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CPU 시장 진출"에 인텔 "車반도체 생산"으로 응수
「 “엔비디아가 인텔에 한 방 날렸다.” 」
그래픽 처리장치(GPU) 반도체를 제조해 온 엔비디아가 12일(현지시간) 인텔이 주도해왔던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생산을 선언하자 미국 IT 매체인 엔가젯이 내놓은 평가다.
인텔을 겨냥한 엔비디아의 도전장은 이날 온라인으로 개최한 그래픽 테크놀로지 컨퍼런스(GTC) 2021행사에서 나왔다.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용 CPU인 ‘그레이스(Grace)’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제품의 출시 시점은 2023년초로 우선 슈퍼컴퓨터용으로 보급된다. 엔비디아는 그레이스가 스위스 국립 슈퍼컴퓨터센터(CSCS)와 미국 에너지부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처음 사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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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인텔의 심장을 넘본다”
CPU와 GPU는 데이터처리장치(DPU)와 함께 데이터 서버나 인공지능(AI) 운용에 쓰이는 핵심 반도체다. 엔비디아는 GPU와 DPU는 생산했지만, 업계 1위 인텔이 주도한 CPU는 만들지 않았다.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출시가 인텔의 ‘아성(牙城)’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엔비디아 측은 “엔비디아 GPU와 기존의 x86 기반 CPU를 쓰는 것보다 엔비디아 GPU와 그레이스를 사용하면 AI 처리 속도가 최대 10배 증가할 것”이라며 “1개월 걸리던 계산이 단 3일로 단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x86은 인텔이 개발한 CPU 아키텍처(설계방식)다.
미 CNBC는 “x86은 인텔 프로세서의 심장”이라며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출시는 인텔이 90% 이상을 점유한 서버용 프로세서 시장을 넘보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엔비디아는 3종류의 칩(GPU·DPU·CPU) 생산업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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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인수하며 CPU 시장 장악 노린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CPU분야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기업인 영국의 암(ARM)을 40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ARM 기술을 바탕으로 데이터 서버와 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시장 장악에 나설 의지를 보여왔다. 그레이스 역시 ARM의 반도체 설계방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인텔·AMD 양강체제였던 CPU 시장이 엔비디아를 포함한 3강 체제로 변화할 것인가”라며 “엔비디아는 ARM 인수로 자체 생산 능력도 생긴 만큼 단기적으론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강자로 자리 잡은 뒤 이후 범용 CPU 시장에 진출해 인텔과 AMD와 경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수는 있다. 엔비디아의 시간표상 2022년까지 ARM 인수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레이스 출시 시점이 2023년인 이유다. 하지만 인수와 관련된 주요 국가 중 한 곳인 중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에선 ARM 본사와 ARM차이나가 중국법인 경영권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며 “중국이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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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CEO “위협 느끼는 건 오히려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도전에 인텔도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모양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이날 미 경제전문지 포춘에 “인텔은 AI 분야를 주도하는 업체가 될 것”이라며 “공격적 태세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도 엔비디아의 핵심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에 더해 그는 “(엔비디아의 CPU 진출은) 인텔에 위협을 느껴 움직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인텔이 출시한 3세대 데이터센터용 CPU ‘아이스레이크’가 엔비디아가 주력으로 삼는 AI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을 밝히며 인텔에 위협을 느낀 엔비디아가 CPU시장 진출로 응수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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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반도체 생산해 ‘파운드리’ 물꼬 트는 인텔
엔비디아의 추격전 속 인텔도 새로운 시장 개척을 선언했다.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겔싱어 CEO는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소집한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 후 로이터 통신에 “향후 6~9개월 이내에 실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그동안 PC와 서버용 CPU 제조만 했다.
이런 인텔의 결정은 양수겸장(兩手兼將)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텔은 지난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업계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텔로선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통해 파운드리 기술력을 시험할 수 있다. 미 IT 매체 더버지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은 인텔이 위탁생산이란 새로운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음을 (시장에)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통해 반도체를 ‘국가 인프라’로 규정한 바이든 행정부에 호응하는 측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공급망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며 “이 모든 것은 인프라”라고 말했다. 아시아에 넘어간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되찾아 올 의중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겔싱어는 “(이날 회의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우선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에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백악관에 전했다”며 “(미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과 연구개발(R&D), 교육, 일자리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말했다. 겔싱어 CEO는 앞서 CNBC 인터뷰에서 “12% 수준에 머무는 반도체의 미국 내 자급률을 3분의1 수준까지는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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