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책임론 속..격리해제 이낙연 '만인보(萬人譜)' 성찰 고민

심새롬 2021. 4.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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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재보선 선거일인 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투표 독려 기자회견을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 회견 직후 그는 아내 김숙희씨의 확진자 밀접접촉 소식을 듣고 1주일간의 공동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뉴스1

“낮은 자세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만인보(萬人譜)를 적겠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고은 시인의 대표적 연작시집 제목 ‘만인보’는 수없이 많은 사람(萬人)에 대해 적은 기록(譜)을 일컫는다. 이낙연 전 대표는 오는 15일 코로나19 자가격리 해제를 앞두고 주변에 민심 청취의 한 방법으로 만인보 기록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과 민주당의 미래를 차분히 생각하며, 낮은 곳에서 국민을 뵙겠다”고 적었다.

“당분간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게 가까운 의원·참모진에 비춘 이 전 대표의 뜻이다. 상임선대위원장으로 4·7 재보선를 치른 그는 선거일 직전 부인이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며 당의 참패와 지도부 총사퇴 과정을 전부 집에서 홀로 지켜봤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패배의 상처가 깊은 당에선 그의 부재를 지적하는 말들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부터 총 7차례 코로나 19 자택 대기 및 자가격리를 겪었다.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지난해 8·29 전당대회 때는 집에서 온라인 중계로 수락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선거 참패 순간엔 생중계 연결도 어색한 일이었다.

패장이 침묵한 새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그 (서울·부산 공천 검토) 때 후보를 안 내는 것으로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유인태 전 의원)는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5선의 이상민 의원은 12일 라디오에 나와 “민심에 터를 잡았다면 대통령에게도 할 말을 하는 당대표로서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는 (이 전 대표가) 미흡했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선 이번 선거 참패가 이 전 대표의 차기 대선 가도에 선명한 적신호를 켰다고 본다. 지난해 전당대회 출마 선언 때부터 당내선 “이낙연의 명운은 4·7 재보선에 달렸다”는 말이 많았다. 이 전 대표의 측근 의원은 “격리 해제돼 나오더라도 지금 무슨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겠느냐”면서 “최소한 차기 전당대회 이후 당이 안정될 때까지는 상황을 추스르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 행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차기 당권 주자인 우원식·홍영표 의원이 13일 앞다퉈 이재명 경기지사를 면담한 건 민주당 대선 구도가 이재명 1강 체제로 재편, 이 전 대표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대표 기간 내내 “총리 시절”을 적잖이 언급했던 이 전 대표는 재보선 패배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부 첫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제가 부족했다”고 세 직책을 아울러 사과했다.

이 전 대표는 극적 재기를 도모하느냐, 이대로 지지율 하락에 떠밀리느냐 기로에 서있다. 일각에선 ‘문재인 후광’ 탈출이 급선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이 전 대표가 서울·부산 무공천 당헌을 뒤집고,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빼 들었다 만 것은 당내 친문(친문재인) 그룹과 문파 당원들의 눈치를 본 결과”라며 “문재인 후광에만 기대려 한 패착이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초선 의원은 “재·보선 결과 호남에서 이 전 대표의 지지를 흡수할 가능성이 거론되던 정세균 총리나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도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며 “정책과 조직 차원에서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아직 반등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달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뉴스1


리얼미터가 지난 10~11일 전국 18세 이상 1016명을 상대로 실시한 JTBC 의뢰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는 12.3%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36.3%), 이 지사(23.5%)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아직은 선거 패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지율이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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