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는 국가를 증오하나요?", 한 히피 청년의 답변

이현파 2021. 4. 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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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 오른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이현파 기자]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 넷플릭스 코리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현지 기준 4월 25일)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4일,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11일(현지시간)엔 영국 아카데미 조연상까지 받으면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에 대한 기대 역시 더욱 커졌다. 지금 윤여정의 수상에 대해 쏠리는 관심은 지난해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미나리> 뿐 아니라 영화팬들이 눈여겨볼 만한 일이 있다면, 넷플릭스 영화가 지난해에 이어 여전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시상식의 경우, 총 16개의 작품이 3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 아카데미는 '최소 7일 간 상업영화관에서 개봉한 작품에만 출품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일시적으로 깼다. 2020년 4월 28일, 아카데미는 93회 시상식에 한하여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았던 OTT 영화들의 입후보를 허용했다.

<미나리>와 함께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역시 '넷플릭스 영화'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아론 소킨은 <뉴스룸>, <소셜 네트워크> 등을 쓴 각본가로 유명하다. 아론 소킨은 정교하게 짜여진 대사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진가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혼란의 시대도 경쾌하게 돌파한다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중
ⓒ 넷플릭스 코리아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속에 그려진 미국은 존슨 정권에서 닉슨 정권으로의 전환기였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F. 케네디 의원이 연이어 암살당했다. 미국의 청년들은 특정 날짜에 태어났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베트남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 운동이 대서양을 건넜고, 미국의 젊은이들은 '반문화', '반전' 운동에 나섰다. 히피들은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록과 마약으로 장식했다. '가족', '애국', '종교' 등 전통적 가치와 개인주의적 가치가 빚는 불화의 한복판이었다.

1969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험프리가 전쟁을 끝낼 인물이 아니라 판단한 시위대는 민주당에 항의하기 위해 시카고로 향한다. 평화 시위에 1만명가량의 경찰이 개입되면서 유혈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청년국제당의 애비 호프먼(샤샤 바론 코헨),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 동원위원회의 데이브 델린저(존 캐럴 린치) 등 서로 다른 소속의 등 7명의 시위 주동자 '시카고 7'이 기소된다. 시카고에 잠깐 머물렀던 흑인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은 '시카고 7'과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입에 재갈이 물려진다. 바비는 급진 흑인 민권 단체 '흑표당(The Black Panther Party)'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이 답답한 실화에서 시작된다. 이 재판을 진두지휘한 것은 리처드 닉슨 정권이었다. 재판은 그 절차의 불합리성 때문에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재판'으로 기억되고 있다. 재판 결과를 사실상 정해놓고, 그 시나리오에 맞춰 움직인 셈이기 때문이다. 아론 소킨 감독은 이 시대의 야만성을 경쾌한 감각과 유머로 돌파한다.

1969년에서 2021년으로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중
ⓒ 넷플릭스 코리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장점이다. 언뜻 똑같은 '불온 종자'로 여겨질 수 있는 운동가들은 내부에서 큰 충돌을 빚고 있다. 애비 호프먼은 재판에서 이기는 것보다 '문화 혁명'을 통해 대중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톰 헤이든은 그의 이상주의적 관점을 배격한다.

톰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와 재판 승리 등을 통한 '합법적 혁명'이다. 이것은 페미니즘을 지향하면서도 갈등하는 운동가들의 모습이 그려졌던 FX의 TV 시리즈 < 미세스 아메리카 >를 연상시킨다. 주인공들은 방법론의 차이만큼이나 중요한 것을 재확인하며 '합일'로 향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그 자체로 종착역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개입하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는 인물이 판사 줄리어스 호프만(프랭크 란젤라)이다. 권위적인 정치 판사다. 줄리어스는 이 작품의 '메인 빌런'이자, 가장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시카고 7'의 정당한 발언권을 차단한다. 근엄한 판사복 뒤에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구시대가 있다.

피고인들이 농담 위에 자신의 신념을 실을 때, 그는 법정모욕죄를 적용하겠노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한편 젊은 검사 리처드 슐츠(조셉 고든 래빗)는 주인공들과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번뇌하는 보수주의자로 그려진다. 아론 소킨의 접근법은 해묵은 이분법적 논리를 떠나 있다.

"증인은 국가를 증오합니까?"라는 검사의 질문에 애비 호프먼은 "국가가 내게 보인 증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애비 호프먼의 이 대사는 증오를 국시로 삼았던 도널드 트럼프 정권, 그리고 2020년의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아론 소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현재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정의' 자체가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지난한 과정과 방법론을 둘러  싼 이야기다. OTT 서비스를 통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예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눌러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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