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어 시작한 노조"
[김호세아 기자]
▲ 직원뿐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초대한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동조합 창립총회 포스터 |
ⓒ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조 |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동조합, 단체교섭, 단체협약 같은 노동 관련 단어들은 아직 생소하다. 조직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매우 적은 수이지만 사회복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찾아 나가는 노동조합이 있다. 사회복지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인지 확인하고자 최근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슈가 되었던 노동조합을 찾았다. 지난 8일 서울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동조합의 사회복지노동자 두 명을 인터뷰했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사회복지지부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지회 소속 이재아(이하 '이')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같은 노동조합 김승희(이하 '김')입니다."
- 실명 인터뷰인데요,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내셨나 궁금해요. 현장에서 노동조합원으로 특정지어지는 상황이 아무래도 조심스럽잖아요. 언론에 실명을 공개하고 인터뷰하는 것에 아무래도 부담이 컸을 텐데요.
"물론 실명으로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죠. 인터뷰를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고,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김)
- 요즘 사회복지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노동조합이라 찾아왔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동조합은 매우 생소한데요, 어떻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저는 처음부터 조합원은 아니었어요. 개별적으로 사회복지노동조합 산별 노동조합에 가입한 직원들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릉(기관)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개별 가입한 직원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어요. 노동조합 창립총회 때 가입하게 되었죠. 저 말고 궁금해서 갔다가 조합원이 된 동료들도 있었어요.
정릉지회의 창립총회는 좀 특별했어요. 종사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총회에 함께 참여했는데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응원하기 위해 참석해주었고 축하공연도 해주었고 노동조합이 생길 때부터 지역사회와 함께였던 것 같아요. 지역사회복지관의 존재 이유가 지역 안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기에 이런 실천이 노동조합 창립 때부터 지역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김)
- 지역복지를 하는 그 실천대로 노동조합 창립을 하신 거네요.
"지역복지를 하면서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해요.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지역에 관심을 갖자고 이야기하고 우리 지역의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르자고,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요.
그것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우리가 지역에서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정작 내 일터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 갖지 않고 반대로 침묵하고 순응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주민들에게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나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이)
▲ 2020년 12월 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회신한 공문. 서울지노위는 한기장복지재단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구제명령을 내렸다. |
ⓒ 서울지노위 |
- 단체협약을 최근에 체결하셨다고 들었어요.
"2019년 12월 24일에 단체교섭을 요청했고 2021년 2월 23일 단체협약을 맺었죠. 사실 실제 단체교섭한 날은 별로 없어요.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 판정 이후 단체협약 체결까지 6차례 정도 만나 단체협약이 맺어진 것 같아요."(이)
정릉지회는 2020년 9월 4일 서울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체신청을 했다. 이후 서울 지노위는 2020년 11월 3일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행위는 단체교섭 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다"고 판정했다.
- 지노위 판결이 중요했다고 들었어요.
"부당노동행위 판정 이후에야 법인에서 부정했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에 임했으니까요. 그 판정이 매우 중요하고 유효했어요. 저희가 지노위 구제신청 전에 같은 건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고소의 판정이 나오지는 않았거든요.
법인은 사용자성에 대한 판단을 인정하며 교섭에 임할 것인데 그 전에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요구했고, 노동조합은 그동안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실한 교섭에 임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단체교섭에 앞서 '고소 취하' 단서를 붙이는 법인에 대등한 입장으로 몇 가지 단서조항을 제시했어요. 고소를 취하할 수 있지만 먼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해결된다는 의견을 전했고 그렇게 교섭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이)
- 교섭에 나서도 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곳들이 많고 노조와 법인의 입장차가 있었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지었나요?
"처음에는 고소를 취하하고 교섭을 해서 단체협약을 맺자는 의견과 단체협약을 다 맺은 다음 고소를 취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결국 고소를 먼저 취하하고 단체협약을 맺기로 했어요. 대신 그 과정에서 함께 지켜나가야만 하는 합의서를 작성하였고요. 저희가 구제신청 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이유를 두 가지 작성하였어요. 한 가지는 사측의 사용자성 부정으로 인한 부당노동행위였고 다른 한 가지는 사측의 지배개입 및 불이익취급으로서의 부당노동행위였지요.
지노위에서는 사용자성 부정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가 맞다는 판정을 하였지만 지배개입 및 불이익취급으로서의 부당노동행위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배개입 및 불이익취급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사측의 행위들은 없던 일이 아니거든요. 사측이 버젓이 자행한 일들이고 누가 봐도 이상하고 잘못된 행위들이었어요.
▲ 법인에서 정릉종합사회복지관에 게시한 사과문. |
ⓒ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조 |
사측에서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하면서 했던 이야기는, 앞으로 노동조합이 요구한대로 성실하게 교섭할 것이니 그 전에 법적인 분쟁들은 모두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자, 고소를 취하하라는 것이었거든요. 사실 그 말 자체도 속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또한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위해서는 그동안 무너졌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믿음을 상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것은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노동청과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로 신고했던 행위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이고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지노위 구제신청 결과가 기각되었다고 해도 직장내 괴롭힘으로도 볼 수 있는 행위들을 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실제로 잘못된 행동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단체교섭 전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고, 고소 취하 전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고요. 그런데 단체협약을 체결하기까지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네요."(이)
▲ 공대위가 함께 참여한 기자회견. 지역사회의 지지는 노동조합 유지와 활동에 있어서 중요했다. |
ⓒ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조 |
-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으로 긴 시간 투쟁하는 동안 지역사회의 지지도 함께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름이 좀 기네요,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사유화 방지, 공공성과 사회복지노동자의 권익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서울 성북구에는 성북시민사회연석회의라는 지역 시민단체들의 모임이 있어요. 거기에 저희 사회복지사들도 참여 중이었죠.
