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기 수첩' 스모킹건 얻고도..임종석·조국 증거불충분 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15개월 여 추가 수사 끝에 청와대 수뇌부는 빠진 일부 비서관들의 일탈 행위처럼 결론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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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정황 있지만 구체적·실질적 가담 증거 미확인”
지난해 1월 29일 윤석열 전 총장 시절 송철호 울산시장과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 13명을 기소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에는 임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의 개입 정황이 다수 담겨있다. 특히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의 2017년 10월 업무수첩에서 '임 전 실장이 문 대통령을 대신해 송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를 요청했다'는 메모를 확보하기도 했다.
공소장에는 ‘후보자 매수’ 의혹과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송철호 후보가 당선을 위해 임종석 당시 실장 등을 통해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후보(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위원장)에게 원하는 공사 자리를 제공하는 선거 전략을 짰다고 판단했다. 또 임동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내 ’86학번 모임‘에서 만난 임종석 실장에게 ‘최고위원 끝나면 오사카 총영사 자리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적혔다.
조국 전 수석은 ‘하명 수사’ 의혹과 연관돼있다. 당시 공소장에는 ‘특히 지방선거 이후 5개월 동안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다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사건의 수사 상황을 확인해달라는 조 수석의 요청에 따라 관련 사건 보고가 올라왔다’고 적혀있다. 경찰의 수사상황 보고서를 조 전 수석 역시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적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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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수첩' 열람·반환 놓고 재판도 15개월 공회전
'송병기 수첩'을 두고 1심 재판은 열람·등사 및 반환을 요구하는 변호인과 "추가 수사 중인 상황이 포함돼 있다. 내용 뿐 아니라 형상 자체도 중요한 증거라 반환할 수 없다"는 검찰과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월 기소된 피고인들 재판도 지난달 31일까지 6차례 준비기일만 연 채 공전해 왔다.
그제야 4·7 재보선 직후인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핵심인 임 전 실장, 조 전 수석,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에 대해 15개월 추가 수사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 관계자는 “불기소 처분된 사람들도 일부 관여가 의심되는 정황들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범의(犯意)나 공모 관계를 인정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가담행위나 그에 관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피해 당사자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임종석 당시 실장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물증이 있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검찰 조사 당시 목격한 '송병기 수첩'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공권력을 남용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짓밟고 선거를 농락한 무리의 수괴에 대한 처벌이 유야무야 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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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은 압수수색·임의제출·소환 거부, 秋는 수사팀 해체
이같이 주장한 배경에는 청와대와 법무부 등의 ‘조직적 수사방해’가 있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는 지난해 1월 수사팀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가로막았다. 청와대는 군사 보호시설에 해당해 검찰의 압수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통상 압수물을 ‘임의 제출’해왔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수사 때도 청와대가 압수물 일부를 임의제출하는 형태로 진행했다고 한다. 이마저 거부하려면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임의 제출도, 사유서 제출도 거부했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렇게 대놓고 수사를 거부한 적은 없다”는 한탄도 터져 나온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로 수사팀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는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작년 8월 당시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은 대구로 발령 났고, 파견검사 3명은 원대 복귀 조치됐다. 20여명에 가까웠던 수사팀 인력 중 현재까지 남은 검사는 단 2명이라고 한다.
심지어 4·15총선에서 여당이 176석에 달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소환에 응하지 않는 참고인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결국 이성윤 검사장의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1월 공소장에 적힌 ‘의심 정황’ 외의 사실관계를 추가로 규명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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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댓글 사건처럼 정권 바뀌면 뇌관될 것”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놓고 “박근혜 정부 때 원세훈 댓글 공작 사건처럼 정권이 바뀌었을 때 터지는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까지 나온다. 대선 개입 댓글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려 결국 ‘적폐 청산 대상’이 된 국정원처럼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이성윤 지검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오히려 반격에 나섰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조 전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울산 선거개입' 조국-임종석-이광철 무혐의 처분〉이란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제서야”라고 썼다. 조 전 수석은 과거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이른바 ‘울산 사건’은 명백히 의도적으로 기획된 사건이며 그 책임 당사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라고 지목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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