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이젠 찾아볼 수 없는 '만만디 문화' [이것이 중국인이다]
[김용길 기자]
만만디의 느긋한 천성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 개방을 선언하고, 죽(竹)의 장막을 걷어냈다. 한국 기업들은 13억 거대 시장을 향해서 너도나도 중국으로 달려갔다.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 대륙은 너르디 너른 사냥터와 같았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은 예상도 하지 못한 일로 엄청난 고전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만만디' 체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히 계절상품을 기획해서 중국 공장에 넘기면 그 계절이 지나도록 상품이 국내에 도착하지 않아서 파산한 의류업체, 유행 상품업체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느긋한 중국인들의 생활 태도를 한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일주일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류 최대의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올라보고, 북경의 천안문, 자금성, 서안의 진시황릉, 병마요 등을 둘러보고 나면 우리의 생각은 바뀌게 된다.
광활한 땅과 수많은 인구,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인의 장구한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나면, 우리는 그들의 문화유산과 명승고적들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만리장성을 쌓다가 거기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시황릉을 만든 후, 그 왕릉의 비밀이 새어 나아가지 못하도록 무덤에 함께 순장된 장인들은 얼마일 것인가?
삶의 거의 대부분을 끝없이 계속되는 전쟁과 노역에 끌려나가야만 했던 중국인들, 그 거국적인 역사적 사업에 피땀을 흘리며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내고도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마냥 체념하고 살았던 그들이기에 "만만디"의 느긋한 천성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 서둘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가 쓴 열자(列子)란 책의 탕문편(湯問篇)에는 '우공이산'이란 말이 실려 있다.
옛날 중국 기주의 남쪽, 하양의 북쪽에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라는 두 산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두 산을 돌아서 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서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와 한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의 말을 따르려고 했는데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요?"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다음날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고 이웃에 사는 과부댁 꼬마도 동참했는데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런 노인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니, 도대체 저 노인이 무엇을 하는 거지?"
그 마을에 지수라고 하는 이가 하루는 우공에게 물었다.
"영감님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보면 모르나. 산을 옮기고 있는 중이라네."
"영감님 대단히 어리석은 일을 시작했군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감님의 힘으로는 산의 한 쪽 귀퉁이도 파내지 못 할 텐데요."
그러자 우공은 거꾸로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며 대답했다.
"자네 같이 얕은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네. 자네의 생각은 저 과부댁 외아들의 생각만도 못해. 알겠나? 가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아이들은 남아서 일을 할 것이고, 아이들은 다시 손자를 낳고, 그 손자도 또 아이들은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고, 자자손손 끊이지 않을 것이네. 그런데 산은 더 커지지 않아. 그렇다면 언젠가 평평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지수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더 놀란 것은 그 두 산의 주인인 '뱀의 신'이었다. 산을 파내는 일이 그렇게 계속 된다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신은 그 사정을 옥황상제를 찾아가서 말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힘의 신'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 후부터는 두 산이 있었던 그 고장에는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우공이산이란 말은 비교적 사용빈도가 높은 편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뜻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중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경향이 많다.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은 이 이야기의 신봉자였다. 1945년 6월, 마오쩌둥은 중앙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우공이산'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 강연의 내용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라는 두 큰 산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인민 모두가 우공이 되어 노력해야만 한다"라고 주창한 것인데, 당시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마오쩌둥은 이 말을 즐겨 사용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초석을 다졌다. 중국에서 기업을 하고 있는 어떤 기업인은 이 "만만디"의 뱃심과 여유가 우리의 경박한 "빨리빨리"를 조만간에 따라잡을 것 같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빠르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4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준 반면, 무조건 "빨리 빨리", 서둘러 댄 결과 많은 시행착오를 가져왔다.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만난 우리의 이웃과 친인척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성수대교 붕괴, 삼풍 아파트 붕괴, 지하철 참사 등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우공이산이라는 고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그러나 중국도 개방 정책이 실시되면서 점점 만만디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중국인들은 개혁 개방 반세기도 되기 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변신했다. G2로 발돋움한 중국은 미국과 경쟁을 하며 놀라울 정도의 변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성급한 한국인을 뺨칠만큼 급하게 자본 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중국에는 거리의 신호등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물론 중국에도 교통 신호등이 있고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들은 빨간불이 켜져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건너고 자전거를 몰고 달린다. 그것은 자동차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딘가를 향해서 단지 바쁘게 가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같다. 지금까지 중국인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어가 되어 왔던 만만디는 사라지고 정반대의 '콰이콰이디(快快地)', 즉 빨리 빨리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무척 빠르다. 동경의 거리나 서울의 번화가에서 볼 수 있는 빠른 걸음을 도시 어디서에나 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공원 같은 곳에서 한가로이 걸어 다니는 사람은 시간이 많은 노인들뿐이다. 느린 템포로 태극권을 하는 사람은 심신단련을 할 목적이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지금 만만디 중국인은 한 사람도 없다.
거리의 가게나 광고에도 '신속함'이 만연되어 있다. 안경점이나 명함 가게에서는 그 자리에서 제품을 받을 수 있는 '즉석식'을 내세우며, 각종 기능 훈련소의 광고 역시 '속성(速成)'이며, 감기약에서부터 성병 치료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의약품에도 속효(速效)가 무수히 등장한다. 인스턴트 라면에서 시작해 인스턴트 만두, 인스턴트 백반, 인스턴트 케이크……무수한 인스턴트 음식이 중국인의 입맛을 인스턴트로 만들고 있다. 아침에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 이혼 수속을 밟는 조혼석별(朝婚夕別)의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중국의 사회다.
"내가 가장 경탄한 일은 중국의 물질문화가 일본이나 한국의 유행과 거의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발전한다는 점이다." - 찐웬쉐 (金文學), 반문화지향의 중국인
개혁 개방으로 세상을 향하여 문을 열자,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느라고 얼마나 뒤쳐졌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뒤쳐진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조바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결승점만 바라보면서 결사적으로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오로지 뛰는 것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금 중국대륙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보여준 놀라운 중국의 경제발전은 중국에 세계 자본주의 세력들을 모두 끌어들였고,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전무후무한 엄청난 실험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은 중국이 언제 미국을 제치고 G1의 타이틀을 거머쥐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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