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자꾸 늘어나요" 어느 농촌마을의 행복한 고민
[월간 옥이네]
▲ 충북 증평 죽리마을 대나무공원. 김웅회 이장이 스페인의 세계적인 관광명소 구엘공원을 다녀온 뒤 감명을 받아 조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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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문제가 농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여러가지 사업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주로 빈집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해 마을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인구를 유입시키는 정책이다.
충북 옥천군과 가까운 증평군, '새뜰마을사업(2014)'과 '귀농인의 집(2015)'으로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죽리마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죽리마을은 5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농촌 마을처럼 골목마다 빈집이 빼곡했다. 10년 넘게 방치돼 다 쓰러져가는 폐가와 지저분한 골목은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했다. 빈집에 화재가 발생해 놀란 마음을 쓸어내린 일도 있었다. 주민들 스스로도 이곳을 '별 볼일없는 시골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전혀 다르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한테 '우리 동네 좀 와 봐' 하고 자신 있게 말해요. 그만큼 자부심이 생겼다고."
"골목마다 지저분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얼마나 깨끗해. 사람들이 마을을 아끼게 되니까, 단합도 더 잘되는 것 같아."
죽리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양철희(77)씨와 반채화(77)씨의 말이다. 을씨년스럽던 15채의 빈집은 사라지고 이제는 개성 넘치는 공원과 6채의 귀농인의 집, 공영주차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충북 증평 죽리마을 김웅회 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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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증평 죽리마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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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죽리마을은 '제1회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경진대회(농협중앙회 주최)'에서 장려상, '제1회 농촌 빈집 및 유휴시설 활용 우수사례 공모전(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공동주관)'에서 전국 대상을 수상하는 등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했다.
2017년 마을 만들기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로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졌다. 김웅회(66) 죽리 이장은 "2018년도에 1천500여 명, 2019년도에 4천여 명, 코로나19로 이동이 적었던 지난해에도 2천여 명이 찾았다"고 말한다.
"내가 처음 고향 마을에 돌아와 이장을 맡은 게 2012년이에요. 그때 주민 수가 125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50여 명이에요. 농촌 인구가 자꾸 줄어든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은 더 많아진 거죠."
변화는 마을 옆의 죽리초등학교에도 나타났다. 한 반에 15명 이내였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25명 이상으로 늘어 분반을 계획할 정도다. 지난해 기준으로 84명이었던 초등학생 수는 1년 사이에 100명 이상으로 20여 명가량이 늘어났다. 변화는 학생수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죽리마을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어요. 소시지 만들기 체험학습에 참여하거나 학교 체육관에서 연극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마을이 좋아지면서 가능해진 일이에요. 마을과의 교류로 자연스럽게 마을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일도 많아졌죠.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마을과 학교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게 된 거예요." (죽리초등학교 이수호 교장)
죽리마을에서도 빈집을 마을 조성사업과 귀농인의 집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인을 수소문해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빈집 소유자 중 더러는 빈집을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김웅회 이장은 포기하지 않고 직접 그들을 찾아가 "지금은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협조해 주시면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 국가에서 사업비를 지원받고 자부담은 적다"며 설득한 끝에 결국 허락을 받았다.
마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알록달록한 구조물이 있는 '대나무 공원'이다. 타일을 조각조각 붙여 만든 벤치와 벽은 방문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대나무가 많은 동네였다는 마을의 특성을 살려 만든 대나무를 형상화한 설치물도 돋보인다. 김웅회 이장이 스페인의 세계적인 관광명소 구엘공원을 다녀온 뒤 감명을 받아 조성했다고. 옛 경로당과 빈집이 있던 자리가 이제는 죽리마을의 상징물이자 마을 옆의 죽리초등학교 어린이의 새로운 놀이터가 됐다.
650년 넘도록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가 자리한 곳에는 '박샘공원'이 자리 잡았다. 방치된 마을의 옛 우물터를 복원시켜 만든 이곳에는 관련된 옛 설화와 역사적 자원을 살린 벽화를 그려 넣고 휴식공간을 조성했다.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이곳에서 마을 축제인 '삼보산골축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나무 공원 뒤편에 자리 잡았던 폐축사와 빈집 또한 관람객과 주민들을 위한 공용 주차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주한다는 '귀농인의 집' 6채도 쓸모없는 빈집을 리모델링 혹은 철거한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 빈집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충북 증평 귀농인의 집 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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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진행된 귀농인의 집 조성사업을 통해 죽리마을은 6채의 귀농·귀촌인을 위한 거주지를 마련했다. 조성사업은 빈집을 철거한 후 새로 건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2015년에 1호와 2호, 2017년에 3호와 4호, 2018년과 2019년에 5호와 6호가 차례로 조성됐고 이 중 4호는 빈집의 원형을 살려 정비했다.
옥천군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귀농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한 마을에 귀농인의 집이 여러 채 조성된 사례는 죽리마을이 유일하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20가구 가까운 귀농인의 집 입주자가 거류했고, 이곳을 거쳐 마을에 실제로 정착한 주민도 만나볼 수 있었다.
"저는 본래 서울에 거주하면서도 주말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귀촌팜에 다닐 만큼, 귀촌에 관심이 많았어요. 짧게나마 농사를 해봤는데 적성에 맞는 거예요. 이후로 농촌에 정착을 해봐야겠다 싶어 제천 체류형 농촌창업지원센터에서 1년 정도 거류도 했죠. 그 연장선상으로 이곳 죽리마을 농업인의 집을 찾았어요. 여러 지역에 귀농인의 집이 있지만 저는 사실 이장님 보고 이 마을에 머물기로 마음 먹었어요."
