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중국도 강요 않는데, 언론이 미국편을 강요"

김도균 2021. 4. 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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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다자주의 초월적 외교로 신냉전 막아야"

[김도균, 김경년, 이희훈 기자]

 미국과 중국이 프레너미(친구 프렌드(friend)와 적 에너미(enemy)의 합성어)인 상태에서 한국이 굳이 어느 한 쪽 편을 들 필요는 없지만, 만약 양 강대국이 적대관계로, 즉 신냉전을 향해 간다면 그때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지 않을까? "그때를 대비해서 플랜B로 '초월적 외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문정인식 해법이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7일 <오마이뉴스>와 약 1시간20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 이희훈
  
프레너미(frienemy). 친구 프렌드(friend)와 적 에너미(enemy)의 합성어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현재의 미중 관계를 프레너미로 정의했다. 적대관계 쪽으로 치우쳤다가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서 적대관계에서 벗어나려 하는 중이고, '차가운 평화'와 '신냉전'의 경계선상에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데, 한국이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보수 언론이다. 문 이사장은 "아무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데, 한국의 보수 언론들이 미국 편을 들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편을 들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쿼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쿼드를 자꾸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동맹이라고 얘기하고, '아시아판 나토'가 된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단언했다. 

그는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달 한국에 와서 2+2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할 때도 '쿼드라고 하는 것은 4개국 사이의 비공식 대화협의체이기 때문에 들어오고 말고 하는 게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라면서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미국이 요청했는데,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창을 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 중국이 프레너미인 상태에서 한국이 굳이 어느 한 쪽 편을 들 필요는 없지만, 만약 양 강대국이 적대관계로, 즉 신냉전을 향해 간다면 그때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지 않을까?

"그때를 대비해서 플랜B로 '초월적 외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문정인식 해법이다. 한국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본, 호주, 캐나다, 독일, 프랑스 같은 국가들과 협력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신냉전의 도래를 막는 것, 이게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2017년 5월부터 3년여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지낸 문 이사장은 지난 1월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최근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 책을 펴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외교가 직면한 도전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문 이사장을 만나 1시간 20분가량 인터뷰했다. 다음은 문 이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시니카, 팍스 유니버셜리스
 
 "다행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만 과거와 똑같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많은 변화 상태 속에 과거로 복원될 것이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 이희훈
 
- 코로나19가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인류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다행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만 과거와 똑같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상당히 많은 변화 상태 속에 과거로 복원될 것이다. '복원된 현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더 조심스러울 것이고, 더 신중해질 것이고,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 코로나19의 영향 중 하나로 군사안보에 치중하던 전통적 안보개념에서 지구촌 수준의 인간안보의 개념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국가안보 사항으로 군사안보보다 더 중요한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생물학적 안보가 군사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사망자 숫자가 14세기 흑사병이나 1918년 스페인 독감 때처럼 많아진다면 안보개념이 혁명적 변화가 올 수도 있을 테지만, 코로나의 치사율은 낮은 편이다.

우리가 규범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코로나 위기 같은 상황에서는 자연히 군사안보에 대한 역점은 줄여야 한다. 국방비를 감축시키면서 군비경쟁도 군비통제를 통해 완화시키면서 인간안보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하는데 이런 당위론적인 기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당장 미국의 행태를 보라. 한편에서는 코로나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지정학적 대결을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두 개의 얼굴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내가 볼 때는 과거의 전통적 군사안보에서 생물학적인 인간안보로 전환됐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 두 개의 안보 사안이 중첩적으로 공존하는 게 지금의 객관적 상황이라고 본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5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느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하다. 장기화돼 국경이 폐쇄되고 나라마다 빗장을 걸어 잠그면 키신저 박사가 얘기했던 '성곽도시와 신중세'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는 미국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팍스 아메리카나 II'로 가거나, 중국이 승리해서 '팍스 시니카'로 가는 건데, 미국이나 중국 두 나라 모두 완전한 승자는 아니다. 그러니까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라든가, 중국 중심의 패권질서가 온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세계질서는 '팍스 유니버셜리스'라고 하는 당위론적 세계질서다. 보편 질서를 통한 세계 평화, 즉 유엔 혹은 다자주의 협력을 통한 세계질서인데, 최근 백신민족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이 코로나 문제를 자신들 먼저 해결하겠다고 백신을 매점매석하고 있는데, 돈이 없는 나라들은 그걸 못하고 있지 않은가. 또 다자주의를 통한 국제협력 체제는 미·중이 협력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미중 '느슨한 비대칭' 양극 구도... 설전 오간 고위급회담에선 진지한 논의도
  
