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공포일까 외로움일까

2021. 4.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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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클릭] 더 파더
드라마/ 플로리안 젤러 감독/ 97분/ 12세 관람가/ 4월 7일 개봉
장르가 ‘공포’라고 해도 믿겠다. 영화 ‘더 파더’를 감상하고 난 소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공포의 실체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더 무섭다.

주인공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는 80대 노인이다. 완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의 일상은 평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평온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기억의 혼란. 갑자기 사랑하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 분)의 얼굴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안소니를 둘러싼 세상은, 그를 옥죄는 감옥이 된다.

안소니에게 치매라는, 그 무서운 병이 발병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치매 환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반복되는 안소니의 일상 속에서, 안소니의 기억은 일정하지 않다. 때로는 그 기억이 뒤섞이기도 하고 때로는 중간이 뭉텅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딸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안소니 앞에 어느 날 처음 보는 남자가 불쑥 나타난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안소니에게 앤은 “벌써 10년이나 같이 살고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안소니는 이런 모든 상황이 놀랍고 당혹스럽기만 하다.

노쇠해가는 몸, 사라지는 기억에 안소니는 주위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딸이 내 집을 빼앗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여긴다. 찬장에 넣어둔 시계를 잊은 채, 손목에 시계가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딸은 자꾸만 찬장에 있을 거라고 말한다. 똑똑한 자신을 의심하는 딸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딸의 애인이라는 남자의 손목에 손목시계가 있다. 이상하다. 대체 그걸 어디에서 산 걸까. 저게 혹시 내 시계 아닐까. 영수증은 버렸다고 말하겠지?

영화는 치매 환자가 느끼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안소니가 아침에 일어나 복도를 바라보는 순간,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돼 있다. 안소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건너뛰었다. 장면 장면은 관객에게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마비돼가는 뇌는, 자꾸만 잘못된 정보를 전한다. 그리고 그토록 편안했던 집이 점차 안소니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간이 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그 집을 답답하고 낯선 곳으로 표현한다. 안소니는 언제나 그 낯설고 외딴 곳에서 늘 외롭게 공포와 싸워야만 한다.

열연을 펼친 안소니 홉킨스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올리비아 콜맨 역시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를 대하는 딸의 복잡한 심경을 멋지게 표현했다.

치매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칭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치매라는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다루는 방법을 잘 드러내면서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잘 구성된 수작이다.

[라이너 유튜버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쳐쇼크’ 운영]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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