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청년이 2000만 원 '작업 대출' 하고 벌어진 일
[김동규 기자]
▲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가 운영하는 광주청년드림은행이 제작한 카드뉴스다. |
ⓒ 광주청년드림은행, 일러스트 작가 윤연우 |
광주에 사는 20대 청년 선우(가명)씨는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스무 살 이후로는 줄곧 일터를 전전했다. 물류센터, 휴대폰 가게, PC방, 술집, 공사현장... 선우씨가 20대의 절반을 보내는 동안 거쳐온 곳들이다. 그는 일터에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인격적 모욕을 겪는 일이 많았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지막 일터에서는 사장의 폭력도 있었다. 몸과 마음에 생긴 상처 때문에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로 선우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휴대폰비와 식비도 부족해졌다. 당장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선우씨는 대출을 받은 후 조금씩 대출금을 갚아나가기로 결심했다. 1년 전에 "혹시 돈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했던 지인이 떠올랐다. 휴대폰 가게에서 함께 일했던 지인이었다. 다른 곳은 "어차피 안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알아보지도 않았다. SNS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취하자 지인은 대출을 도와주는 사람을 안다며 '업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간단한 연락을 나눈 직후 업자가 차를 타고 집까지 찾아왔다. 그는 PC방에 가서 '작업'을 해야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직장이 없던 선우씨는 다른 방법으로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업자는 선우씨에게 불러주는 주소를 대출 신청서에 쓰라고 했다. 선우씨는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선우씨는 구체적인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비대면으로 대출을 받았다. 은행 측이 건 확인 전화에는 사무실 직원이 "네, 선우씨 이곳에서 일합니다"라고 답했다. A 저축은행이 선우씨에게 연이율 20%로 2000만 원을 대출해주었다. 업자는 미리 강조한 대로 이중 40%에 해당하는 800만 원을 수수료로 요구했고 선우씨는 시키는 대로 업자에게 돈을 주었다. 받을 수 없는 대출을 받게 해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빌린 날 선우씨는 밀렸던 월세, 휴대폰비를 내고 옷과 쌀을 샀다. 하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한 선우씨에게는 이미 2000만 원이 넘는 빚이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다음날 선우씨는 업자에게 연락을 걸어, "받은 돈을 돌려줄 테니 지금까지의 일을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했다.
업자는 잠시 뒤에 전화를 주겠다고 했으나, 그날 이후 업자의 연락은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고 했다. 선우씨에게 업자를 소개시켜준 지인은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선우씨는 지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선우씨는 인터넷에서 자신과 같은 사례를 찾았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불규칙한 수입과 낮은 임금으로는 매달 50만 원에 달하는 상환금을 갚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아래 광주청지트)에서 진행한 불법금융 피해상담 캠페인을 접했다. 광주 청지트는 지역 청년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다. 선우씨는 광주 청지트에서 부채상담을 받았다.
선우씨는 상담을 받고 나서야 대출 수수료를 받는 행위가 불법임을 알았다. 또 대출 계약은 2주 안에 청약철회를 통해 취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돈에 쫓기며 살아왔다는 선우씨는 채무조정제도를 안내받고 안정적인 상환을 시작했다.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통해 매월 20만 원씩 8년간 대출금을 상환하게 되었다. 개인워크아웃은 과중한 채무를 지닌 개인에게 이자율 조정, 상환기간 연장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선우씨는 소득이 아무리 불규칙해도 매달 20만원은 반드시 갚기로 하고 단기 아르바이트 등에 참여했다.
▲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홈페이지 캡쳐 |
ⓒ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
선우씨 사례는 '작업 대출'로 불리는 불법 금융이다. '작업 대출'은 피해자에게 소득이 있는 것처럼 꾸며내어 대출을 받게 한 후 그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기는 행위다. 하지만 선우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고조차 못 하고 있다.
얼마 후 선우씨는 난생 처음으로 4대보험이 보장되는 직장을 얻었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작은 빵집이었다. 그 사이 집에서 나와 혼자 살던 선우씨는 가족들에게 본인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꿈도 생겼다. 언젠가 자신만의 빵집을 차리고 싶다는 꿈이었다.
2020년 7월에는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에 제출된 소득증빙 서류를 조사하여 43건의 '작업 대출' 사례를 적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피해자의 대부분이 20대 청년이었으며, 이들은 모두 비대면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금감원은 "청년층이 작업 대출에 연루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현재 이 사례를 제외하고 '작업 대출'과 관련된 제대로 된 현황 파악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주세연 센터장은 "한 번도 공적인 경험을 해보지 못한 개인들은 주변의 정보를 따라가게 된다"며 "공식적인 정보를 찾고 그것을 기준으로 주변의 정보를 판단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불법 금융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금융사회 소비자의 권익과 대응법을 교육받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진 청년들이 기울어진 판에서의 격차에 고통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주 센터장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광주 청지트를 찾아온 '작업 대출' 피해자는 모두 26명이다.
주 센터장은 "불법 금융 사건에서는 개인보다는 그에게 그런 선택을 유도한 사회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며 "당장 청년들이 대출이나 생활비를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접할 수 있는 광고의 대부분이 불법 금융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접하면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 혼란스럽다"라고 주장했다.
주 센터장은 또 "비대면대출이 확산되면서 대출이 쉽고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대출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책임이 줄고 소비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행태가 되어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상담을 통해 만난 한 피해자는 작업대출 일당이 1년 후에도 대출 홍보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며 "이들 일당의 조직적·지속적인 불법 행위로 2030세대가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불법이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의 소극적 대처를 중단하고 온라인까지 포괄한 적극적 제재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주 센터장은 "불법금융 피해를 당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저희 단체를 비롯한 상담 기관에 연락을 취해 달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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