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규제 깃발 들었지만..상의는 신중모드, 전경련은 패싱당했다
‘반(反) 규제’를 기치로 한목소리를 내던 주요 경제단체 사이에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공동 대응을 표방하지만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돼 기업 규제 입법에 대응하는 경제계의 동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6개 경제단체는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 건의서를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 6개 관계부처에 제출했다. 이들은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완입법이 먼저 추진돼야 하고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시행령도 합리적으로 제정될 필요가 있어 건의서를 냈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는 건의서에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 시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경영책임자의 역할을 실현 가능한 범위 내로 규정하고, 중대재해 방지 책임에 대해서도 위임 근거를 두지 않은 불명확한 규정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종사자의 과실이 명백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면책하는 조항을 마련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필요한 관리사항을 별도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정부 중심으로 컨설팅을 강화해 현장의 혼란을 덜어달라는 요구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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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정부와 대립각’엔 신중
경제단체가 공동 대응에 나선 건 정치권이 입법 과정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다급함에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중대재해법 등 이른바 기업 규제 법안이 잇달아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제단체 사이에서는 “모든 경영계가 공통으로 끈질기게 요청한 사항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답해 한다.
하지만 경제단체가 앞으로도 한 목소리를 낼지를 두고는 분석이 엇갈린다. 우선 대한상의는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정부의 기업규제 관련 사안에 정면 대응을 피하려는 모습이다. 전임 박용만 회장이 국회를 수시로 방문해 규제 입법 중단을 호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 회장은 지난 29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의 규제 강화에 대응해 다른 경제단체와 협력할 계획이 있는지 묻자 “규제가 생기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규제하지 말라고 막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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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패싱’ 논란도
최근엔 경제단체간 힘겨루기 양상까지 불거져 있다. 이번에도 경총이 당초 공개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 건의서에는 경제5단체(경총, 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이름을 올렸을뿐 전경련은 빠져있었다. 경총은 건의서를 발표한 지 두 시간여가 지난 후 뒤늦게 전경련의 이름을 추가한 수정본을 다시 공개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지난 3월에도 중대재해법 관련 논의에 참여했다”며 “행정상 실수로 전경련의 이름이 빠져 수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총 관계자는 “최근 전경련을 제외한 경제5단체가 공동 입장을 발표하는 일이 많았다”며 “전경련도 함께 할 의사를 밝혀와 추가했다"고 밝혔다.
경제계에서는 이를 전경련의 현재 위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본다. 전경련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주도한 것을 계기로 현 정부에 '적폐'로 낙인 찍혔다. 지난 7~8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계와 소통을 위해 대한상의, 경총, 중기중앙회, 중견기업연 회장과 잇따라 만났지만 전경련은 회원사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방문하지 않았다.
경총과 전경련은 통합 방안을 놓고도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지난 2월 손경식 경총 회장은 참모들에게 “전경련을 흡수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전달해 재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지만, 전경련은 "전경련과 경총은 재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전혀 다르다"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에 대응해 경제계가 힘을 모아도 모자랄 시점인데 분열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산적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요 경제단체가 협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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