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지친 그들 '보복 여행' 초읽기..투자 잇따르는 여행업계
티웨이항공(800억원), 에어프레미아(650억원), 마이리얼트립(430억원), 노랑풍선(200억원), 트리플(100억원)….
최근 사모펀드와 벤처업계에서 투자받거나 인수된 여행 기업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한창임에도 투자의 시계는 돌아간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그간 업계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은 상위권 업체들을 중심으로 ‘보복적 여행’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업체들은 ‘프리미엄 소그룹 안전 여행’ ‘인공지능(AI) 여행 가이드’ 등 고도화된 서비스 개발에 투자하며 암중모색하고 있다.
▶이 시국에 투자 줄 잇는 여행업계
▷구조조정 후 생존 업체가 승자 독식
티웨이항공은 최근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로부터 8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사모펀드 JC파트너스는 코차이나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지난해 문을 연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AIR PREMIA)를 인수했다. 마이리얼트립도 지난해 432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미국, 싱가포르, 프랑스 등 국내외 유수 투자사가 참여했다. 국내 1위 직판(직접 판매) 전문 여행사 노랑풍선은 지난 3월 유리한 조건으로 200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 전환사채(CB) 100억원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100억원을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 모두 0%로 발행한 것. 빅데이터 기반 여행 플랫폼 기업 트리플도 야놀자로부터 100억원대 투자를 받아냈다.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에서 수천억원의 투자가 잇따르는 이유는 세 가지다. 1년 넘게 해외여행을 못 간 사람들의 ‘보복적 여행’ 수요가 쌓였고, 이 수요를 업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주요 업체들이 독식할 것이라는 전망, 그리고 백신 보급이 속도를 내며 부분적으로나마 여행 재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방역에 성공한 국가들이 서로 자유로운 여행과 방문을 허용하고 자가 격리도 면제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이 대표적이다.
외신에 따르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오는 4월 19일부터 양국 간 트래블 버블 시행에 합의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최근 지역 내 신규 확진자가 0명인 상태를 유지 중이다(해외여행객 제외). 대만도 지난 4월 1일 아시아권 최초로 트래블 버블을 시작했다. 필리핀 남쪽에 위치한 인구 1만8000명의 섬나라 ‘팔라우’가 대상이다. 팔라우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누적 확진자 0명이고, 대만도 최근 신규 확진자가 0명에 그칠 정도로 방역에 성공했다.
북유럽 발트해 3국인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도 지난해 7월 확진자가 한 자릿수가 되자 ‘발틱 트래블 버블’을 체결한 상태다. 최근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영국과 이스라엘,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30명 안팎인 베트남, 싱가포르도 트래블 버블 후보국으로 거론된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우려를 나타내기는 했지만 ‘백신 여권(백신 접종 디지털 증명서)’에 대한 논의도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월 1일 제5차 총리 브리핑에서 오는 9월 말까지 전 국민의 70% 접종을 달성, 11월께 집단 면역 체계가 형성돼 일상 회복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에게는 ‘백신 여권’을 발급해 방역 상황이 우수한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보복적 여행’ 수요는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진전을 보이는 중국에서 최근 뚜렷하게 확인됐다.
중국 연휴인 칭밍제(청명절, 4월 3~5일) 기간에 무려 1억200만명이 국내여행을 즐겼다(중국 문화관광부 자료). 이는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같은기간의 94.5% 수준이다. 각 온라인 여행 플랫폼 집계 결과 청명절 여행 예약량은 지난해 동월 대비 300~450% 증가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지역 숙박시설은 16배, 티켓 예약 건수 20배 각각 늘었다. 또 기차표는 2배, 항공 예매는 1.4배, 호텔 예약은 1.5배 확대됐다. 후치무 시노스틸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연휴 기간 소비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경기 회복에 따른 수입 증가와 설 연휴 이동 제한에 따른 보복성 소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한령 사태 이전 연간 800만여명의 유커가 한국을 찾았던 중국은 벌써부터 한국 단체 여행 문의가 접수되고 있다.
중국 비즈니스 학습여행 전문 기업 ‘만나통신사’는 올 초 중국의 모 제약회사로부터 직원 2만명의 인센티브 여행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간 한국인 여행객만 중국으로 송출(아웃바운드)했지만, 향후 중국인 여행객도 한국으로 유치(인바운드)하는 사업 모델 확장 가능성이 확인된 것. 윤승진 만나통신사 대표는 “방역 모범국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해외여행을 원하는 유커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상황만 좋아져 2주 격리가 면제되면 좋은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 여행은 어떤 모습?
▷슈퍼앱서 ‘소그룹 패키지’ 원스톱 결제
투자를 받은 여행업계는 ‘코로나19 시대 여행’ 준비에 분주하다.
마이리얼트립은 이미 국내여행 예약 건수가 코로나19 이전 대비 70% 수준까지 회복된 상태다. 거래액은 하루 최대 5억원 이상, 월평균 100억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 관계자는 “직원 감원은커녕 연내 50명 이상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항공권, 숙박, 각종 티켓, 액티비티 등을 모두 예약할 수 있는 ‘여행 슈퍼앱’이 되기 위해 서비스 고도화 작업 중이다. 해외 투자자가 대거 참여한 것은 한국이 방역 모범국이어서 해외여행이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 나라 중 하나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노랑풍선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초점을 맞춘 10명 이하 소그룹 중심 프리미엄 여행 패키지 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자가격리를 안 해도 되는 트래블 버블 국가를 대상으로 호텔이나 식당에서 자사 여행객들만의 독립 공간이 확보된 상품을 기획 중이다. 공항에서도 패스트트랙처럼 다른 이용객과 접촉을 최소화해 수속할 수 있는 ‘그린 패스’를 검토한다. 노랑풍선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자유 여행이 대세였지만, 코로나19 시대에는 방역을 도맡아서 챙겨주는 패키지 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에 발맞춰 항공, 호텔, 액티비티 등을 원스톱으로 예약, 결제까지 할 수 있는 글로벌 OTA 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놀자는 자사 앱에 여행 가이드 앱 트리플의 국내외 여행 상품과 콘텐츠를 소개하기로 했다. 양 사 간 인벤토리(예약 가능 상품)를 연동해 국내외 숙박·레저 액티비티뿐 아니라 항공·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여행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선보일 예정이다. 김종윤 야놀자 온라인 부문 대표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해외여행 수요 회복에 대비하고 글로벌 플랫폼 경쟁력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적인 투자다. 양 사의 혁신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고도화된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여권과 트래블 버블의 진척이 여행 시장 회복세를 결정짓는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본다.
문종진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세계적으로 국제 활동 재개를 위한 백신 여권 도입과 트래블 버블 지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여행 수요 회복세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어 여행 업종 주가는 더욱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윤승진 대표는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여행업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여행업도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 기존에 가이드를 통해 제공하던 현지 정보를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고 증강현실 앱을 통해 이를 제공하려 한다. 코로나19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이 많아질 것이다. 비즈니스 영감을 주는 학습여행을 통해 한 번의 여행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색다른 경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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