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성공 권광석 우리은행장 빅테크와 제휴..'경쟁 대신 상생' 전략 차별화
연임은 사실 예상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최고 성과를 낸 점이 주효했다. 조직 안정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는 후문.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해 DT(Digital Transformation) 추진단을 신설하고 영업점 간 협업 체계인 VG(Value Group·같이그룹) 제도를 도입한 것도 우리은행 이사회에서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부쩍 화두로 떠오른 ESG 관련해서도 권 행장은 선도적으로 움직였다. ESG 철학이 담긴 지속가능채권 발행을 주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취임 직후 4억호주달러 규모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5억 5000만달러 규모 외화 ESG선순위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글로벌 사업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예상도 깼다. 지난해 10월 우리은행 베트남 법인이 현지 투자자산을 보관, 관리하는 글로벌 수탁 업무를 시작했는데 바로 성과를 냈다. 기존 외국계 은행에 보관 중이던 펀드자산 9300억원을 수탁, 베트남 진출 국내 은행 중 최대 규모의 글로벌 수탁은행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은행이 소유한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이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으로부터 BUKU3등급을 취득한 것. 덕분에 중대형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권 행장은 “코로나19로 다들 움츠리고 있는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캄보디아 WB파이낸스의 상업은행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가 하면 베트남, 중국, 미국 등 성장 유망 지역 위주로 10여개 영업점 신설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유망 현지 기업 발굴, 투자, M&A를 위해 국외 영업점과 우리은행 IB데스크를 연계한 현장 지원 그림도 짰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 최초로 더 뱅커(The Banker) 선정 ‘글로벌 최우수 은행’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특히 권 행장의 특기가 빛을 발한 부문은 대외 협력 부문이다.
우리은행 홍보실장(본부장), 대외협력단장(상무), IB그룹장 겸 대외협력단장(집행부행장) 등을 역임한 권 행장은 성격이 무난하고 적극적이어서 대외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이름이 났다. 2018년 우리금융그룹 자회사 우리프라이빗에퀴티(PE)자산운용 대표를 지낸 후 이듬해에는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로 선임돼 외부 CEO 경력도 쌓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우리은행장이 됐다.
권 행장은 ‘같이’라는 표현을 매우 좋아한다는 후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간 공동 영업을 하면 좀 더 실적이 극대화될 것으로 보고 이를 제도화하려고 할 때였다. VG라는 단어가 아이디어로 나왔는데 ‘V’가 ‘가치’라는 뜻도 있지만 이를 ‘같이’라는 우리말로 읽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행장이) 시스템 명칭을 ‘같이그룹’으로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같이그룹’ 제도는 본격 힘을 받았다. 고객 입장에서는 각 영업점마다 대출, 세무 등 강점이 있는 PB에게 골고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만족도가 높았던 덕분이다. 복수로 상담받다 보면 불완전판매 위험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이런 ‘같이’의 경영 철학은 외부 제휴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권 행장은 신사업을 추진할 때 은행 자체적으로만 하지 않고 다양한 업계 선두권 사업 파트너와 함께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올해 2월 한국투자공사(KIC)와 해외 사업 공동 발굴, 투자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과는 기존 상생대출의 대상을 예비 창업점주까지 확대한 상품 개발을 했다. 금융과 유통 데이터를 두 회사가 활용해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식이다. 차량공유 플랫폼과도 손을 잡았다. 쏘카와 제휴, 디지털 금융 상품을 쏘카와 협력해 판매한다는 복안이다.
기존 금융사를 위협하는 빅테크와의 관계도 그의 방식대로 다시 정립했다. ‘경쟁 대신 상생’ 전략이 골자다.
권 행장은 카카오페이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고객 중심의 편리한 금융 서비스 개발부터 카카오페이 내에 우리은행 비대면 상품을 조회하고 가입할 수 있게 협력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소상공인을 위한 전용 대출 상품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도 비금융데이터 활용, 대출 대상 확대 등 소상공인 금융 지원을 위해 두 회사가 협력하기로 했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CMO캠퍼스 대표)는 “우리은행으로서는 지혜로운 전략이다. 테크 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기존 고객을 붙잡아둘 수 있고 초개인화 상품으로 신규 고객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만큼 신규 고객 입맛에 맞는 최적화된 상품,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권 행장의 역발상 행보는 올해 1월 경영전략회의에서도 도드라졌다. 경영전략회의는 통상 내부 경영진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권 행장은 여기에 핀테크 대표 주자이자 은행업권 최고 화제인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를 초대했다. 이날 윤 대표는 카카오뱅크의 혁신 스토리, 경영 철학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우리은행은 카뱅과는 또 다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 주주다. 어찌 보면 경쟁사다. 권 행장은 경쟁사 수장을 회의에 초대, 내부 경영진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열린 사고’의 소유자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제 시선은 임기 2기로 쏠린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선방하기는 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의혹으로 사내 분위기가 한때 뒤숭숭했는가 하면 당기순이익도 코로나19 여파로 전년 대비 10%가량 줄었다. 자칫 위험할 대출에 대비, 대손충당금(최악의 상황을 산정해 피해액을 쌓아두는 것)을 종전보다 많이 쌓아놨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략을 좀 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외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은행 고객 중에는 아직도 주력 은행 앱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호소하는 이가 적잖다. 실제 앱스토어에서 ‘우리은행’을 치면 ‘우리은행 원터치알림’ ‘우리은행 위비뱅크’ ‘우리은행 우리WON뱅킹’ 등 다양한 앱이 줄줄이 뜬다.
권 행장은 “고객들께서 ‘우리WON뱅킹’ 등 대면&비대면 모든 채널에서 최적화된 금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좀 더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D·N·A’.
권 행장이 내걸은 올해의 경영 화두다. 디지털 혁신(D), 네트워크(N), 액션(A)의 준말로 모바일 앱 경쟁력 강화, 은행 수익과 고객 만족도를 동시에 높이는 지속 성장 등의 의미가 담겼다.
권 행장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새로운 임기를 수행하겠다는 다짐이다.
[박수호 기자 / 일러스트 : 김민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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