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시설에 폭탄 터져" ..'핵합의' 겨냥한 네타냐후의 강공
이란 핵시설 공격을 놓고 이란-이스라엘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며 미국이 추진하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도 고비를 맞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의회 안보위원회에 출석해 지난 11일 발생한 나탄즈 핵시설 정전 사태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규정하며 “우리는 제재를 풀기 위한 이란의 노력을 막는 시오니즘 정권(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시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가 한 익명의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인인지 미국인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정전 사태는 핵시설에 밀반입된 원격 폭발물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기존에 알려진 사이버 공격이 아닌 물리적 공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들도 “폭탄은 나탄즈의 주요 배전선 근처에 설치됐고, 사고 당시 1000여명이 근무 중이었다”며 “핵시설에서 이란이 겪은 최악의 공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란 의회 소속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안 국제문제 특별보좌관은 트위터에 “이번 일이 일어난 시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협상 과정에서 벨벳 장갑 속에 숨긴 적들의 피 묻은 발톱을 자주 경험해왔다”며 미국 정부 개입을 의심하는 발언도 했다.
같은 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란을 향한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중동에서 이란의 광신적인 정권만큼 위험한 것은 없으며, 그들은 핵무기를 포기한 적이 없기에 우리가 막을 것”이라며 “직면한 위협에 대처하는 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상호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엔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참석하고 있었다. 이란 핵합의 복원과 제재 완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에 분명히 전달한 것이다.
미국은 이번 공격이 핵합의 복원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분위기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7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 재개를 발표하는 등 중동 정책 '새 판짜기'에 나선 상태였다. 이란과의 핵합의 복귀 협상도 ‘최대한의 압박’을 강조했던 지난 정권과 다른 기조를 보여주는 행보다.
하지만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은 핵합의 복귀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우디 국영 아랍뉴스는 “이스라엘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타결된 핵합의로 이란이 국제적 정통성을 인정받고 수십억 달러가 흘러 들어가 이란군에 힘이 실리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며 “이로 인해 미국이 이스라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줄 것이란 믿음도 잃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치른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하는 등 약화된 정치적 입지도 여론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배경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일단 양측과의 개별 회담으로 상황 관리에 나서는 모양새다.
12일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3일 이스라엘의 카운터파트인 메이르 벤 샤바트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화상 전략대화를 통해 이란 핵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WP)는 그간 외교적 노력을 수포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번 주 이란과 미국 협상단의 간접적인 추가 회담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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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美 운신 폭 좁아져"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부문 책임자 알리 바에즈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이란이 이스라엘 의도대로 핵협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번 사건으로 이란 내 협상파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분석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선 지난 6일부터 이란 핵합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당사국 회의가 열리고 있다. 6일 당시만 해도 러시아 대표부의 미하일 울리야노프 대사가 트위터에서 “JCPOA 공동위원회 회의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란핵합의는 지난 2015년 이란이 미국·영국·프랑스·중국·독일·러시아 6개국과 체결한 것으로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대폭 해제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오바마의 외교 실패’라고 규정하며 파기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다시 복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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