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공시가격 논란에 대하여

2021. 4. 1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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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선거 이후 부동산 정책 전환 목소리 커지고 있지만

조세·복지행정의 공정성과
형평성 높이기 위한 공시가격 현실화 후퇴해선 안돼

로드맵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산정·심의 자료 공개해 신뢰 높이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4·7 재보궐선거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실수요자 대상 대출 규제 완화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고 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도 번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4일째인 지난 11일 서울시 차원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재조사하겠다고 예고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15일 공개한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은 잘못 산정된 것이어서 재조사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선거 직전인 지난 5일 국회에서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국토부의 공시가격안을 비판했던 원희룡 제주지사도 여야에 공시가격 검증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공시가격은 매우 민감한 주제다. 각종 조세와 준조세, 부담금, 감정평가, 복지행정 등 60여 개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부동산 보유자들의 이해와 직결돼 있다. 공시가격은 부동산이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적정 가격을 가리키는데 시세의 50~70% 수준으로 실제와 괴리가 크다. 정부는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현실화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토지는 2028년까지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현실화와 집값 급등이 맞물려 지난해에 비해 19% 올랐다.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공시가격 인상은 보유세 부담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부동산 보유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불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공시가격 상승을 두고 ‘세금 폭탄’ ‘징벌적 과세’라고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조세와 복지행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으로 자산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는 바람직하다. 단기간에 집값이 수억원, 수십억원 올랐으면 보유세도 연동돼 오르는 게 당연하다.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보유자가 아니라면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지 않는다. 전국 아파트의 92.1%가 공시가격 6억원(시세 9억~10억원) 이하인데 정부의 한시적 감면조치로 3년간은 재산세 부담이 오히려 줄고 중장기적으로도 상승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소득이 거의 없는 은퇴 1주택자들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을 근거로 공시가격 인상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 공시가격 9억원(시세 약 12억~13억원) 초과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연소득이 1000만원 이상이거나 공시가격 15억원(시세 약 2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피부양자에서 제외되는데 올해는 해당자가 1만8000명 정도다. 자기 집이 없고 연소득이 1000만원대인 직장인도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시세 20억원이 넘는 주택을 가진 자산가가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건 비정상이다.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공동주택도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고령자, 장기보유자에 대해서는 최대 80%까지 종부세를 감면해 주고 있어 실거주자의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199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논란이 일단락된 사안이다. 게다가 집값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은 집을 팔면 언제든 실현할 수 있는 이익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 불만이 더불어민주당의 보궐선거 참패에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정책 전환엔 신중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 서민의 주거 환경에 미칠 영향을 냉철하게 점검해 바꿔야 할 것과 유지·강화해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를 높여 나가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토부는 오는 29일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결정·고시할 예정이다. 예고한대로 공시가격 산정과 결정을 위한 기초자료와 심의자료, 유형별 종합적 시세반영률 등을 상세하게 공개해 불신을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소득이 없거나 미미한 고가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 납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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