 "고대 그리스 시대, 압도적 힘을 가졌던 스파르타가 새롭게 해양 상업국가로 등장한 아테네의 도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해 보라. 지금 미국과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 이희훈
 
- 그렇다면 미·중 대결이 심화되면서 현상유지가 악화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인가.
"미국과 중국 간의 '느슨한 비대칭적 양극구도'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느슨하다'는 것은 예전 냉전시기 미국 중심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Treaty Organization)가 대치했던 것처럼 아주 타이트하게 양극화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도는 상당히 높다. '비대칭'이란 의미는 미국이 아직도 중국에 비해서 압도적 국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1조4277억 달러 정도 되는데, 중국은 14조3429억 달러다. 6~7조 달러 차이는 상당히 큰 수치다. 군사력도 아직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은 6846억 달러를, 중국은 1811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했다. 구매력(PPP, 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 봐도 미국이 압도적이다. 핵탄두 숫자도 미국은 5800개, 중국은 최대 320개다. 미국이 11척의 항공모함으로 전세계 바다를 커버하고 있지만, 중국은 경항모 수준의 2척이 전부다.

문제는 패권국 미국의 국력 신장 속도가 상당히 완만한 데 비해 도전국 중국의 신장 속도는 빠르다는 데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압도적 힘을 가졌던 스파르타가 새롭게 해양 상업국가로 등장한 아테네의 도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해 보라. 지금 미국과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아직 객관적으로 미국의 국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중국이 쫓아오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면,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수정주의 세력이 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아예 초반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중국 위협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 지난 3월 18일(현지시각) 미·중 고위급 외교회담이 알래스카에서 열렸는데, 양 국 간 거친 설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중간 탐색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때는 두 나라 사이에 거의 고위급 회담이 없었다. 이번에 중국에서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마주 앉았다. 양국의 외교 핵심 실제들이 만나서 얘기를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첫 상호대면에서 양 측 모두 국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쇼를 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가 절대 트럼프보다 중국을 소프트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양제츠도 수많은 인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미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핵심 이익과 관련해선 양보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나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비공개 회의에서는 양국이 실질적 협의를 많이 했다고 한다. 미얀마 문제, 기후변화, 코로나19 팬데믹 협력, 북한 핵문제 등 여러 주제에 걸쳐 상당히 진지하고 의미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 만약 이런 협의들 없이 회담이 실패했다고 한다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상당히 의미 있는 회동이었다'는 성명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 2020년 7월 23일,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닉슨기념관 연설을 들어 '중국과의 결별을 통한 신냉전 선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평가를 내린 배경은?
"신냉전은 냉전의 새로운 형태다. 냉전이 뭔가. 바로 이념대결이다. 나는 폼페이오 장관의 닉슨 기념관 발언을 보면서 냉전 대결의 부활을 읽을 수 있었다. 폼페이오는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중국 공산당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를 은폐하려다가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고 연설했다. 더 나가서 그는 '중국이 세계를 변화시키기 전에 우리가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면서 중국 공산당 타도를 전면에 들고 나왔다.

이 연설은 반공주의를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어젠다(의제)로 삼겠다는 선언이고, 이는 곧 신냉전으로 가는 것이라고 나는 봤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이념 대결의 성격 때문에 신냉전이라고 평가를 한 것이다."

바이든 대중 정책은 3C, 협력·경쟁·대결 
 
 "미국도 중국도 지금 공식·비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자기편을 들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미국 편을 들라고 강요하고 있다.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문정인 세종문제연구소 이사장
ⓒ 이희훈
 
- 바이든 행정부 역시 그 기조를 유지할 거라고 보시는가.
"그렇지는 않다. 책에도 썼듯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3C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과 협력(Cooperation), 경쟁(Competition), 대결(Confrontation),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북한 핵,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과 협력을 하고, 무역과 과학기술 문제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대결은 가치문제에 있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홍콩 민주주의, 대만 국민들의 자유, 위구르 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고, 지정학적으로 지역의 패권을 잡으려고 하는 중국의 시도 역시 철저하게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는 결이 상당히 다르고, 중국에 대한 접근도 트럼프처럼 대결일변도가 아니라 외교적이고 훨씬 세련되게 접근할 거라고 본다. 하지만 가치와 지정학적 문제를 강조하다 보면 협력은 어려워지고, 경쟁은 대결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

지금 미중 간 관계를 보면 프레너미(frenemy, 친구와 적의 합성어)란 단어가 떠오른다. 트럼프 때는 적대관계 쪽으로 치우쳤다가 지금은 기본적으로 적대관계에서는 벗어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미중 관계가 '차가운 평화와 신냉전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중이 외교적으로 이걸 잘 다루지 않으면 신냉전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 만약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신냉전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냉전때처럼 우리는 미국 쪽에서, 자유진영에 붙어서 가야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걸 정당화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고 공산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과거 소련 공산당하고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중국은 이미 국제사회와 상호의존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과거 소련은 그게 전혀 없었다.

