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광주 아이들 목소리 들으며 걷는 데이지 꽃길
[김형순 기자]
5.18민주화운동과 광주정신을 기리고자 1995년 설립된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 비엔날레다. 이번 13회를 맞아 세계정상급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는 한국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문도 더 재촉할 것이다.
1995년 첫 광주비엔날레에서 백남준은 특별전 '인포(정보)아트'를 열어 당시 첨단미술을 하는 최고의 작가들 초대해 21세기 뉴미디어아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백남준도 선사시대와 21세기를 통째로 연결해 전자화한 '고인돌'을 선보였다.
<르몽드>가 광주에서 처음 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이제 한국이 서구와 문화전쟁을 시작했다고 경계할 정도였다. 또 이 신문은 최근에 한국이 현대미술의 거점이 돼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주제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이걸 '떠오르는 희망, 맞이하는 신세계'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팬데믹 속 인류공동체 생존방식에 서광을 주면 더 좋으리라.
▲ 제 13회 2021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 걸린 주제표어 보인다. |
ⓒ 김형순 |
지난 1일 열린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5월 9일까지 40여 개국 69작가(명/팀)가 참여해 39일간 열린다. 40점의 커미션 신작 등 전 세계에서 출품한 450여 작품을 선보인다. 이 정도 양이면 상당하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 위기 속 뭔가 희망의 빛을 주고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고 문명의 축을 바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시대요청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층 전시실에는 '샤머니즘박물관', 가회 '민화박물관'도 마련돼 있다. 현대미술은 문화인류학의 모자를 쓰지 않으면 퇴출당할 형세다. 광주비엔날레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백남준은 농담처럼 21세기 종착점은 '정령술'이라고도 했다. 그래선가 두 감독도 "원시성과 샤머니즘이 보여주는 지혜, 모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모델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C. 레비-스트로스'가 생각난다. 그는 야만과 야생을 혼동하고 서구인이 생명원류의 근간이 되는 야생의 정신을 깨닫지 못해 서구가 길을 잃었다고 지적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온라인 매체인 'E-플럭서스'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번 광주는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한국의 샤머니즘 요소가 넓게 포함됐다고 평했다.
갑자기 노자의 '무위자연', 루소의 '자연 본성으로 돌아가자'와 같은 말이 떠오른다. 예컨대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기 쉬운 서구 근대의 '이분법(Non-binary)'을 넘어, '해원상생' 하는 정신이 요청된다고 할까. 백남준은 이미 'TV부처'를 통해 '서양기술과 동양사상 반반씩 뒤섞어 상호공존과 긴밀한 교류라는 답을 내놓았다.
▲ 핀란드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Outil Pieski)' 작품 '함께 떠오르기(Rising together) 앞에서 선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 이 작품은 피에스키 작가가 속하는 북유럽 사미족 여성의 연대와 공동체성을 알리기 위해 만든 수공예품이다. |
ⓒ 광주비엔날레 |
이번 비엔날레는 네덜란드 출신의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와 인도 출신의 '나타샤 진발라(Natasha Ginwala)'가 공동예술감독을 맡았다. 진발라는 미술 분야에서 왕성한 기고자이기도 하다. 두 감독은 영국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인 파워 공통 77위 올랐다. 이들은 '치유기술, 토착세계, 모계체계, 정령주의, 생태주의' 등을 메인테마로 삼는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역시 미술인 파워 72위에 선정 세 사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정상급이다. 김 대표는 2002년부터 상징성 높은 비무장시대를 전시장으로 하는 'REAL DMZ PROJECT'는 독보적이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 등 경륜과 견문이 넓어 이 행사를 알차게 구성했다.
이제 광주민주화운동는 정치적으로 아시아를 비록 중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80년대 필리핀의 반독재투쟁은 물론이고 최근 태국과 미얀마 반군사독재 투쟁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동남아시아 예술의 수준을 선진화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는 데도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이번 비엔날레 8곳 전시장을 소개해 본다. 먼저 1관부터 5관으로 된 '본전시장'이 있고, 광주 5월의 현장감을 주는 '구국군광주병원' 그리고 '국립광주박물관', '광주극장',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광주문화재단', 'ACC(문화창조원) 5관', '은암미술관' 등이 있다. 또한 9곳의 커미션 전시장도 있다. 그러면 그곳에 설치된 작품을 하나씩 감상해보자.
▲ 문선희 작가 I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2021 |
ⓒ 김형순 |
작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맞아 1년 연기됐지만, 올 광주비엔날레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예술의 본질 중 하나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일사불란한 사회적 위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막힌 곳에 구멍을 내고 억압과 독재에 헤쳐나가는 그런 면에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의 사회적 전기라는 관점에서 현대미술을 맥락을 재정비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먼저 트라우마의 기억창고 같은 '구국군광주병원'에서 전시가 열린다. 64년 개원, 80년 당시 계엄사에 연행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한 학생, 시민들이 치료받던 곳이 전시장 됐다. 여기에서는 '이불' 작가의 '오바드V', '임민욱' 작가의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 등이 전시된다. 그리고 5월 정신을 되새기는 12명 지역작가의 '5월 특별전(MaytoDay)'도 열린다.
김선정 대표는 "이번 전시는 현재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작가들이 바라보고 말하려는 시도"라며 "여전히 아프고 힘들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판을 다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더 많은 작품 있으나 지면상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를 추가로 소개한다. 작가는 1980년 당시 유년생이었던 80명과 인터뷰하고 그걸, 광주 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화했다. 작가는 그들의 숨소리를 사운드아트로 바꿔 관객들이 그날을 기억하면서 5월의 떠도는 혼을 어루만지듯 하얀 데이지 꽃이 만개한 오솔길을 걸어보도록 조성했단다.
▲ 김상돈 I '지옥의 문' 2021 |
ⓒ 김형순 |
그럼 본 전시장을 가보자. 주최 측은 1층만은 관객들에게 전시의 폭을 넓히기 위해 무료 입장하게 했다. 작품간 간격을 넓히고 가벽을 최소화해 전시장 넉넉하고 여유롭다.
이번 비엔날레는 2번의 연기 등 돌발변수가 많았다. 이번 전시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서 50명이 넘는 전 세계 유수의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협력하는 양상을 띠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작품 제작에서도 고고학적인 측면 그리고 첨단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도 있다. 지구촌 시각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했다.
우선 '김상돈(1973년생)' 작가의 '지옥의 문'(2021)를 보자. 이 작품은 화려한 꽃상여 운구행렬을 제의적 설치물로 시각화했다. 진도의 전통장례문화인 '다시래기'를 모티프 삼았다. 화려한 장식에도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에 대한 가없는 애환으로 가득 넘친다.
강렬한 역사적 각성의 촉구하는 광주 출신인 '이상호(1960년생)', 그는 92명 포승줄과 수갑으로 묶은 친일파의 인물화인 '일제를 빛낸 사람들'도 선보였다. 그들의 비열하고 부정한 성품과 죄악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다. "그 얼굴에 넘치는 개기름은 민족을 쥐어짠 고혈이며, 고운 옷은 조국을 팔아 얻은 비단옷이다"라고 작품 옆에 서슬 퍼렇게 써놨다.
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작품 30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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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3회 광주 비엔날레 홈페이지 https://www.gwangjubiennale.org/gb/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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