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배우는 영웅의 기준..조조인가 유비인가

2021. 4. 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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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19 영웅의 기준

조조는 여포를 제거하고 서주를 평정했다. 여포를 죽였을 때 조조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까. 만약 조조가 여포를 부하로 삼았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삼국지를 한 번쯤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생각해봄직한 가정이다.

조조가 평생토록 싸운 삼국지 여러 호걸 중 여포는 특별한 인물이다. 여포는 전략, 전술적 지혜가 부족해서 승리 기회를 어이없이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당백 무력과 카리스마로 그와 그의 병사들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괴력을 발휘했다. 조조는 여포군이 자신의 눈앞에서 조조 최정예인 청주병을 박살 냈던 장면을 아마 평생 잊지 못했을 테다.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인물

▷삼국지 배신의 아이콘 된 여포

여포는 기분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만 전반적인 성격은 소설과 실제 평가가 달랐다. 소설에서는 늘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일관성 없고 아둔하기는 했지만, 결단력 있고 정치 감각을 갖춘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와 행정을 믿고 맡길 인재가 없었다는 점이다. 인재를 확보하는 능력이 조조, 유비와 비할 데 없기는 했지만, 그는 애초에 중원(화베이 지방) 출신이 아니라는 핸디캡이 있었다.

게다가 여포는 아무도 다룰 수 없었던 인물이다. 동탁, 원소, 유비 모두 여포를 다루는 데 실패했다. 그는 도심을 뛰어다니는 한 마리 늑대와 같았다.

조조 역시 여포를 길들일 수 없는 야수로 판단했다. 물론 여포가 죽기 전 자신을 부하로 삼아 달라 조조에게 청했을 때 조조는 일시적으로 흔들렸다. 이때 유비가 옆에서 여포가 행한 배신의 역사를 나열했다. 성인군자라 불리던 유비가 거의 유일하게 냉혹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조조가 유비 설득에 넘어가자 여포는 “귀 큰 놈(유비)이 제일 무서운 놈이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여포의 마지막 말은 어리석기보다 순진하게 느껴진다.

당시 중국 사투리가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가정하면, 여포는 중원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던 시대, 여포를 포함해 여포의 출신지 병주에서 온 군사들은 특히 더 무법적인 행동이 심했다. 여포가 그들 입장을 변호하려면 최소한 말이 통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도 못했다.

여포를 다루려면 그의 능력의 한계를 깨우쳐주고 정당한 목표를 갖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여포 일생을 보면 그를 이용하기 위해 옆에서 부추기거나 그의 능력과 야성적인 태도에 불안해하는 사람으로만 가득했다.

서주를 차지한 후 여포의 행동을 보면 비로소 주변 정세를 파악하고, 자신의 한계, 즉 전사와 리더의 차이를 조금 깨달은 듯하다. 유비를 살려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고 진규와 진등 부자처럼 자신을 견제하려는 토호 세력과 협조하며 협력을 얻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조조가 여포를 부하로 삼는 것을 망설인 이유 역시 여포의 변화를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조조는 여포를 죽이기로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적 없는 유비

▷덕과 운으로 서주를 손에 넣었지만…

여포를 제거한 뒤 조조는 유비를 서주 자사로 복귀시켰다.

약육강식 시대에 지금까지 유비의 성공담은 정말 특이하다. 따지고 보면 그는 한 번도 전쟁에서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다. 자신 힘으로 영토를 차지한 적도 없다. 소설에서는 도원결의, 황건적 토벌, 관우의 화웅 살해, 여포와 3:1 대결 등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많다. 모두 창작이다.

유비는 황건적 토벌에 의용병을 이끌고 참전해 말 그대로 종군한 정도의 공을 세웠다. 그 포상으로 현령이 됐지만, 그가 다스리던 성은 황건적에게 함락됐다. 조조의 서주 침공 때 조조군에게 패했지만, 미축 등 토호들 지지를 얻어 서주자사가 됐다. 그 뒤에 원술과 간신히 비겼고, 여포에게 패해 이번에는 조조에게로 도망쳤다. 조조는 유비를 데리고 여포 토벌에 나섰다. 조조 휘하에는 서주를 다스릴 인물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서주를 되찾아 유비에게 돌려준다. 이 정도면 유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운이 좋은 인물이 아닐까.

주희(중국 송나라 유학자)가 유비를 삼국 시대 정통으로 지목하고 명·청 시대 유학사상을 기반으로 한 작가들이 소설 주인공으로 유비를 선택한 이유도 이 같은 강한 운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이 부국강병 방법을 물었다. 맹자는 화를 내며 군대와 무기를 만들 돈으로 백성을 보살피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군사비를 삭감하고 그만큼 조세를 깎아주라는 의미다. 양혜왕이 놀라서 물었다. “그러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나라를 어떻게 지킵니까?” 맹자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왕의 인정과 덕치가 세상에 소문이 나면 백성들이 왕을 구하러 달려올 겁니다.”

이것이 유가의 이상국가론이다. 지금도 이런 주장을 하는 명망가가 있다. 다만 아직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어떤 위정자도 이런 실험을 시도해보지 않았다. 유비 성공 사례는 맹자의 이상에 대한 간접 증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쨌든 이렇게 유비는 서주를 되찾았다.

조조가 유비에게 서주를 맡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조조는 서주 백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조조가 여포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당장 서주를 통치하기에는 반발이 심했다. 다만 조조는 명목상 유비가 서주를 통치하게끔 만들었지만 서주가 완전히 유비에게 통째로 넘어가게 허용하지는 않았다. 우선 서주를 분할했다. 서주 북쪽 지역은 자신의 부하를 보내 다스리게 했다. 또 유비를 서주에 두지 않고 수도인 쉬창으로 데리고 왔다.

여기서부터 두 영웅의 묘한 심리전이 시작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주가 안정된 후 조조는 유비를 죽이거나 한직으로 쫓아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조조는 이때부터 유비라는 인물에 대해 묘한 관심이 생겼다. 조조 입장에서 신기했던 것은 서주 백성들이 유비를 바라보는 태도다. 유비가 무능함을 드러내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겨버린 상황에서도 백성들은 오히려 유비를 떠받들기 시작했다.

별다른 능력은 없어 보이지만 인기가 많은 인물. 조조 눈에 비친 유비의 첫인상은 그랬다. 여포를 제거한 후 조조는 이 신비한 인물을 자세히 관찰할 여유가 생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조조는 유비에게 넌지시 질문을 한다.

“유공, 천하의 영웅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유비는 원소, 손책 등 조조를 당장 위협하고 있는 인물을 거론했다. 조조는 그들을 모두 가볍게 넘기더니 유비를 바라보며 폭탄 선언을 한다.

“천하에 영웅은 바로 그대와 나 둘뿐이오.”

유비는 이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전해진다. 삼국지 100년 역사를 통틀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 조조의 폭탄 선언. 조조는 왜 유비를 영웅이라고 생각했을까. 조조가 생각하는 영웅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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