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고영한은 왜 본인의 국보법 판결 꺼냈나 [法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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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를 격랑으로 몰아넣은 사법행정권남용,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은 2019년 2월, 양승태 전 원장이 직권남용죄 등으로 구속기소되며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습니다. 판사 60여 명이 징계 대상에 올랐고 14명이 기소됐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 3인의 재판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세 명의 대법관, '법리 베테랑'을 상대로 혐의를 입증해야하는 검찰은 물론, 유·무죄를 결정해야 할 재판부도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전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이 확정되며 올초 마무리됐지만, 닮은꼴 사건인 사법농단 재판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법원 인사로 ‘재판부 교체’라는 변수까지 맞았습니다.
3명의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1심,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항소심을 포함해 2라운드에 접어든 사법행정권남용 재판을 '法ON'이 중계합니다.
」
“1970,80년대 사법부는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단순 소지만으로도 반국가단체(북한)를 이롭게 할 목적이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그 행위에 이적(利敵)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유죄 선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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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전직 대법원장과 두 명의 전 대법관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형사대법정. 형사35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의 공판갱신절차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발언 기회를 얻은 고 전 처장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소지죄 판단에 대한 사법부의 시각 변화를 이번 사건에 빗댔습니다.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엔 ‘헌법재판소 상대 대법원의 위상 강화’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연구회 와해’ 등 (전임 대법원의) 여러 목적이 장황하게 설시돼 있다”면서 “어떤 목적에 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평가자의 성향이나 이념,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를 형사법 영역에서 유·무죄로 판단하기 위해선 보다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새로 구성된 재판부께서는 추측이나 예단에 입각하지 말고 증거재판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 달라”며 말을 맺었습니다.
국보법 판결은 고 전 처장 본인이 2015년 11월과 2018년 1월 주심 대법관으로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사례를 인용한 겁니다. 2015년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기사 등 53개 글을 자신의 개인 블로그와 노트북에 소지한 데 대해 "이적 행위를 할 목적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18년에도 같은 취지로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 행위를 이적표현물 소지·반포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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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정점” vs “백지 고치기식 기소”
세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공판갱신절차의 첫날 공통으로 “검찰의 공소사실은 범죄사실과 관계없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앞서 고 전 처장 지적대로 피고인들의 범행 동기, 즉 목적을 설명하려는 부분이 추상적이고 장황해 “공소장엔 범죄 사실만 적어야 한다는 공소장 일본주의를 어겼다”는 주장입니다.
피고인들은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공모 관계’도 뭉뚱그렸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행정처는 처장을 정점으로 하고 대법원장은 상시 보고를 받는 업무체계가 아닌데, 양 전 원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시했다는 건지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일단 양 전 대법원장→박·고 전 처장→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 또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실장→행정처 심의관 또는 개별 재판부로 이어지는 체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변호인은 이 때문에 “검사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몰라서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생기고 있다”며 “A와 공모했다고 해서 방어를 하고 나면 나중엔 B와 공모를 했다고 하는 것이냐”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식의 백지 고치기식 공소사실 보충은 허용하면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반면 검찰은 이규진 전 실장 업무수첩의 ‘대(大)자’가 “대법원장이 보고를 받았고 지시도 했다는 근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핵심 파트라 지난 9일과 12일 공판에서는 이규진 전 실장의 증언 녹취록을 새 재판부가 다시 승인하는 절차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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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승인 없었다” vs “‘대(大)자’ 표기”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크게 ▶대법원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관철 ▶헌재 상대 대법원의 위상 강화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와 불법적인 예산 편성 등을 통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 전 원장의 개별 공소사실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와 재판거래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판거래 ▶통합진보당(통진당) 국회의원·지방의원 지위확인 행정소송 재판개입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한 내부 정보수집 ▶한정위헌 위헌제청결정 사건의 재판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모임(인사모) 와해 시도 등 47가지에 달합니다. 적용 혐의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직무유기·공전자기록 위작행사·특가법상 국고 손실 등 9가지입니다.
이중에서도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과 인사모 와해 시도 등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법농단’의 핵심 사건으로 불리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상고법원 도입 관철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정부 여당이 원하는 재판 결론을 내리고, 내부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시도했다는 겁니다. ‘정당한 직무 범위’를 벗어난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법원행정처의 심의관 또는 관련 재판부에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 양 전 원장 등 세 피고인들은 “구체적인 지시·승인은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법행정권 남용이 아닌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 속한다”고 재차 주장했습니다.
양 전 원장의 변호인은 “상고법원 도입은 사법정책자문위원회라는 외부위원회가 과거부터 꾸준히 제안해 온 것”이라며 “피고인은 이를 관철시키려 노력했지만 위법하게 할 것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014년 11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이뤄진 강제징용 대책 ‘소인수 회의’는 양 전 원장은 “사후에 보고 받았고, 회의 결과에 대해 어떤 실현 방안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소인수 회의에 참석한 박 전 처장 측 역시 “소인수 회의에서 외교부 장관의 설명을 듣고 참고인의견서 제출제도에 관한 검토 의견을 보고 받은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인사모 와해 의혹이 일었던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대해선 “전임 대법원장 시절부터 있었던 인사자료로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 양 전 원장 측은 “행정처 실무진이 올린 1안을 결재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오히려 ‘인사는 행정처가 다 하고 어려운 것만 내가 결정하라는 것이냐’는 말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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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보다 늘어지는 양승태 재판
296쪽에 달하는 공소장, 수십만 쪽의 기록, 124차례의 공판과 80여 차례의 증인신문…. 이번 재판은 장장 2년 2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초 재판부 교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공판갱신절차만 수주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공판갱신절차는 공판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전임 재판부에서 심리했던 내용들을 법정에서 다시 검찰과 피고인들에게 재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지난 7일 법정에선 갱신 방식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30여분에 걸쳐 공회전을 거듭하다가 재판부의 개입으로 일단락이 되기도 했습니다.
80여 차례 이뤄진 증인신문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하겠다는 검찰과, 어떻게 왜곡될지 모르니 녹취파일을 최대한 들어야 한다는 변호인이 충돌한 겁니다. 결국 재판부는 이규진 전 실장 등 4명의 핵심 증인들의 증언 녹취를 발췌해 다시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1심 결과가 올해 안에 나오지 않으면 최종 결론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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