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가 된 남자, 미국이 은폐하려던 진실

김형욱 2021. 4. 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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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모리타니안>

[김형욱 기자]

 
 영화 <모리타니안> 포스터.
ⓒ 디스테이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두 달 뒤 11월 북서아프리카 모리타니, 동네에서 결혼식 잔치가 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슬라히도 참여했는데,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간다. 3년여 뒤인 2005년 2월 뉴멕시코 앨버커키, 유명한 인권 변호사 낸시는 우연히 한 남자의 변호를 맡게 된다. 2001년 11월 모니타니 경찰한테 끌려간 뒤 3년 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다가, 불과 얼마 전에 쿠바 관타나모만 수용소에 역류된 남자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 슬라히였다. 

한편, 911 테러로 친구이자 동료를 잃은 군검찰관 중령 스투에게 명령이 떨어진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 슬라히에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게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스투는 굳건한 사명감으로 기꺼이 수락한다. 낸시와 스투는 각각의 방법과 방식으로 슬라히에게 다가간다. 그가 누구이고, 뭘 했으며, 왜 그랬는지 말이다. 하지만, 알아가려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다. 그가 '진짜' 누구이고, 뭘 했으며,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슬라히를 대변하는 낸시나 미국 정부를 대변하는 스투도 진짜 자료가 필요했다. 미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하려 했던 진실이 오롯이 드러나 있는 자료 말이다. 그들은 역시 각각의 방법과 방식으로 진짜 자료를 받아 내고자 한다. 그 이후에나 슬라히에 관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다.

과연 그들은 진실의 자료를 받아 정정당당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까? 슬라히는 911의 핵심 테러리스트일까. 무고한 시민 중 한명일까. 미국 정부는 무슨 짓을 꾸미고 은폐하려 했던 것일까.

충격적 실화의 영화화

영화 <모리타니안>은 2015년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의 실화 논픽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원작으로 했다. 이 책은 관타나모의 실체를 고발한 최초의 수용자 증언록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관록 있는 대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제작과 주연을 맡았고, 조디 포스터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정도의 연기력으로 중심을 잡았다. 그런가 하면, 실존인물인 슬라히와 낸시도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열의를 보였다. 

영화는 실화를 완벽하게 고증했는데 감독 캐빈 맥도널드의 영향이 굉장히 크지 않은가 싶다. 그는 뮌헨 올림픽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1999년 데뷔작 <원 데이 인 셉템버>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후, <말리> <휘트니>의 인물 다큐멘터리와 <라스트 킹>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진지한 스릴러 등으로 실화를 현실감 있고 날카롭게 그려낸다. 

911 테러는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비극이자 가장 충격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각종 논란과 음모의 한가운데에서 무수한 이야기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도 그렇다. 특히 '관타나모만 수용소',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만에 설치된 미 해군 기지 내 수용소 말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체

<모리타니안>이 주요 타깃으로 설정한 대상은 미국 정부 그리고 관타나모 수용소이다. 911 테러 이후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은 이들이 족히 수백 명이 넘는다. 정확한 증거도 없이 또 적법한 재판 절차도 없이 구금·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문에 이은 강제 거짓 자백까지 시켜 행정부가 원하는 사형 판결까지 받아내려 한 것이다.  

이 영화가 다룬 일련의 이야기 중 하나가 슬라히의 관타나모 수용소 일기다. 영화의 상당 부분을 슬라히의 관타나모 수용소 일기에 할애하는데, 어떻게 갇히게 되어 어떤 식으로 심문을 받고 결국 얼마만큼의 고문을 당하게 되었는지가 주 내용이다. 카메라 비율을 극도로 좁혀 답답한 시선을 유도하는 연출 방식으로, 그때 그곳에서 당한 일들과 행한 생각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21세기 그것도 세계 최강의 문명 대국인 미국에서 자행된 믿기 힘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아닌 영화로 자리 잡을 수 있던 데는 변호사 낸시와 군검찰관 스투의 역할이 크다. 실존인물인 이들이 한 행동도 모두 실존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기에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한 전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 같다. 그들의 신념은 첨예하게 갈렸지만, 지향하는 바가 올바르다는 점은 완전히 같았다. 

인권 운동가로 유명세를 탔던 낸시는 슬라히 케이스를 접하고 이 사건에 올인했다. 그녀가 사건만을 바라봤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정작 슬라히는 낸시가 자신의 사건이 아닌 자신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긴 싸움이 될 것이기에, 그리고 그동안 아무도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았기에, 사건을 파헤치며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함께한다는 믿음을 주는 이가 필요했던 거다. 그 과정이 묘한 울림을 준다. 

스투는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범(이라는 혐의를 받은)이 사형에 처하지는 걸 지상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911 테러에 대한 증오보다 올바름에 대한 신념에 대해 고민한 스투는 진실에 다가가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 과정 또한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영화는 충분히 극적인 연출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을 그저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절정으로 갈수록 서서히 감정이 고조되곤 충격적인 실화의 해피엔딩이 으레 그렇듯 이내 복합다단한 감정을 전한다. 실로 오랜만에 접한 정통 실화 기반 논픽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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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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