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비전

2021. 4. 1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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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설계할 힘을 잃은 정치
과연 오만과 독선이 문제였나
한 세대 뒤의 비전을 보고 싶다
장강명 소설가

정부가 2003년부터 추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사업이 재작년 말에 마침내 끝났다. 개인적으로 찬성한 정책은 아니었다. 공공기관 153개와 직원 5만여 명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데 어찌 효과가 없으랴. 그러나 그로 인한 비효율도 컸다. 과연 막대한 사업비 이상의 성과가 나올까?

한 세대쯤 지나야 제대로 평가가 가능하지 싶다. 공공기관들이 새 터전에서 지역 사회와 잘 융합하고, 급조한 혁신도시들이 공기업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발전 동력을 갖추게 된다면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의 탁월한 업적이 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대삽질’이 될 테고.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이제 무를 수는 없으니.

방식에 썩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사업 아래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철학이 있음을 이해한다. 그 철학 아래에는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 철학과 문제의식에 십분 공감한다. 노무현은 그 정도 내공과 비전은 지닌 정치 지도자였다.

그런 국정운영 철학 아래 그의 세계관이 있다. 노무현은 한국 사회를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대다수 비주류를 소외시키는 곳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서 기득권을 공격했고, ‘참여’를 부르짖었다. 당시 우리에게 필요했던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너무 거친 이분법이었고, 분노를 동력으로 삼았기에 늘 심한 갈등을 몰고 왔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과제들은 이해하기 쉽다. 실용주의라는 깃발을 걸고 녹색성장, 자원 외교, 원전 수출 등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명박은 한국 사회를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기업으로 봤던 것 같다. 기업인의 세계관을 지닌 그는 토요일에도 출근하라고 공무원을 닦달했다. 고객의 이익, 즉 국민소득을 높이기 위해.

그의 임기에 우리에게 필요했던 시대정신이었나? 당시 한국은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었다. 대기업이 번 돈이 비정규직, 자영업, 무직자에게 흘러가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녹색성장은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훌륭한 산업 비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사회·노동·복지 분야에서 그런, 아니 그 이상의 고민이 필요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내 탓은 아닌 듯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든가 ‘창조경제’ 같은 문구의 뜻 자체를 잘 모르겠고, 그 둘을 잇는 논리적 맥락은 더 알 수 없다. 박근혜의 세계관은 좁고 슬프고 혼란스러웠으리라 짐작한다. 퇴행적이기도 했고. 그는 국가 지도자가 되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 차례다. 나는 기본적으로 현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 썩 논리정연하다고 보지 않는다. 자신들도 그걸 알기에 더 감성에 호소하는 것 아닐까. 지도층의 세계관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들을 연상케 한다. 옛 가르침을 복원하면 새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막연한 도덕주의. 이런 세계관을 지니면 과거는 꼼꼼히 살피지만(적폐 청산) 미래에 대해서는 관념에 기대게 된다(소득 주도 성장론).

문재인 대통령은 오랫동안 정치를 피했고, 국가의 미래 비전을 고민할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그가 살면서 오래 보아 온 적폐는 검찰 권력이었고, 그래서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 같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검찰 개혁이 왜 지금 한국 사회의 최우선 과제인지 궁금해한다.

현 정부는 과거 두 정권을 응징하는 작업을 철저히 했다. 현재의 사건 사고들도 잘 관리한 편이었다. K-방역에 박수를 보낸다. 반면 미래의 일들, 예를 들어 타다 서비스가 불러온 논란에 대처할 때는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방향 없는 임기응변이었다.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의 사업 내용은 급하게 채워진 듯 보였다.

보궐선거 참패 뒤 여권에서는 이런저런 상반된 분석이 나온다. 강성 팬덤에 휘둘린 게 잘못이었다든가, 반대로 초기의 선명성을 잃은 탓이라든가. 아마 합의를 보지 못할 테고, 다음 대선까지 이렇게 가겠지. 야당이 지리멸렬하니 정권 재창출도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 정부에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한 세대 뒤의 미래를 설계할 힘은 이제 남지 않은 것 같다. 4년 전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 속에 개혁 전권을 위임받는 정부가 근시일 내에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적처럼 그런 에너지가 모였을 때 잘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게 너무 아쉽다. 오만·독선 같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교한 비전과 철학이 부족했던 게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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