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채무비율 5년 뒤 70%인데..여야정 '재정준칙' 방치 이유

조현숙 2021. 4.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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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나랏빚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재정준칙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예외 조항이 많아 ‘맹탕’ 비판을 받은 준칙인데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11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안(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논의된 건 지난 2월 16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6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회의에서 재정준칙에 대한 건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 의견 발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재정 건전성에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유연한 대처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가채무비율 국제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재위 국회의원들은 물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재정준칙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발등의 불인 4차 긴급재난지원금, 자영업 손실보상제 등 논의만 했다.

재정준칙은 나랏빚이 일정 수준 이상 늘지 못 하게 하는 일종의 제동 장치다. 기재부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의 ‘한국형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60%룰 같은 세부 내용은 국회를 거칠 필요 없이 정부가 바꿀 수 있는 시행령에 담기로 했다. 대신 재정준칙 제정의 근거를 국가재정법에 박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시작부터 난항이다. 정부 발의 후 4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실 방치에 가깝다.

여당은 돈 풀기에 걸림돌이 되는 재정준칙 도입에 소극적이다. 야당은 준칙에 구멍이 많다며 더 엄격히 할 것을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이달 임시국회 통과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여ㆍ야ㆍ정 핑퐁 게임 속에 재정준칙은 표류 중이지만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재정 점검(Fiscal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8.7%였던 한국의 채무 비율은 2023년 61%로 올라설 예정이다.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기로 한 2025년이 되기도 전에 채무 비율 60% 기준선을 뛰어넘게 생겼다. 물론 그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2.5%)이 재정준칙 기준선(-3%) 아래이긴 하지만 큰 흐름에서 ‘재정 비상사태’란 점은 달라질 건 없다.

IMF는 오는 2026년이면 한국의 채무 비율이 69.7%를 기록하겠다고 전망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재정준칙을 못 지키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해 10월 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IMF 예측치를 보면 올해 122.5%까지 치솟은 35개 선진국의 GDP 대비 채무 비율(평균치)은 2026년 121.1%로 내려간다.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선진국 전반에서 재정 건전성이 나아진다는 의미다. 심각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마저도 올해 256.2%에서 2026년 254.7%로 채무 비율이 낮아질 전망이다. 코로나19 탓에 정부 지출이 늘고 세금 수입이 줄었지만 대부분 선진국에선 일시적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나랏빚 폭주가 계속된다. IMF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재정 점검 보고서에서 “중기적으로 한국은 사회 안전망 확충, 일자리 창출 지원, 구조 혁신 등 요인으로 공공부채가 상승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공공부채 비율이 2026년 92%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로(유로화를 쓰는 19개국) 지역과 대조된다”고 분석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의 부채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의 증가 속도라면 안심할 수 없다. 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에 든든한 방패 역할을 했던 재정 건전성을 더는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가계ㆍ기업부채와 마찬가지로 국가채무도 한 번 늘어나기 시작하면 제어하기 힘든 속성이 있다”며 “재정 건전성을 개선하려면 훨씬 앞서 세법 개정도 해야 하고 지출 예산에도 반영해야 하는데 정부ㆍ여당 할 것 없이 코로나19를 핑계로 논의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재정준칙 역시 2025년 도입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때면 이미 늦다”며 “2025년을 고집하는 건 다음 정부에 책임을 미루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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