또 중국공산당이 독재를 한다고 하지만 과거 소련에 비해서는 훨씬 더 유연하다. 그러니까 과거 소련 공산당 시스템을 가지고 지금 중국 공산당을 재단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신냉전은 결국 중국이 과거의 소련처럼 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 출발한다. 즉 대외적으로 팽창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전 국민에 대한 시스템적 탄압과 억압을 가한다는 것인데, 지금 중국의 실상은 그렇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냉전으로 간다는 자체가 내가 볼 때는 어불성설이라는 측면이 상당히 있다.

여기서 제일 강조하고 싶은 점은 미국도 중국도 지금 공식·비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자기편을 들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을 잘 유지하라고 강조하는 것이고, 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잘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그 어느 쪽도 당장은 우리 입장을 보면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데,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미국 편을 들라고 강요하고 있다.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연장선상에서 여쭙겠다. 최근 중국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고, 미국에서는 한미일 안보실장 3자 회의가 개최됐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의용 장관이 샤먼에 가서 왕이 부장을 만나고, 서훈 안보실장이 아나폴리스로 가서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을 만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우리의 기본 노선은 미국과는 한미동맹을, 중국하고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 국가 외교안보 정책 목표는 결국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제제 구축을 동시에 병행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 아닌가.

이런 정부의 정책목표에 따라 외교장관과 안보실장이 움직였던 것인데, 이걸 가지고 우리 언론에서는 '기회주의적 행보'라느니 '줄타기 외교'라느니 비판한다. 더 나아가서는 결국 우리가 중국 편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공격한다. 아직 신냉전 상태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자청해서 어느 한쪽을 적으로 돌려 세우고, 스스로 족쇄를 채울 필요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쿼드, 개념조차 왜곡... '들어오고 말고 없다'는데 한국 언론은 왜?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 초월적 외교의 핵심이다. 중견국들과 협력을 통해 미국도 설득하고 중국도 설득해서 신냉전으로 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문정인 세종문제연구소 이사장
ⓒ 이희훈
 
- 최근 한미 혹은 한미일 외교가 이슈가 되면 거의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쿼드(Quad)' 참여문제다. 보수언론들은 쿼드를 중국 봉쇄를 위한 블록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우선 쿼드가 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2004년 12월 동남아와 인도양에서 쓰나미가 발생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쓰나미 피해복구 지원을 위해 일본과 인도가 얘기를 꺼냈고, 호주와 미국이 동참하면서 만들어진 4자협의체가 바로 쿼드다.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면서 미국이 쿼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쿼드를 자꾸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동맹이라고 얘기하고, '아시아판 나토'가 된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 가장 중요한 증거가 지난 3월 12일(현지시각) 열렸던 쿼드 4국 화상정상회의였다. 회의가 끝나고 나온 공동성명을 보면 첫째가 백신협력, 두 번째가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실무 워킹그룹을 만들자는 것, 세 번째가 핵심기술에 대한 4개국 협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군사안보 부분은 빠져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달 한국에 와서 2+2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할 때도 '쿼드라고 하는 것은 4개국 사이의 비공식 대화협의체이기 때문에 들어오고 말고 하는 게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우리 정부도 '미국이 우리에게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쿼드 혹은 쿼드 플러스 참여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누차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미국이 요청했는데,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창을 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인가."

- 쿼드에 대한 개념조차 왜곡돼 있다는 말씀인가.
"기본적으로 '프레이밍(틀짜기)'다. '쿼드는 대중(對中), 반중(反中) 군사안보 동맹' 이런 식으로 프레이밍을 딱 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여기 참여 안한다고 얘기를 하는 거니까 이건 엄청난 사실의 왜곡이다.

