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경험" 물건 필요하면 중고품부터 찾는 MZ세대

추인영 2021. 4. 1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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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얇은 2030, 가성비 좇는 소비
중고 명품 싸게 사서 쓰다 되팔아
한정판에 열광, 웃돈 얹어 사기도
환경·실속 두 토끼, 한해 20조 거래

#1.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홍서호(32)씨. 중고거래사이트 당근마켓에서 지난해 700원짜리 프리퀀시(스타벅스 스탬프)부터 수십만원 하는 가전이나 명품백까지 거래만 70회, 거래액은 1000만원 넘게 기록한 ‘헤비유저’다. 지난해 3월 아이돌 콘서트 티켓과 굿즈를 구하러 입문했다가 지금은 중고거래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 중이다. 그는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 돈이 생겨 좋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줄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2. 중고거래 9년 차김동주(37)씨는 새 물건을 살 때 영수증과 패키지를 그대로 보관한다. 중고로 되팔 걸 염두에 두고서다. 가전제품을 좋아하는 김씨는 최신 기종을 살 때마다 기존 제품은 중고로 내다 판다. 그의 거래 원칙은 ‘풀박’(풀박스)과 ‘쿨거’(에누리 없는 쿨거래). 김씨는 “닌텐도 최신 버전을 어렵게 구해 한 달 정도 써보고 필요 없어져 더 비싸게 내놨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몰렸다”고 즐거워했다.


중고거래 60%가 MZ세대…가성비 좇는 합리적 소비
중고거래 시장이 뜨겁다. 특히 이 시장을 주도하는 건 20·30대가 대부분인 MZ세대(밀레니얼+Z·출생연도 1980년~2004년)다. MZ세대는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의 60% 안팎(20대 미만 포함)을 차지한다. 지난해 3월 보험관리 플랫폼 굿리치가 20·30세대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중고 거래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83%에 달했다. 27%는 ‘최근 1년간 중고거래를 6회 이상 했다’고 응답했다.

주요 플랫폼 사용자 연령대 구성.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렇다면 MZ세대가 중고거래에 꽂힌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유가 앞선다. 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인 이들은 비교적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 소비를 중시한다. 지난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MZ세대 2233명의 소비성향을 조사한 결과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추구하는 가성비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가격 대비 큰 만족감을 추구하는 가심비 소비를 선호한다는 답변(37.3%)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런 MZ세대가 키운 게 중고명품 시장이다. 지난해 9~11월 중고나라에서 명품을 거래한 이용자의 절반 이상(59%)이 20~30대(40대 포함 시 84%)였다.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시대의 나를 위한 소소한 사치”다. 또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그래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한정판(레어템)에 열광한다. 이런 물건은 재테크 가치도 크다. 한정판 스니커즈나 명품백(샤넬)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슈테크’, ‘샤테크’는 MZ세대의 일상이 됐다.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하고 '득템' 재미도
중고품을 보는 인식도 달라졌다. MZ세대에게 중고거래란 남이 쓰던 물건을 주워 쓰는 게 아니라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위한 재미있는 수단이다. 트렌디함을 뽐낼 수도 있다. 방탄소년단 RM도 중고거래를 하는 세상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올해의 키워드로 ’N차 신상‘을 제시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다면 몇 차례(n차) 손이 바뀌더라도 새 상품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긴다는 뜻이다.

패션을 전공한 대학생 신혜인(22) 씨는 주로 옷을 중고로 사고판다. 신씨도 한때는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나 보세를 구매했었지만 이젠 아예 눈길조차 안 준다. “내구성이 떨어져 다시 팔 수도 없고 한철 입고 나면 진짜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씨는“값비싼 브랜드도 중고로 다시 팔면 저렴한 옷을 사 입는 것과 가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일 사용자(DAU) TOP5 쇼핑앱.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소비 줄여 자원순환 기여도 중요한 가치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에서 MZ세대의 소비특성 중 하나로 ‘세컨슈머’를 꼽았다. “MZ세대에게 중고소비란, 리사이클링(recycling)이나 업사이클링(upcycling)이 아니라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으로 어떻게 하면 소비를 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재활용(recycling)이나 디자인·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상품의 소비(upcycling)에서 더 나아가 물건을 구매하기 전부터 미리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걸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굿리치 조사에서도 ‘중고거래에 대한 생각’으로 20·30세대는 '알뜰하다‘(50%)에 이어 ‘환경보호’(25.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사이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리커머스’ 시장은 2008년 4조원에서 2019년 20조원 규모로 커졌다. 국내 이커머스업계 선두인 쿠팡의 한 해 거래액(21조원)과 엇비슷하고, 향후 10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엔 하루 사용자(DAU)가 156만명이 몰려 쿠팡(397만명)에 이어 2위에 올랐다(지난해 4월). 이러니 대기업들도 뛰어든다. 롯데쇼핑은 중고나라 지분 93.9%(1000억원)를 인수하는 사모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했고, 네이버는 최근 스페인 1위 리커머스 ‘왈라팝’에 약 1550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카페에 당근마켓과 유사한 '이웃톡'을 신설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풍요로운 시대에 자라서 여러 가지 물건을 경험하길 원하면서도 그만큼 돈은 부족하니 중고거래라는 합리적 방식을 찾아나선 것”이라며 “그와 동시에 중고거래를 통해 MZ세대가 중시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원순환에 기여한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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