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경의 '시코쿠 순례'] (8) 최고 험한 여정 60번..올라가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길이 있네

2021. 4. 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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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짱 기관차의 도시 ‘마쓰야마’를 떠나는 일요일 아침, 7시 23분 기차를 탔다. 방향을 못 잡다 전봇대에 붙은 헨로미치(순례길) 표지를 발견하고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혼자 걷는 게 편하기도 하다. 내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무사히 54번을 마치고 55번 난코보(南光坊)로 향했다.

이마바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난코보는 선원과 어부들의 안전을 비는 사찰이다. 교차로에서 또 헨로미치 표지를 못 찾아 헤매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인사를 건네 왔다. 나도 인사를 하며 길을 묻자 자전거에서 내리며 같이 가자 하셨다. 할머니도 난코보 가시냐 하니 근처에 가신다며 자전거를 천천히 끌었다. 할머니는 목적지를 조금 둘러 가더라도 오늘 나를 무사히 난코보에 데려다주시는 것을 당신의 공양이라고 생각하신 듯했다.

56번 가는 길에 그날 묵을 숙소를 발견해 다행히 짐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57번까지 무사히 마치고 58번을 향해 걷는데 길이 좀 으슥했다. 산모퉁이를 따라 돌아가야 했는데 어쩐지 그 모퉁이까지 가기가 싫었다. 처음으로 길이 무서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57번 절로 되돌아가 납경소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친절한 납경소 스님은 택시를 불러주고는 혼자 다닐 때는 특히 들개를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60번을 가기 전에 먼저 들른 61번 코온지(香園寺)는 콘크리트 건물로 시민회관 같았다. 예불도 의자에 앉아서 본다고 한다, 60번 사찰을 안내해준 길동무 사토상 일행.
택시를 타고 가는데 마쓰야마에서의 동행 배수웅 군한테서 “59번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59번에서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 59번까지 걸으려던 계획은 무너졌지만 배 군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같이 걸으며 다음 날 일정을 의논했다. 60번 요코미네지(橫峰寺)는 유명한 헨로고로가시(험하고 경사가 심한 곳)였다. 배 군은 걸어서 가기는 힘들 테니 사이조역에서 로프웨이를 타는 게 좋다고 정보를 줬다. 다음 날 아침 7시 사이조역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밤에 길 공부하는 중에 배 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같은 숙소에 머물던 한 헨로상(순례자)에게 들으니 로프웨이가 없어져 걷거나 택시 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배 군은 걸어서 60번에 가겠다고 했다.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0~64번이 위치한 코마츠에서 2박 하면서 60번부터 64번까지 모두 마칠 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코마츠 료칸을 예약했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다 민박에서 나오는 삶은 계란 두 개를 챙겼다. 선견지명이란! 그날의 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그 계란이 아니었으면 허기져 쓰러졌을 것이다. 코마츠 료칸은 다행히 역에서 가까웠다. 배낭을 맡기기 위해 부지런히 갔더니 기차에서 봤던 헨로상 세 분이 배낭을 내려놓고 비옷을 챙기고 있었다. 도쿄에서 온 사토상, 나고야에서 온 사이토상, 간토의 어느 곳에서 온 우노상이었다. 그들도 이번에 순례하다 만나 동행이 돼 함께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88 사찰뿐 아니라 번외 사찰까지 참배 중이었다. 노숙을 해야 하는 구간만 기차를 타고 사찰까지는 반드시 걷고 있다고 했다. 다들 정년퇴직한 60대 중반 아저씨들이었지만 건강해 보였고 천천히 걷는 것 같은데도 내 걸음으로는 쉽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60번 가는 길은 이런 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가장 힘든 헨로고로가시로 꼽힌다.
▶우연히 만난 길동무 덕분에 마칠 수 있었던 ‘헨로고로가시’

사토상 일행을 따라 60번, 그 유명한 헨로고로가시로 향했다. 나는 그들을 놓칠세라 쉬지 않고 걸었다. 혹시 그들의 일정에 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그들은 내색 없이 중간중간 쉬면서 기다려줬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다섯 번째 순례 중이라는 사이토상이 길 안내를 했는데 두어 번 헷갈리기도 했다. “다섯 번째라도 길을 모를 수 있냐” 물었더니 두 번은 차로 했고 두 번은 각각 다른 길로 했다나. 사토상은 60번 요코미네지 이정표가 나오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해도 찍히는 것은 싫다는 사토상에게 부탁해 사토상, 사이토상, 우노상 세 사람이 함께한 사진을 간신히 찍었다. 나중에 사토상이 자기 카메라를 보여주는데 그새 내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납찰(순례자들의 명함)을 교환했다.

88 사찰중 세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709m) 60번 요코미네지(橫峰寺)의 본당.
겨우 산 밑에 도착했고 남은 것은 2.2㎞. 말이 2.2㎞지, 히말라야 정복하는 듯싶을 만큼 경사가 심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탓인지 잠시 쉬다 일어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도로 주저앉으니 뒤따라오던 사토상이 사탕을 하나 주며 먹으면서 심호흡하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 헨로고로가시구나. 쇼산지나 카쿠린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길동무 3명 덕분에 60번을 마칠 수 있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힘들었지만 60번을 올라가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올라가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음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믿었으니.

요코미네지에 도착해 비옷을 벗으니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하산은 버스로 하기로 했는데 납경소 전언은 5명을 위해 버스가 올 수는 없다고 했다. 참배객이 더 모이면 온다고 해서 사이토상과 사토상은 걸어서 하산하고 우노상과 나는 버스를 기다렸다. 납경소에서 결국 오늘은 버스가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불러 내려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내려다본 경치는 운무에 휩싸인 한 폭의 동양화였다. 다음 날 사토상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시 순례를 시작했다. 번외 사찰을 참배한 그들과는 62번에서 한 번 더 만났다.

64번까지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이 쑤시고 뻐근했다. 잠시 쉬었다 씻기 위해 욕실로 가던 중 눈을 의심했다. 주인에게 방을 안내받고 있는 남자는 코이즈미상이었다. 분명 아시즈리 미사키에서 나보다 하루 앞섰고 나는 마쓰야마에서 하루 더 지체했기에 코이즈미상을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코이즈미상도 놀라고 반가워했다. 코이즈미상은 다리를 많이 절었다. 아시즈리 미사키에서 좋지 않아 보였는데 그동안 무리했는지 더 나빠 보였다. 그래도 내일 60번을 간다고 했다. 그 다리로 요코미네지를 갈 수 있겠냐고 했더니 되레 나한테 어깨와 발목은 괜찮냐고 걱정해준다. 매일 테이핑하면서 걷고 있다고 했더니 65번, 66번도 힘드니 버스나 기차를 타라고 알려준다.

보통 민박은 개별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코마츠 료칸은 숙박객이 모두 모여야 저녁 식사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함께 식사하며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는 것 또한 헨로미치의 즐거움이었다.

[최현경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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