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대 리스크②] 규제에 포위된 기업들.."못 해 먹겠다" 분통

조인영 2021. 4.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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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정서 기반한 '기업 죽이기'..일방적 법안 추진에 경제계 우려
투기자본·경쟁업체 고의적·악의적 소송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
재계 "시행시기 1년 유예 등 보완장치 절실..기업 호소 들어달라"
2021년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3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재석 의원 266명,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 으로가결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인공지능(AI)과 5세대이동통신(5G)를 바탕에 둔 4차산업혁명 발발과 디지털 생태계 전환 가속화로 글로벌 경제계는 그야말로 혁신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시작돼 장기화 국면을 맞고 있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비대면(언택트) 시대를 앞당기며 시장과 기업들에게 새로운 성장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파고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와 국내 기업들을 도약과 추락의 기로에 서게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맞았지만 반도체·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들의 앞에 놓여진 만만치 않은 리스크들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너진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고 있다. 주력 사업 고도화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함과 동시에 신성장동력을 마련함으로써 미래 사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어려워진 경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부와 여당은 보란듯이 '규제 폭탄'을 쏟아내며 기업들의 활력을 꺼트리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말부터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개정안을 잇달아 통과시킨 데 이어 최근엔 중대재해처벌법, 상생협력법까지 입법화했다.


재계가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간곡히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들은 '막무가내'식으로 통과되고 있다. 이 같은 기업 옥죄기가 지속될 경우 산업 생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 한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 말부터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개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입법 독주를 강행했다. 기업의 혼란과 각종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재계를 중심으로 보완 장치 마련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상 외면 당하는 상황이다.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 수단을 약화시키는 법안이 담겨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의 경우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 제한(3% 룰)으로 외국계 펀드 등이 연합해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수 있어, 경영체계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헤지펀드가 지분 3%만 확보하면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식 수에 따라 주주권을 배분한다는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과잉 입법"이라며 "투기펀드 등에 이사 선임권을 사실상 넘겨줘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현대차에 도전한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행동주의 펀드 미국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당시 현대차 주총에서 수소전지부문 경쟁사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등 3명을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주총 당시 모두 부결됐지만 당시 이들 3명에 대해 외국인 주주의 찬성률은 각각 49.2%, 53.1%, 45.8%로 높게 나왔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년 6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먹고살자 최저임금! 열자 재벌곳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기업들은 소수주주권 강화에 따른 부작용도 두려워하고 있다. 기존 상법에서 상장사는 특례규정으로 주주제안의 경우 지분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일반규정만 충족시켜도 소수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져 6개월 이상 보유 기간은 유명무실해졌다.


이 때문에 1~3% 주식만 보유하고 있으면 곧바로 주주제안이나 다중대표소송, 이사·감사의 해임청구권, 회계장부열람청구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재계 안팎에선 투기적 펀드 등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이사 후보자를 이사회에 진출시킨 뒤 단기 차익을 빼먹기 쉬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기업 비용 부담은 물론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팽배하다. 특히 전속고발권 폐지로 공정위의 행정적·전문적 절차를 생략한 채 사법수사가 개시돼 기업의 형사처벌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상장 여부에 관계없이 총수일가가 지분을 20% 보유한 회사를 규제하고 위 회사가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익편취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하지만 내부거래규제 대상 확대는 계열사간 효율적・협력적 거래관계를 사실상 사전적·원천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가입 문턱을 해고·실직자까지 낮추는 노조법 개정안 역시 가뜩이나 불합리한 노사 관계가 더욱 기울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비조합원의 노동조합 임원 선임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개별 교섭 시 차별대우 금지 등 노조 측에만 힘을 싣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영계에서 보완 차원에서 요구했던 ‘비종사조합원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 시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이용에 관한 규칙 준수’ 및 ‘노조사무실 이외의 장소는 사용자의 사전 승인이 있을 경우 출입 허용’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해 노조의 자격이나 적법성을 둘러싸고 노사간 혼란을 초래하도록 만들었다.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법 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위한 종합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퓰리즘적 기업 규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이른바 상생협력법을 통과시켰다.


상생협력법의 본래 취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원고가 피고의 유죄를 입증해 죄를 적용하는 일반적인 소송과 달리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하지 않았다는 각종 증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생협력법 통과에 대해 “입증책임 전환 등 기술유용 규제 강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신중히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이 처리됐다”고 유감을 표했다.


통과된 상생협력법은 기술자료의 개념이 모호하고, 조사·처분시효도 없어서, 향후 위수탁 기업간의 소송전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산업 현장에서 우려되는 각종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중대재해법,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의 규제 법안도 쏟아냈다.


중대재해법은 그동안 산업현장에서의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법안이다. 재계에서는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하고, 기업들의 안전경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그 조치가 ‘사후처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해당 법안에서 언급된 ‘유해·위험방지’라는 의무범위도 추상적·포괄적이며, 사실상 과실범에 대해 2~5년을 하한형으로 징역형을 부과하고, 3~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부과하고 있다는 점은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은 물론,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상법, 공정거래법, 노조법 보완요청 사항 주요 내용. ⓒ한국경영자총협회

재계는 각종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보완입법 마련 등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일방통행'적 반기업·친노조 정책을 고려했을 때 수용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쏟아지는 모든 경제 관련 법들을 기업들이 모두 감내하기 어려운 만큼 재계에 부과된 각종 어려움들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라도 몇 가지 사항만이라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영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4단체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각종 기업규제 법안들의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3월 보완입법을 요청했다.


이들은 우선, 개정된 상법 중 ‘감사위원 분리선임(1인 이상) 제도’는 시행시기를 1년 유예해주고,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는 상장회사에 대해 소수주주권 행사시 일반규정이 아닌 ‘상장회사 특례규정’을 적용할 것을 건의했다.


공정거래법 중에서는 내부거래규제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과 관련, 규제 대상에서 특수관계인 간접지분 기업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조법과 관련해서는 개정법에서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및 관련 쟁의행위 금지규정 삭제’ 등으로 노조의 단결권을 강화한 만큼 노사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측의 대항권도 강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기업 규제적 입법 강행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기업정서를 바탕으로 한 만큼, 잘못된 관행은 기업들이 개선해나가되 정부 역시 개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경총 주최로 열린 ‘한국의 반기업정서, 원인진단과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반기업정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기업의 불법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면서 "특히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과도한 상속·증여세제 등 비현실적인 법과 규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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