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법무부장관의 '내로남불'

정효식 2021. 4. 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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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1팀장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취재를 독려하는 데스크 입장에서 고민을 부른 두 사건이 있었다. 스토킹하던 여성을 포함해 일가족 3명을 차례로 살해한 다중·연속 살인범 김태현의 경우가 첫 번째다. 그는 지난 9일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될 때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취재진 질문에 응답했다. 질문 가운데 “TV 화면을 보고 있을 어머니께 할 말이 없느냐”가 포함됐다. 김태현이 진실로 반성하는지 확인하려는 질문이었고, 피해자 인권이 우선이란 여론이 압도적이겠지만 불편했다. 사소한 일탈에도 부모에 연대책임을 물렸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니 엄마는 미역국은 먹었나”라는 폭력을 매일 누군가 당했다. 1980년 5공화국 헌법으로 연좌제 처벌이 금지됐지만 일상에서의 연좌제는 그 후로도 오래 지속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0일 피의사실공표죄를 거론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을 때 역시 불편했다. 개인 페이스북에 “피의사실공표하면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오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최근 피의사실공표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번엔 니편, 내편 가리지 않는 제도개선 반드시 이룹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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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장관의 진정성은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꺼낸 순간 무너졌다. 박 장관은 2019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의 김학의 사건 기획사정 의혹과 관련 수사팀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제출받으며 진상조사로 관련 후속 보도를 막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름이 거론된 시점과 일치한다.

과거사진상조사 당시 ‘윤중천 보고서’가 유출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별장 오보를 포함해 별장 접대 리스트 오보가 이어질 땐 침묵하곤, 법원에서 줄줄이 ‘허위’ 판결이 나오고 청와대 기획사정으로 수사가 본격화되자 피의사실공표를 문제 삼는 게 아닌가.

법무부 장관의 피의사실공표의 ‘내로남불’은 박 장관이 처음이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은 본인 자녀 입시 비리와 가족 펀드 의혹 수사가 벌어질 당시 공소제기 전 수사상황 일체 공개를 금지하는 법무부 훈령을 입안했다. 이어 추미애 전 장관은 검찰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기소하자 언론은 물론 국회 법사위원에게도 공소장을 비공개했다. 국정농단·사법행정권남용 수사가 끝나고 현 정권 수사 시작에 맞춰 검찰의 수사 브리핑 제도가 사라진 건 우연인가, 국민 개개인 인권보호라는 피의사실공표죄의 법익에 부합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 장관은 정권 수호와 차기 대권용 정치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 집행자다.

정효식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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