한국 언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미 미·중 간의 신냉전은 시작되었고, 미국은 반중연합 혹은 동맹을 구축하고 있고, 한국에 여러 번 시그널을 보냈는데도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한국 정부는 반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식의 정형화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도에 주창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이 보수세력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았지만 많은 부분 왜곡된 것이라고 쓰셨다.
"당시 대통령의 구상은 이거다. 한 50년 정도 지나면 주한미군도 떠날 것 아니냐, 그러면 이 지역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지역 패권경쟁이 붙을 건데 그 싸움을 말리려면 우리가 상당한 정도의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편에 붙게되면 중국이 함부로 못할테고, 우리가 중국에 붙게 되면 일본이 함부로 못할 거 아니냐. 예를 들어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후 패권국으로 등장한 영국이 프랑스와 독일 등 대륙 국가들의 싸움을 말리겠다고 한 걸 '패권적 균형자'라고 한다. 보수세력은 한국이 그런 패권적 국가도 아니면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비판한 거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에게 그런 '하드 밸런싱'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으나 '소프트 밸런싱'은 가능하다고 건의했다. 소프트 밸런싱은 군사력이 아닌 아이디어와 정책을 갖고 지역협력을 강화한다든가 해서 패권경쟁을 완화시키거나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한·중·일 3국의 협력과 통합이 가속화되어야겠다 해서 대통령이 한·중·일FTA 구상도 얘기하고 북한, 몽골 등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의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만드냐를 연구했던 거다. 가령 유럽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같은 국가들이 소위 말해서 연성 균형자 역할을 했다. 큰 나라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세간에서 얘기하는 균형자론은 <조선일보>의 균형자론이지 노무현의 균형자론이 아닌거다."

- 한국 처지에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중국 양쪽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냉전의 도래는 한국 외교에 엄청난 시련이 될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 제일 바람직한 상황은 현상유지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반대하지 않는다. 단 자신들에 대해서는 적대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보고 대놓고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으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냉전 체제가 현실화된다면 우리보고 양자택일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플랜B'로 '초월적 외교'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 초월적 외교의 핵심이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국 혼자 하면 미국이 말을 듣겠는가. 중국이 말을 듣겠나.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 호주, 캐나다, 독일, 프랑스 같은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 나라들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중견국들과 협력을 통해 미국도 설득하고 중국도 설득해서 신냉전으로 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북한, 남한에 대한 기대가 컸던만큼 배신감도 클 것"

- 현안을 몇 가지 여쭙겠다. 최근 북한이 도쿄올림픽에 불참한다고 발표했다. '올림픽 데탕트' 기회가 날아간 건가.
"나는 이번 발표에 그렇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 아닌가. 그리고 세상에 불가역적인 것이 어디 있나. 그 사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도 설득할 거고, 중국도 설득할 거고, 우리도 남북간 대화채널이 복원되면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 좀 지켜보자. 모든 가능성은 열어놔야 하는 거니까."

- 설사 다음에 정권이 바뀌더라고 북한은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현 정부와 뭔가 이뤄놓는 게 유리할 텐데.
"근데 남한에 대한 실망이 큰 것 같다. 남한이 너무 무기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평양은 엄청난 기대를 가졌었다. 기대가 큰 만큼 배신감도 엄청 많이 느낀 거다. 우리가 하나도 못했잖나. 어쨌든 간에 남북 정상간 신뢰는 한때 구축된 게 있으니까 북이 섭섭한 게 있다 하더라도 결국 현 정부 하고 매듭지을 건 지어야 할 것 아니냐 생각된다."

- 이달 중 나온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리뷰는 언제 어떤 내용으로 나올까.
"바이든 행정부 내에는 대북정책에 대해서 강경파도 있고, 협상파도 있고, 안정적 관리파도 있다. 내가 볼 땐 바이든이 그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고 세 개가 다 절충돼서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면 협상하겠지만 최대한 압박이라는 기본노선은 지키겠다는 식으로 세 가지 견해가 다 들어가 있을 것이다."

- 최근 들어 국장급회담이나 안보실장회담 등 한일간 대화가 열리고 있는데, 이제 한일관계에 조금씩 물꼬가 트이고 있다고 봐도 되나. 미국이 중재 내지는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견해가 많은데.
"쉽지 않을 거다. 어떤 미국 고위인사가 2015년 위안부합의도 미국에서 압력을 넣은 게 아니라고 하더라. 언론보도와 상당히 다르다. 미국은 한국, 일본 다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할 것이다.

한국 언론은 자꾸 미국이 일본편 든다고 하는데 일본편 들었다간 한국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나. 그러니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압박을 가할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일간 공통점을 찾아주려고 노력은 하겠지. 일본은 문재인 정부라고 하면 이미 반일, 반미, 친북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져 있다. 한국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면 어떻게 그렇게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나. 한국이 무슨 일본의 식민지도 아니고. 일본도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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