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의 그늘]공공부문·플랫폼 등 곳곳서勢 경쟁..노무 부담↑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이승진 기자] "대표 노조가 기본급을 1만원 인상시키겠다고 공언하면, 다른 노조는 1만5000원을 관철시키겠다고 맞서죠. 이 과정에서 요구수준은 에스컬레이트(차츰 상승) 됩니다. 회사로선 골치아픈 상황이 되는 거죠."
복수노조의 세(勢) 경쟁에 따른 폐해는 이미 우리 기업현장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문제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제1노총’을 둔 경쟁을 본격화 하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재계와 전문가 집단에선 복수노조의 선명성 경쟁에 따른 노무 부담이 갈 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노사 간 신뢰관계 형성과 사회적 역할 준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플랫폼으로 확산하는 양대노총 세 경쟁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정규직 중심으로 진행되던 양대노총의 세 갈등은 지난 20년간 이른바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미조직·비정규직으로 확산됐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통과 이후엔 기간제·파견근로제, 하도급업체 등에서 갈등이 잦았다.
2010년대 중·후반부에 들어선 공공기관이 직접적인 갈등 대상이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반인 지난 2017년 5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선언하면서 각 급 공공기관은 양대노총의 전장이 됐다. 단적인 예가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지난 2017년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를 시작 하기 위한 ‘노·사·전문가위원회’ 구성을 두고서부터 양대노총이 갈등을 빚었고, 현재는 정규직 노조를 포함해 10개 노조가 정규직화 문제를 둔 백가쟁명을 벌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6월 인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요원의 직고용 계획을 발표하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본부 소속인 보안경비 직원들은 직고용 범위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했다. 직고용 대상에서 보안경비 직원들은 제외됐다는 이유다. 직고용 방식을 놓고 한국노총 단일 노조였던 보안검색노조도 4개 노조로 쪼개지며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들어선 양대노총의 경쟁이 벌어지는 주된 전장은 ‘플랫폼 노동’의 영역이다. 플랫폼 노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어플리케이션 등을 매개로 노동·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택배, 배달, 대리운전, 가사돌봄서비스 등이 이에 속한다. 통상 특수고용직에 속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직군이다.
실제 올해 들어선 택배기사를 상대로 한 조직화 경쟁이 본격화 됐다. 기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택배노조의 기틀이 마련된 가운데, 한국노총도 지난달까지 8개 지회를 설립하면서 세를 불리고 있다. 양측은 서로 ‘과격한 투쟁행태’, ‘사측의 노조 개입’을 주장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수요가 급증한 배달 노동자 등도 화약고다.
기업 노무부담·노노갈등↑
이같은 양대노총의 조직화 경쟁은 기존 대공장·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소외된 노동의 영역을 발굴·의제화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냈지만, 한편으론 개별 기업의 노무 부담과 노동자 간 갈등을 키우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게 재계 평가다.
특히 비교적 노동 친화적인 현 정부 아래선 양대노총이 제1노총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어 이같은 현상이 심화되는 측면도 있다는 게 재계 설명이다. 지난 2018년 조합원 수로 제1노총 자리에 오른 민주노총은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9명) 중 5명을 추천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그간 최임위 근로자위원은 관행적으로 제1노총이었던 한국노총이 5명을, 민주노총이 4명을 추천해 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 사업장 내 양대노총이 복수노조를 꾸리면 대표 교섭권 확보를 위해 선명성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면서 "기업 입장에선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노무 관련 비용만 늘어나는 국면"이라고 전했다.
이런 경쟁의 와중에 일부 근로자들이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예를 들면 최근 양대노조가 경쟁적으로 조직화 사업을 전개 중인 배달 플랫폼 내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외에도 라이더유니온 등 소규모로 구성된 라이더집단도 존재하는데, 플랫폼 내 양대 노조의 덩치가 커지며 소규모 조직에 소속된 라이더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을 예로 들면 비정규직 정규직화란 대의가 정부의 개입과 선명성 경쟁 과정에서 직고용 문제로 격상됐고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비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갈등의 양상이 확산됐다"면서 "이로 인해 공공기관으로선 상당한 유·무형의 비용을 노노갈등, 노사갈등에 써야하는 상황이 된 셈"이라고 전했다.
"노사간 신뢰구축-사회적 책임 준수를"
전문가들은 노사 양측의 신뢰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노조 설립 자체는 노동자들의 자유인 만큼, 갈등을 적정선에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복수노조는 조합원들의 선택으로, 역설적으로 종래의 노사 간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면서 "개별 노동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업으로서도 노사간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불안정하고 여유가 없는 노동시장이 지속되면서 ‘통큰 합의’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각 조합원의 이익을 최대한 챙겨야 하는 노동조합 간의 갈등도 고착화 돼 가고 있다"라며 "노조가 기업에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처럼 노조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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