어 개인의 땅을 개발한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국민의 힘 측과의 간담회에서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LH 주도의 공공개발의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정부가 졸속 행정으로 주민동의 없이 동자동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30년 이상된 노후불량주택이 전체의 80% 이상'이라고 밝혔지만, 소유주들은 이를 부정했다. 대책위는 "쪽방 형태의 건물은 전체 면적의 20%에 불과하다"며 "일부에 불과한 쪽방이 동자동 전체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간이 개발하게 하면, 이른바 '따뜻한 민간개발'로 쪽방 거주민에게 7~8평의 공공임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를 마친 대책위와 국민의 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는 직접 쪽방촌을 둘러보려 나섰다. '집으로 돈 벌지 말자, 집으로 착취 말자', '투기세력 OUT, 공공주택 환영'의 손팻말을 든 쪽방촌 주민들이 이들을 향해 "우리도 주민인데, 왜 우리는 만나주지 않느냐. 우리랑 이야기 좀 하자"고 외치자 경찰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면 미신고 집회"라며 주민들을 막아섰다.

20여 분 쪽방촌을 둘러본 이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날 오전,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주택 환영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LH용산특별본부 앞에 이번에는 '공공주택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현수막을 내건 소유주들이 모였다. 쪽방촌 소유주로 구성된 대책위 관계자들이었다. '단결', '투쟁'이 새겨진 붉은 조끼를 입은 이들은 '용산 재산 누가 지키나, 용산구민 지켜본다'는 팻말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대책위 관계자는 "겨우 동자동에 건물 하나 있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집을 정부가 빼앗아 가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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