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범죄 그놈 출소했는데..1년째 배상도 못받은 피해자
3년 전 성범죄 피해를 본 A씨(29)가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서울중앙지법 판사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진정서를 통해 "형사재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피해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판사가 일방적으로 무변론 판결을 취소했다“며 ”소장 접수 1년이 됐고, 가해자는 만기 출소했다“고 했다. 가해자로부터 배상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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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 판사 상대 진정
2018년 1월 31일 A씨는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8년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이모(31)씨와 술을 마셨다. 아침이 돼서 귀가해 오후에 잠에서 깼는데 바지가 벗겨져 있고, 하반신에 통증이 느껴졌다고 한다. 만취 상태로 잠들어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성범죄 피해가 의심돼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진술한 뒤 이씨에게 연락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집에 데려다주고 이불 가져다주고 갔다”는 게 전부였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이씨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귀와 가슴에서 이씨의 타액이 검출됐다. A씨의 속옷에서는 이씨의 정액과 일치하는 DNA가 나오기도 했다. 이씨 측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정액이 튀었을 가능성’, ‘피해자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묻었을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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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검출…법원 "만취 상태 이용"
1심은 “술에 만취한 피해자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해자는 상당한 성적 수치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씨에게는 징역 1년 8월이 선고됐다. 다만 재판부는 성기를 삽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준강간이 아닌 준유사강간 혐의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9일 이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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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직장 그만두고, 이사만 3번"
A씨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이후인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법에 위자료와 치료비로 총 70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2018년 1월 일어난 사건 이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대인기피증으로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누가 말만 걸어도 깜짝 놀라고 무서워서 아직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며 “내가 피해자인데도 2018년 이후 이사를 3번이나 다녔다”고 토로했다.
A씨가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건 형사재판 과정에서 합의를 통해 돈 받는 것을 거부해서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증거가 다 드러나고 나서야 이씨 측에서 합의를 제안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기 때문에 돈으로 합의하지 않았는데 정신과 치료비 등 정당한 배상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꽃뱀이라는 2차 가해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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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판결 났는데…"피해 입증 필요"
이씨가 손해배상소송에서 의견서를 내지 않으면서 지난해 7월 무변론 판결 선고가 예정됐지만, 재판부는 직권으로 판결을 취소했다. A씨는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구했고, 지난 1월 첫 기일이 열렸다. A씨 측은 “유죄가 확정됐는데 첫 기일에 판사가 ‘피해를 어떻게 입증하냐’는 식으로 말해서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A씨는 정신적 피해 입증을 위해 재판부가 지정한 병원에서 신체 감정을 받겠다고 했지만, 3달째 병원 지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이씨는 만기 출소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인 주영글 변호사는 "성범죄라는 게 확정되면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는 것도 경험칙상 인정되기 때문에 민사소송에서는 형사 판결문을 근거로 배상 판결을 내리는 게 통상적"이라며 "가해자도 이를 부정할 방법이 없어 무변론으로 나오는 것일 텐데 신체 감정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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