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막으려면 설탕세"..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만을 세금으로?..당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야
[아시아경제 이주미 기자] 최근 국회에서 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설탕세'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법안은 당 함량에 따라 음료 가격에 일정액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가격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국민 건강을 관리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법안 취지는 사실상 물가 올리기 정책에 불과해 일종의 '세금 만능주의'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류가 들어간 음료를 제조·수입·유통·판매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음료 100L당 당 함유량이 20kg을 초과하면 2만8000원, 100L당 당 함유량이 16~20kg면 2만원 등으로 당 함량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한다.
강병원 의원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과도한 설탕 섭취를 비만·당뇨병·충치 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건강한 식품·음료의 소비를 위해 보조금 등의 재정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해당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돼 심의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 취지와 달리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당류를 포함하는 가공식품에 일괄적인 부담금 부과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고 획일적 방법이 아닌 다른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측은 한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의 당 함량을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먼저다"고 비판했다. 또한 30대 회사원 김 모씨는 "국회에서 국민 건강을 위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자세다"라면서도 "물가를 올려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 높아지는 비만 위험···당류 소비 규제 필요성
해당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우리나라 비만율은 건강을 위협할 수준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만들고 또 수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은 34.6%로 성인 3명 중에 1명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당뇨병학회의 조사에서 같은 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이 13.8%에 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비만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청소년도 비만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에 따르면 초·중·고교 학생 중 25%는 과체중이거나 비만이었다. 특히 비만 비율은 2015년 11.9%에서 15.1%로 증가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비만으로 건강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학계에서는 이번 법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설탕세 도입을 촉구하는 의견이 있었다.
지난 2019년 한국건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설탕 섭취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설탕세 도입을 심각히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다. 영국은 설탕세 도입 발표 후 청량음료 기업의 50% 이상이 설탕 함량을 조정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한비만학회도 지난 2016년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설탕세와 같은 수위 높은 규제에 대한 검토나 식품 가공과 관련해 당류를 줄이는 노력에 대한 세제 지원 등과 같이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설탕세만으로는 당류 섭취 못 줄여···외려 가격 부담만
하지만 비만 문제를 운동이나 교육 대신 증세로만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설탕세가 당류 섭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세금 부과로 음료수 가격이 인상되는 데 따른 소비자 부담만 되려 커진다는 입장이다.
도입 초반에는 소비자들이 가격에 부담을 느껴 일시적으로 구매가 감소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돈을 내서라도 당류 소비를 다시 이어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세금을 피해 다른 국가에서 구매하거나 혹은 맛은 비슷하되 가격은 저렴한 음료 중심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등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11년 탄산음료 한 캔에 설탕세를 부과한 뒤 첫해에는 판매율이 약 3% 감소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높아진 가격에 익숙해지면서 판매 억제 효과가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덴마크도 고열량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지만, 가격이 오르자 국민들이 이웃 국가인 스웨덴이나 독일로 원정 쇼핑을 가는 사례가 늘어났다. 실효성 논란이 일었고 결국 1년 만에 폐지했다.
이미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는 담배의 사례를 고려하더라도 설탕세만으로는 당류 소비를 줄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지난 2014년 44억 갑이었던 담배 판매량은 2015년 담뱃값 인상 이후 33억 갑으로 감소했다. 이후 2016년에 36억 갑으로 늘어났지만, 지난해 다시 35억 갑으로 줄어드는 등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흡연 경고문과 질병 사진 도입, 흡연구역 제한 및 금연 구역 확대 등 비가격 금연 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며 흡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WHO 역시 지난 2018년 담뱃갑 경고 그림이 금연 구역 확대 등과 더불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정책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설탕세와 더불어 당류 섭취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함께 형성돼야 제도 도입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담뱃값 인상 직후 남성 흡연율이 40.7%에서 37.9%로 감소했다가 이듬해 38.4%로 다시 높아진 사례가 있었다. 복지부는 당시 비가격 정책이 함께 시행되지 못하면서 가격정책 효과가 반감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소비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금 대신 비가격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세금보다는 캠페인 등 비가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제품의 영양 표시 레벨에 설탕을 특히 강조해 표기하는 등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설탕세는 생활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며 "세금은 가장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미 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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