한때 죽리마을 귀농인의 집 1호에 거주하다, 이제는 어엿한 죽리마을 주민이 된 전광수(67)씨의 이야기다. 그는 이곳을 택한 가장 큰 이유로 '사람'을 꼽았다.
▲ 한때 죽리마을 귀농인의 집 1호에 거주하다, 이제는 어엿한 죽리마을 주민이 된 전광수(67)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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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함께 귀농인의 집에 거주했던 이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죽리마을만의 장점이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였기에 때때로 음식을 나누는 등 정을 나누는 일도 많았다. 다른 지역 귀농인의 집에 비해 시설이 깔끔했던 것도 좋은 점이었다. 그가 바로 주택을 구해 귀촌을 하지 않고 귀농인의 집을 택한 것은, 귀농·귀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농이 어려운 게, 실제로 살아보면 처음 자기가 가졌던 환상과 아주 다를 수 있거든요. 귀농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에요. 자신에게 귀농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확인하는 준비가 필요해요. 귀농인의 집에 온다는 것이 그 '준비과정'이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죽리마을에 정착한 지금, 그는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가구제작, 요리, 각종 농업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데 열정을 쏟았던 만큼 그는 이곳에서도 열정 넘치는 제2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귀농을 한다고 해서 꼭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에요. 삶의 터전이 농촌이 되었을 뿐이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예요. 지금은 마을에서 목공방을 해보려고 집 앞에 공간을 하나 만들었어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책상을 제작해볼 수도 있고요. 그동안 농업 관련해 취득한 자격증을 살려 강의도 할 테고 유기농 작물도 길러볼 생각이에요. 제가 이곳 마을에 지내면서 마을 분들에게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로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려야죠."
작은 학교 찾아 마을에 정착한 연극인 부부
극단 '배꼽' 연출가 진유리(42)씨는 1년 전 죽리마을에 정착해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흙벽이 정겨운 고즈넉한 옛집, 넓게 펼쳐진 뜰 앞에는 노란색 극단 연습실 겸 공연장이 자리잡았다.
"원래 청주에서 살고 있었어요. 5년 넘도록, 아이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우리 부부의 작업공간도 가까이에 마련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증평 별천지 공원을 찾은 날, 우연히 죽리초등학교를 발견한 거예요. 학교 주변에 거주할 만한 집이 있는지 알아봤죠."
당시 한 곳 매물이 나왔던 집이 지금의 집이었다. 텃밭이 있던 자리는 작업공간을 두기에 제격이었다. 무엇보다 부부는 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10년 전, 폐가에 가까웠던 집을 전 주인이 리모델링해 카페처럼 꾸며놓았다. 운명처럼 찾은 집이었다.
▲ 극단 '배꼽' 연출가 진유리(42)씨는 1년 전 죽리마을에 정착해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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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쌓인 집이기에 처음 이사 올 때, 부부는 직접 찹쌀풀을 쑤고 벽에 한지를 발라 도배를 해야 했다. 그야말로 정성을 바른 집이다. 극단 연습실이 완성된 뒤에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날 무척 재미있었어요. 기왕 공연할 것, 마을분들을 모셔서 보여드리면 좋겠다 생각해서 무대를 꾸몄는데 주민분들은 '집들이'를 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두루마리 휴지를 사오셔서 주시고...(웃음)"
마을 주민들로 행복했던 추억은 더 있다.
"저희 마을에 또 산타가 되게 많아요. 저는 그분들을 '죽리 산타'라고 부르는데요(웃음). 저희가 어디 나갔다 오면, 가끔 집 앞에 계란, 우유, 애기들 과자, 제철 농산물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요. 재밌는 건 어느 분들이 갖다 주시는 건지 모른다는 거예요. 절대 티를 안 내세요. 이렇게 저희를 예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죽리마을의 발전요인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새뜰마을사업으로 마을이 깨끗이 단장되고 귀농인의 집으로 다양한 외지인들이 찾아오면서, 죽리마을은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곳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다채로운 분야의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들어 새로운 장을 열어나간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요. 앞으로도 계속 미래를 내다보고 마을을 가꾸어나가야죠. 주민들에게도, 관광객들에게도 세월이 지나도 다시 찾고 싶은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죽리마을 김웅회 이장)
▲ 충북 증평 죽리마을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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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증평 죽리마을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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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증평군은 2020년에 '빈집실태조사'를 실시해, 증평군 내 빈집을 관리 상태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정리하는 작업을 올해 마쳤다. 기존에 면 단위로 단순히 빈집의 수를 파악하고 철거대상 주택을 선정했던 '빈집정비사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조사다. '빈집실태조사' 결과는 이후 시행될 빈집 관련 군 사업에 활용된다.
특히 소유주의 동의를 얻은 빈집의 경우, 한국국토정보공사(LX)에서 운영하는 빈집 플랫폼 '공가랑'에 그 정보를 등록해 빈집 매매를 희망하는 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체계적인 빈집 관리가 가능해진 셈이다.
[관련기사]
월 15만원에 깨끗한 집 빌려주자, 동네 소원이 이뤄졌다 http://omn.kr/1sk92
팔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348채 http://omn.kr/1sjk2
월간 옥이네 2021년 3월호(통권 45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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