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백신여권으로 해외여행 갈 수 있을까? [유은길의 PICK 글로벌이슈]
백신접종률 높거나 지역감염 없는 국가 도입 검토
WHO, 백신여권 반대 '백신불평등' 우려 제기
한국 백신접종률 2% 가나·페루와 비슷
[한국경제TV 유은길 선임기자 겸 KVINA센터장]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격리 조치가 1년을 넘었다. 자발적 참여도 이제 지쳤다. 작년 봄 우리는 “올 여름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모두 물거품이 됐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올 여름에는 정말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백신여권-백신접종 증명 여권’을 소지하면 해외여행을 격리 없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백신여권을 통한 국제선 개방을 실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은 물론 베트남 조차 ‘백신여권’ 인프라 구축을 끝내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당장 다음달(5월)부터 실행에 들어간다. 얼마 전 국내 홈쇼핑에서는 아직은 가지도 못하는 베트남 및 태국 등지로의 사전 예약 해외여행 상품을 판매했는데, 조기 품절되며 한마디로 대박을 쳤다. 해외여행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갈급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백신여권’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행 초읽기에 들어갔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초로 5월부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개발한 백신여권인 ‘트래블 패스(travel pass)' 소지자의 경우 무격리 입국을 허용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지난달 2주 동안 싱가포르항공의 런던 노선에 ’트래블 패스‘를 시범 도입해 검증과정을 거쳤다. 세계 290여개 항공사가 회원으로 있는 IATA가 개발한 백신여권인 '트래블 패스'는 백신 접종 시기와 종류, 진단검사 결과 등 개인 면역 정보를 담은 일종의 디지털 증명서다. 클라우드 기반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돼 의료기관에서 전송한 개인별 백신 접종 정보와 진단 결과를 모바일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개발을 시작해 올 3월 초 시범무료버전이 출시됐다. 현재 ‘트래블 패스’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뉴질랜드와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20여개국 항공사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최근 백신여권 계획을 밝힌 일본도 민영항공사 ANA가 이 ‘트래블 패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백신여권’은 이 같은 ‘트래블 패스’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여권에 백신접종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증서 또는 칩을 장착하는 방식 그리고 서로 협력이 가능한 두 국가 사이에 서로 백신접종을 증명하기 편한 어떤 시스템 도입을 통한 방식 등이 가능하다. 어떤 방법이든 지금처럼 국제선을 봉쇄하거나 입국 후 격리 14일을 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코로나19 음성’ 및 ‘백신접종 증명’ 등을 통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다면 그것을 통칭 ‘백신여권’이라 부를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여행과 대학 수업 재개, 공연장 입장 등을 위해 백신접종을 증명하는 방안을 실행할 전망이다. 실제 뉴욕주는 미국내 최초로 백신접종 인증 모바일 앱을 활용한 백신여권 시스템을 도입했다. '엑셀시오르(Excelsior) 패스'라는 이름의 이 앱은 IBM과 협업으로 개발됐으며 모바일 항공기 탑승권과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고유 QR코드를 발급받는 ‘디지털여권’ 방식으로 경기장 및 결혼식장 등의 대중시설들을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코넬대 등 일부 대학들은 백신접종 증명이 되는 학생들에 한해 수업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영국도 해외여행 뿐만 아니라 국내 행사장 출입을 위한 백신여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기존 국민보건서비스(NHS) 앱에 백신접종 및 코로나19 면역 증명 등의 내용을 담는 방안 또는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문서증명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 영국은 이런 백신여권으로 극장과 나이트클럽, 대규모 행사장 입장 등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은 실제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결승에서 이를 시험해본다는 방침이다. 관광산업이 중요한 그리스와 스페인 역시 5월 중순부터 백신을 접종했거나 항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코로나19 음성 검증이 되는 사람들의 입국을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조지아 등의 국가는 이미 백신접종을 증명하는 입국자의 경우 자가 격리를 면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백신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리스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자의 경우 두 국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각종 행사장 및 공연 등의 운영을 정상화했다. 아시아 대표 관광대국인 태국은 오는 7월 1일부터 백신접종자가 푸켓 입국시 자가 격리를 면제할 계획이다. 베트남도 백신여권과 코로나19 음성 검사서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베트남 입국 허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지난 3월부터 QR코드를 활용한 자체 백신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QR코드 또는 종이증명서를 상대 국가와 상호 교환가능할 때 자유왕래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진자가 현재 자국내에 별로 없거나 백신접종률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백신여권’을 통한 자유왕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 WHO는 아직 ‘백신여권’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WHO는 백신여권으로 국제여행을 재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백신접종으로 전염이 방지된다는 것이 아직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와 함께 ‘백신 불평등’ 우려를 제기했다. 즉 백신 생산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백신여권이 도입돼 여행 목적의 접종 수요가 늘어나면 정작 접종이 필요한 우선 대상자가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백신 접종 속도라면 세계 인구의 75%가 접종을 마치는 데 5년이 걸린다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백신 불평등’은 한 국가내 그리고 세계 국가 간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유엔 또는 WHO 차원에서 ‘백신여권’을 글로벌 자유왕래의 어떤 표준으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백신접종이 충분이 이뤄지거나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판단이 서는 상호 국가 간 또는 일부 국가들의 연합체 간에는 충분히 올해 자유왕래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 그리고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이미 백신여권을 통한 여행이 확실히 가시권에 있다. 그럼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K-방역’에는 성공했지만 ‘K-접종’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현재 백신접종률이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백신 접종 데이터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4월 7일 현재 우리나라 접종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 남미의 콜롬비아에 이어 35위다. 한국 보다 접종 속도가 더딘 국가는 뉴질랜드와 일본 단 두 나라 뿐이다. 인구 100명당 백신접종률을 보면 한국은 현재 2.03%다. 접종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로 61.18%이고 이어 영국 55.08%, 칠레 37.37%, 미국 32.89% 등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접종률 국가는 믿기지 않겠지만 아프리카의 가나(1.93%), 남미의 페루(2.75%), 말레이시아(2.56%) 등이다. WHO가 불평등을 걱정한 나라는 엄밀히 말해 한국도 포함되는 셈이다. 현재의 접종률로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특수 공무 또는 중요 사업 출장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의 해외여행은 당분간 격리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올 여름 해외여행의 꿈은 내년으로 다시 미루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아니 국내여행 조차 맘편히 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반 국민들의 여행 불평등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심화될 전망이다.
참고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백신여권 도입 여부에 대해 "접종 가능한 연령층이 다 접종을 받아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필수 인력과 고위험군이라고 볼 수 있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접종하고 있어 (백신여권 도입이)부적절하다"며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유은길 선임기자 겸 KVINA센터장 egyou@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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