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ey] '반도체 전쟁'..1차 전투는 반도체 장비 쟁탈전

강남규 2021. 4. 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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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전쟁 조짐이 나타나
차량용 반도체 공급 위기를 명분 삼아
바이든이 중국식 국가주도 육성 선언
반도체 전쟁의 1단계는 줄 세우기
특히 반도체 장비의 각축전 예상
핵심 기술 없으면 끌려다닐 운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선언했다. 사진은 올해 2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반도체·전기차배터리·희토류 등 주요 물자의 공급망 점검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 [EPA] US President Joe Biden holds a semiconductor during his remarks before signing an Executive Order on the economy with Vice President Kamala Harris (not pictured) in the State Dining Room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USA, 24 February 2021. [EPA]

반도체 전쟁(Chip War)의 막이 올랐다!

원유가 지정학적인 갈등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에너지 국제정치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 IHS마킷 부회장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도 원유를 중심으로 세계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며 “다만 원유가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수는 있다”고 말했다.

예긴이 말한 원유의 비중 감소는 다른 요소의 비중이 커짐을 뜻한다. 그런데 다른 요소의 유력한 후보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반도체다.


바이든 "반도체=인프라" 선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선언했다. 바이든은 인텔과 삼성전자, 대만 반도체 TSMC, 제너럴모터스(GM), 알파벳 등 19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화상으로 대화한 뒤 ‘반도체=인프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연방정부의 개입을 사실상 공식 선언했다. 명분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 위기였다.

바이든은 “우리(미국)는 20세기 중반까지 반도체 산업을 이끌었다”며 “다시 세계를 호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서 몇 차례 말했듯이 중국을 비롯한 나머지 세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같은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환이다. 미국은 20세기 후반까지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 개입을 최소화했다. 연방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IBM과 인텔 등 자국 회사가 세계를 이끌고 있었다.

이런 불간섭 관행이 이날 깨졌다. 미국이 반도체를 도로나 항만 등 인프라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한 2조2500억 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투자 예산 가운데 일부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중국식 국가주도 모델 채택
바이든의 선언이 실행되면, 미국도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거의 100여년 만에 드러내놓고 추진하게 된다. 미국은 19세기까지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펼치다 20세기 들어, 특히 2차대전 이후엔 표면적으로는 자유방임을 내세웠다.

미중 반도체 전쟁. 아시아타임스


특히, 미국도 중국식 국가주도 육성모델을 채택한 셈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중국의 국가주도 방식을 '불공정 무역'이라며 비판해왔다.
미국의 주적은 중국

하이테크 지정학 전문가인 아비수르프라카시 캐나다 미래혁신센터 선임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바이든의 선언은 중국을 겨냥한 전쟁 선언”이라고 말했다.

프라카시에 따르면 이날 반도체 투자 선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중국 반도체 회사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를 재제한 전략을 바이든이 계승∙확대하는 것이다. 길게 보면 2017년 중국의 정보기술(IT) 획득을 견제하며 시작된 기술전쟁의 ‘반도체 버전’이기도 하다.

G2가 벌이는 반도체 전쟁의 1단계는 이른바 ‘줄 세우기'다. 반도체 산업의 메이저 플레이어인 한국과 대만 등을 자국 편에 끌어들이는 작업이 먼저 벌어진다는 얘기다.


1차 전쟁터는 반도체 장비회사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주목하는 각축장은 반도체 장비산업이다. 반도체 장비는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이 지난해 9월 미국의 제재 이후 반도체 독립을 선언했지만, 반도체 장비는 상당 기간 서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일본과 한국, 대만을 설득하고 압박해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SEMES가 생산하는 반도체 장비. 세메스 제공


또 미·중은 한국 등의 반도체 기술자를 영입하는 전략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프라카시는 “G2의 반도체 전쟁에서 자유로울 나라는 없다”고 전망했다. 미∙중 각축전에서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중립은 존재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른바 2차대전 시기 ‘스웨덴 볼베어링 에피소드’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막스 슐츠 교수(경제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1차대전과는 달리 2차대전 시기에 중립국 상당수가 독일이나 연합국에 의해 무시되고 심지어 점령됐다”며 “반면 스웨덴은 당시 탱크의 핵심 부품인 볼베어링 기술이 뛰어나 양쪽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슐츠 교수는 “스웨덴 볼베어링 메타포어가 반도체 전쟁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며 “한국의 삼성 등이 미국과 중국 양쪽이 갖지 못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양쪽과 거래하며 이익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혁신 투자가 곧 중립성 유지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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