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이동근 "반기업 정서 여전히 심각, 기업가정신 살려 극복해야"
한국 반기업 정서 심각, 일부 기업들 과거 잘못 있지만 현재는 많이 달라져
쏟아지는 규제에 경쟁력 저하도 심각, 규제 고리 끊어야
[대담=이은정 아시아경제 산업부장, 정리=이창환 기자] "기업들의 사법리스크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과도한 형사처벌에 대한 부담이 큽니다.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이 위축되지 않도록, 주의의무를 다한 기업인의 경영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의 원칙’과 같은 면책 규정의 명문화가 필요합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만난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신임 상근부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와 국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며 쏟아낸 규제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준법정신을 강화하고 기업윤리를 잘 지키고 있지만 반기업 정서가 여전한 것은 이 같은 규제 일변도 분위기가 불러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의 행태에 먼저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배경 중 하나가 일부 기업에 존재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일탈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반기업 정서 완화를 임기 내 주력 사업으로 꼽은 것도 그래서다.
이 부회장은 "일부 기업의 일탈행위에서 비롯된 여론 악화와 이에 따른 정부·국회의 규제 강화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서 "기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가 정신을 강화하는 것도 기업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가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문화적 자본과 같은 인프라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기업가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시키고 반기업 정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소감은.
▲2017년도까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했기 때문에 경제단체의 역할을 잘 알고 왔다. 그럼에도 당시에 비해 경제단체를 둘러싼 여건이 더 안 좋아졌음을 체감한다. 당시에 비해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린다. 대기업은 그나마 괜찮은데 영세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특히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 원인과 극복 방안은.
▲반기업 정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각 분야에서 기업 부담을 가중시킨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경제 성장을 이끌고 고용 창출과 소득 향상을 실현하는 기업의 긍정적 가치와 기업가 정신을 훼손시킬 수 있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우리나라 반기업 정서의 주요 원인은 과거 경제개발과 압축 성장 시대에 일부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특혜시비 등이 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확산돼 기업에의 부정적 관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대부분 기업들은 준법정신을 강화하고 기업윤리를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기업에 존재하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일탈은 고쳐나가야 하며 기업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도 함께 걷어내야 한다. 기업은 투명·윤리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함은 물론 기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다각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20주기와 신춘호 회장 별세 등을 통해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이 회자됐다. 이상적인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일까.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고(故) 정주영, 신춘호 회장님과 같은 기업가들의 열정적인 도전, 신사업 개척 역량 등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다만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기업가 정신을 단순히 기업가의 개인적 자질이나 역량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기업가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문화적 자본과 같은 인프라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기업가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며 기업가 정신의 발휘 영역도 경영 혁신을 넘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상적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갈수록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도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
▲지난해 총선에서 범여권이 180여석을 차지하면서 정부, 여당의 주요 정책 과제였던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부담 법안이 대거 국회를 통과했다. 반면 경총 등 경영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근로시간의 유연화’ ‘노사관계 균형 회복을 위한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와 같은 사안들은 소폭 개선에 그치거나 논의에서 제외됐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부·여당의 주요 정책 과제 법들을 중심으로 강한 입법 드라이브가 예상된다. 복합 쇼핑몰 규제를 비롯해 현재 정부가 제출을 준비 중인 집단소송·징벌배상법안 등 기업 부담 법안이 계속 쏟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제 상황, 향후 정치 일정 등이 입법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사법적 리스크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과 해결 방안은.
▲우리나라 경제 관련 법률을 보면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약 2500개에 달한다. 특히 경영상 판단도 결과에 따라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있다. 과도한 형사처벌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이 위축되지 않도록, 주의의무를 다한 기업인의 경영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의 원칙’과 같은 면책규정의 명문화가 필요하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재 규정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로, 모델이 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보다도 훨씬 처벌 수위가 강하다. 외국보다 지나친 경영책임자 처벌수위를 완화하고 산업 현장의 준비 기간을 고려해 법률 시행 시기를 2년 연장하는 보완 입법(중대재해처벌법 재개정)이 필요하다.
-올해 노사관계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업들의 대응 방안은.
▲경총이 실시한 ‘2021년 노사관계 전망조사’ 결과 응답기업의 59.8%는 올해 노사관계가 지난해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봤다. 개정된 노조법에 따르면 해당 기업에 재직 중이지 않은 해고자와 실업자까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 운영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사규 및 보완 규정 등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또한 산업재해 문제가 노사관계의 핵심 이슈로 등장하고 있어 기업들이 관심과 예방 활동에 힘써야 한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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