저희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냈더니 많은 분들이 노동조합 문제에 함께 공감해주셔서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사유화 방지, 공공성과 사회복지노동자의 권익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리게 되었죠. 현재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고, 저희도 사내 노동조합이 처음이다 보니 고민되는 것들이 많았는데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저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일하는데요. 처음에는 조끼에 대해서 물어보는 주민들이 계셨어요. 저는 편하게 '사회복지 노동자로 지역사회와 주민의 관계를 주선하고 복지력을 증진시키고 있지만, 저의 노동환경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한다'고 했어요.
그 이후에는 '노동조합 잘하고 있냐'로 안부 인사를 해주시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좋은 일하는 착한 사람으로만 아셨다면 지금은 노동자로서의 저도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것 같아요. 지역사회가 이렇게 응원하고 있으니 저희 정릉지회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김)
- 사회복지 현장의 노동조합 혐오 정서가 강하다 보니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 역시도 힘든 과정을 거쳤었는데 조합원분들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현재 직장 생활은 어떠세요?
"사용자도 예전에 저희가 기관 내 노조가 아닌 산별노조 조합원이었을 때는 응원도 해주고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막상 기관 안에서 지회를 만드니 다른 반응을 보이시더라구요. 직장 안에서는 직원이 아니라 노동조합 대의원, 조합원으로 보더라구요.
저희도 직원이고 노동자인데 노동조합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속상하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에요. 전문가라고 한다면 객관적인 가치기준이 아닌 그 상위의 가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이해득실을 따지는 본인의 가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이)
"단체협약이 맺어지면 모든 게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관장은 단체협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단체협약 실행에 있어서 사측이 적극적인 게 안 보이니 단체협약이 체결된 건 맞는 건가 싶기도 해요."(김)
"주변에서 다들 우리에게 축하한다, 승리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축하받는 것이 맞을 만큼 승리한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값졌던 말들도 기억나요. 저희 복지관 동료가 저희에게 이런 말을 전했어요. '축하해야 한다고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했어야 하는 일들인데 나는 당신들처럼 나서서 함께하지 못했다. 많이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이)
▲ 2021년 2월 23일 체결한 단체협약서. 당초 2월 17일 협약이 예정되었으나 한차례 무산되는 등의 파행을 겪은 후 일주일 뒤인 23일에 협약이 체결되었다. 최종서명란에도 3명의 사측 교섭위원 중 정릉종합사회복지관장은 서명하지 않았다. |
ⓒ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노조 |
- 사회복지 노동조합이 현장 특성 때문에 임금협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제약이 많은데, 실제 단체협약 안에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는지 궁금하네요.
"간혹 노동조합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다고 하는 이상한 소문이 들리곤 해요. 또는 사기업의 노동조합처럼 임금협상을 해서 사회복지계의 물을 흐리고 힘들게 하려고 한다는, 좀 이상한 말을 듣기도 했어요. 사실 노동조합이 임금을 협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건데요.
하지만 저희도 사회복지 현장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구조가 어렵다는 것도 알고요. 위탁제도 환경에서 제한점이 많죠. 협약 내용에는 조합원만의 이익이나 사측을 곤란하게 하는 내용이 없어요. 모든 조항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합의를 한 부분이고요. 물론 이상을 위한 선언적인 문구들도 있고, 노사가 함께 지자체에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함께 대응하기로 했고요.
단체협약의 적용 범위는 전 직원으로 했고 노동조합의 조합활동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노동조합과 재단이 함께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운영에 참여하는 것, 노사협의회 등의 노사공동기구가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요. 앞으로는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운영규정을 노사가 함께 개정할 예정입니다."(이)
- 현재 상황도 녹록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에서 한 번 접고 들어가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에서 또 한 번 더 접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현재의 직장 생활과 노동조합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조합은 대단한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동안 방임되고 잊혀졌던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자 우리의 고귀한 이타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곳입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사이 어디쯤 오늘이 있다고들 합니다. 노동조합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체입니다. 노동조합이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지금 너무 어렵고 힘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고 당연한 것이 되어가면 좋겠어요.
사회복지노동자로서 현장에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초년생 때는 '아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온전히 받아들였었는데 연차가 쌓이고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후배들이 똑같이 의문을 갖고 물어볼 때 제가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창피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더라고요. 누구도 그것을 바꿔주지 않고요. 그래서 나부터 의견을 내어보고 행동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이야기하니 잘 말도 못 하겠고 그 말이 전해지지도 않아서 한 명이, 두 명이, 세 명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고요.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방패는 노동조합이라고 해요. 나를 지키면서 내 일터를 지킬 수 있는 노동자를 위한 유일한 법적 보장 장치인 노동조합.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너무 힘이 들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길, 당연한 것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이, 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세훈 서울시 상생방역', 51.4% "방역 도움 안돼"- 54.2% "민생 도움" - 오마이뉴스
- 서울 집값 비싼 곳, 오세훈 표 몰아줬다
- 누구 맘대로 어르신 팔다리를 잘라?
- 안중근 의사가 이토 쏘며 한 말, 잘못 알려졌다
- '급식 엄마'가 된 나, 항상 체한 기분입니다
- "586 알아서 물러나지 않는다, 세대교체 깃발 들자"
- 50대에 책 내고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 '6.2이닝 비자책' 류현진, 완벽한 투구로 시즌 첫 승
- 도종환 "모래 한 줌도 안 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용납 못해"
- 홍영표 당대표 공식 출마 "친문 책임론? 지도부 사퇴했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