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암호화폐 상승장이 '2018년 폭락장세'와 다른 3가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암호화폐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2018년 1월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벌써부터 피어오른다. 당시 각국 규제 발표와 암호화폐 회의론이 맞물리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크게 추락한 바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1월 1만6670달러에서 2월 7640달러까지 반 토막도 더 났다. 비트코인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더리움(1월 1247달러→2월 759달러), 리플(3.38달러→0.69달러) 등 다른 알트코인 가격도 급전직하했다. ‘2021년 암호화폐 폭락 시나리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다소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예전 같은 폭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새 투자처 떠오른 디파이·NFT
‘실체가 없다.’
이 한마디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시가총액이 수천억달러에 육박하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거나 구현된 암호화폐 서비스가 없다는 사실이 2018년 투매 심리를 부추겼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암호화폐 생태계가 성숙하면서 관련 서비스가 다양해졌다. 이제는 암호화폐 플랫폼이 왜 필요한지, 또 어떻게 활용 가능한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여럿 나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처가 늘어난 셈이다.
‘디파이(DeFi)’가 대표적이다. 디파이는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로,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중개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이용 가능한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기존 금융 거래 기록은 금융기관이 보존하고 기록했다면 디파이에서는 블록체인에서 해당 거래를 증명해준다.
가장 활발히 이용되는 서비스 분야는 대출이다. 예를 들어 NFT 같은 가상자산을 담보로 암호화폐를 빌려주는 식이다. 반대로 암호화폐를 맡기면 이자를 더해주는 예치 이자 서비스도 있다. 디파이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지난 3월 전 세계 디파이 예치금액은 418억달러로 전년 동기(5억6000만달러) 대비 75배나 늘었다.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빅테크 기업도 블록체인 자회사를 통해 디파이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디파이는 약정 기간이 없고 본인 인증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용자 접근이 쉽다. 블록체인에 분산, 보관돼 있는 개인정보 소유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금융 상품뿐 아니라 기존 금융 서비스와의 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계속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시장 새 트렌드로 떠오른 ‘NFT’도 암호화폐 특성을 잘 활용했다. 블록체인 기술로 원본 증명이 가능해 가상자산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무한 복사가 가능했던 ‘디지털 파일’도 자산으로 인정받게 되며 새로운 투자 시장 하나가 생겼다. 최성환 리서치알음 수석연구원은 “NFT는 디지털자산을 보호하는 장치로 앞으로 고성장할 것”이라며 “NFT 시장에서 활용되는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 관심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축코인’ 떠오른 비트코인·테더
암호화폐 생태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도 암호화폐 낙관론의 근거로 꼽힌다. 하나의 암호화폐로부터 파생된 다른 암호화폐나 서비스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합종연횡’이 저마다 가격 폭락을 막는 방지턱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트코인은 이미 암호화폐 시장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나 정보 사이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는 저마다 자국 화폐로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비트코인으로 다른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BTC마켓’이 따로 마련돼 있다. 글로벌 투자자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서다.
예를 들어 알트코인 ‘덴트(DENT)’는 업비트 원화마켓이 아니라 BTC마켓에 상장돼 있다. 덴트를 사기 위해 투자자는 첫째 원화를 충전해서, 둘째 비트코인을 구매한 후, 셋째 비트코인으로 덴트를 구입해야 한다. 덴트를 원화로 바꿀 때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격도 ‘원’이 아니라 ‘BTC(비트코인 화폐 단위)’로 표기된다. 한 암호화폐 스타트업 관계자는 “알트코인 종류가 많아지고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기축통화 격인 비트코인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수많은 알트코인 거래가 비트코인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상대적으로 급등락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암호화폐는 비트코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테더(USDT)’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8일 기준 테더 일일 거래량은 1616억달러 수준으로 대장주 비트코인(758억달러)의 2배를 웃돈다. 테더가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기축통화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테더는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가격안정화 코인)으로 ‘1USDT=1달러’에 맞춰져 있다. 기존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처럼 만국 공통으로 사용 중이다.
이더리움은 최근 ‘디파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디파이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스마트 콘트랙트 기능을 갖춘 이더리움 디앱(DApp)을 통해 구동된다. 스마트 콘트랙트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동으로 계약되는 시스템으로, 개인 간 금융거래를 추구하는 디파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기술이다. 디파이 플랫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더리움 위상은 함께 높아진다. 현재 디파이 플랫폼에서 쓰이는 알트코인 시가총액 총합은 925억달러에 달한다.
▶3. 고래 투자자 등장…거래량 안정
▷낮아진 투자 진입장벽…거래소 ‘호황’
확 늘어난 거래 규모도 낙관론에 힘을 싣는다. 4월 8일 기준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1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8330억달러였던 2018년과 비교해 2배 이상 크다. 205억달러에 불과했던 일일 거래량 역시 758억달러까지 치솟았다. 비트코인처럼 시가총액이 큰 암호화폐는 거래가 활발할수록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 등 글로벌 대기업, 투자기관 등 ‘고래 투자자’ 개입이 커지며 시장 전반에 안정감이 쌓여간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도 껑충 뛰었다. 국내 양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업비트는 최근 하루 거래대금이 22조원을 돌파했다. 전날 코스피(11조7097억원), 코스닥(9조8580억원) 거래대금을 합쳐도 업비트에 못 미친다. 유가증권 시장 투자자들이 점점 암호화폐 시장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증한 거래소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수도 암호화폐 시장에 쏠린 관심을 잘 보여준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업비트 월간 순 사용자 수(MAU)는 지난해 12월 82만7000명에서 올 3월 319만9000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빗썸(65만5000명→151만3000명), 코인원(13만5000명→56만9000명)도 급증세를 보였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암호화폐 투자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투자자가 빠르게 늘었다”며 “단순히 숫자만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반 이해도가 깊어져 코인 생태계가 한층 성숙해졌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