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 한국판 스페이스X..민간 주도 우주시대 열린다
항우연 주도 누리호 민간 우주산업 마중물..내년 차세대중형위성2호부터 민간이 주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열렸다. 실익은 없이 ‘국위 선양’을 앞세운 정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 시대는 지고 우주 기업들이 실용적으로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민간 우주 관광ㆍ위성 인터넷을 주도하고 있다면 한국에도 우주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주 산업 ‘2040년 1100조’
우주 산업의 규모는 전세계적으로 2010년 기준 2765억달러(약 300조원)에서 2016년 3391억달러(약 370조원)으로 연평균 3.46%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040년 우주산업 규모를 약 1조달러(1100조원)로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우주 산업 매출액도 2014년 2조4778억원대에서 2019년 3조261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국내 우주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2019년 현재 총 9397명으로, 우주 기기 제작 분야 3314명(35.3%), 우주 활용 분야 6083명(64.7%)이다. 2019년 우주산업에 참여한 기관들은 기업 359개, 연구기관 34개, 대학 56개(119개 학과)로 총 449개에 이른다.
정부는 2013년 ‘우주기술 산업화 전략’을 바탕으로 민간 우주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우주 개발을 주도해 온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ㆍ항우연)이 지원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에 확보한 우주 기술을 대거 이전하고 정부 발주를 통해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민간 우주 산업 활성화의 주축이다. 항우연이 오는 10월 발사할 예정인 누리호가 특히 민간 우주 산업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투입된 예산은 약 1조8000억원으로 현재 시도된 단일 우주 프로젝트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예산 중 80%인 1조5000억원이 지난 10년 가까이 민간 우주 개발 업체들을 먹여 살렸다. 나로호 예산(1775억원)의 10배에 가까운 금액이 민간 업체들에게 지급되면서 국내 민간 우주 산업이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누리호의 생산유발효과는 5조543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1조6665억원, 고용창출효과는 1만7496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민간 업체 중 핵심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맡고 있는데, 총조립 및 1단 추진제 탱크를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옛 삼성테크윈)도 중책을 맡았다. 가장 중요한 누리호 엔진 총조립을 담당했고 추진 기관 공급계, 배관조합체, 구동장치시스템ㆍ추력기시스템 등 주요 부품을 개발하는 한편 시험 설비 구축에도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맹활약했다. 누리호 개발 과정에 참여한 기업 수는 총 300여개에 달하며 이 가운데 하청이 아닌 주력 기업만 30여개, 500여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위성 분야에는 지난달 발사에 성공한 ‘차세대중형위성1호’처럼 민간 업체ㆍ연구기관들이 탑재체ㆍ추진체ㆍ본체 등 대부분의 부품을 만들고 항우연이 조립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정부는 처음으로 양산이 가능한 표준 플랫폼 형식으로 차세대중형위성 1호를 개발했는데, 기존처럼 항우연이 주도하되 산업체들을 개발 단계부터 참여시켜 기술을 전수해 줬다. 내년 초 발사되는 2호기부터는 산업체들이 주도하도록 하고 그 후에는 아예 항우연이 빠진다. 산업체들이 민간 위성을 제작해 해외에 수출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밑그림을 실행 중인 것이다. 실제 2호기 개발에는 KAI가 주관연구기관으로 선정돼 있으며 1호기 개발 과정에서 시스템 및 본체 개발 기술을 이전 받아 2호기를 제작하고 있다.
◆"민간업체 상당 수준" 평가에도 갈길 멀어
이미 한국의 민간업체들 중에서도 독자 기술을 확보한 우주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소형 위성 제작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쎄트렉아이(SATRECI)’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반 우리별1~3호를 만든 주역들이 창립한 이 회사는 아리랑위성 6호, 달 탐사선, 차세대중형위성 지상국, 천리안 2A호 우주기상탑재체ㆍ지상국 등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해외 소형 위성 수출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난 2월 화성 탐사를 시작한 아랍에미리트(UAE)가 2007년 우주 개발을 본격화할 때 이 업체의 자문을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와 함께 올해 12월 ‘이카루스’라는 나노위성 발사체를 시험 발사하는 ‘이노스페이스’는 민간 발사체 개발 분야의 선두 주자다. 초소형 위성 제작, 군집 위성 시스템 설계 등에선 ‘나라스페이스’가 손꼽히고, 우리나라 유일의 지상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텍’도 눈에 띄는 업체다.
그러나 정부의 ‘뉴스페이스’ 정책은 명실 상부한 우주 강국 도약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게 민간ㆍ학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성제작업체 관계자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맞도록 정부나 공공기관은 수요를 제기하고 산업체가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위성을 공급한다거나 공공기관과 민간의 공동 투자를 통한 위성 개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위성 제작에 국한하지 않고 위성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통한 활용과 서비스 분야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의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도 정부의 투자와 수요를 발판으로 우주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공공과 민간의 핵심역할을 재검토 하고, 우주강국으로의 도약을 앞당기기 위한 실질적 정책 수립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안보융합연구원장은 "현재처럼 정부 출연 연구기관 중심으로 우주 개발을 하는 것은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기술 개발 등 경쟁력과 자생력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현재도 발사체나 위성의 핵심 구성품은 대부분 외국산이지 않느냐"면서 "우주 개발 3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제도와 인프라, 인력 양성 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우주를 프로젝트 대상이 아니라 국정의 한 축으로 격상시키는 등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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