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2조 합의..바이든 "美 노동자·자동차산업 승리"

강기헌 2021. 4. 12.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LG와 SK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거부권 행사 만료를 하루 앞두고 합의했다. 합의금은 2조원 규모다. 뉴시스·연합뉴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놓고 분쟁을 벌인지 713일만에 합의했다. SK가 LG에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국내외 모든 소송 취하와 10년간 쟁송을 하지 않는 조건이다. 특히 이번 합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시한(11일·현지시각)을 단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태평양 건너 '줌'으로 반나절 만에 마침표
700일을 넘긴 분쟁의 마침표를 찍는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와 미국에 있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지난 10일 오후 태평양을 건너 줌 화상회의를 통해 소송 종료에 합의했다. 양사는 11일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미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
두 회사의 합의문에서 드러나듯 이번 합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반도체처럼 배터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는 미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미 무역대표부(USTR)를 통해 두 회사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이 지난 2월 ITC의 최종 결정이 나온 직후부터 LG와 SK가 미 현지에서 선임한 로펌을 통해 합의를 종용해왔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LG와 SK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섰던 바이든 대통령의 합의 전략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1일(현지시간) LG와 SK가 2조원의 배상금에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이번 합의는 미국 노동자들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미국의 미래와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인 합의를 위해 노력해 준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감사한다"며 "미국 자동차 산업 강화 및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의 승리를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도 작동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1740억 달러(195조원)를 전기차 산업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전기차 원자재와 부품, 완성차까지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핵심이 전기차 배터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는 한·중·일 기업 간 경쟁 구도로 한·일 배터리 기업을 빼놓고 중국과 경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탈중국 전략을 추진하는 미국 행정부에 한국 배터리 기업 간 분쟁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LG와 SK의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미 전기차 시장은 단일 시장으로 중국 다음으로 크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터리 시장을 공략해야하는 LG나 SK 입장에서 미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 종용하는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소송전에 전력투구한 것도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G·SK 엔지니어 스카우트로 싸움 점화
LG와 SK간 배터리 소송전은 2년 전 시작됐다.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배터리 부문)이 2019년 4월 ITC와 미 델라웨어주 연방 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하면서 공방전이 시작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생산·품질관리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을 내고 “정당한 공개 채용 과정을 진행해 필요한 인력을 선발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후 양사는 ITC를 포함해 국내·외 법원에서 10건이 넘는 소송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양사 최고경영자(CEO) 간 만남도 이뤄졌지만 불발로 끝났다.

‘LG 대 SK’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 현지서 여론전 펼치며 대립
LG와 SK간 소송전이 전환을 맞은 건 2020년 2월이다. ITC는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결정(Default Judgment)을 내렸다. ITC는 결정문에서 “SK이노베이션의 고의적인 증거인멸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방해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예비결정 재검토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균형추가 다시 흔들렸다.

이후 1년 가까이 양사는 신경전과 여론전에 나섰다. 두 회사의 미 공장이 위치한 주정부와 협력사가 대리전에 나설 정도였다. LG에너지솔루션과 오하이오주 합작사를 설립한 GM과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 주지사는 지난해 5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불공정을 시정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1000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할 LG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서를 ITC에 제출했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ITC 조사 결과가 조지아주, 나아가 미국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주의 깊게 평가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ITC에 보내기도 했다.


ITC, LG 손 들어주고…SK 배터리 수입 금지
팽팽했던 무게추가 기운 건 올해 2월이다. ITC는 지난 2월 10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향후 10년 간 미국 내 수입 금지를 결정했다. ITC는 포드와 폴크스바겐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선 각각 4년, 2년간 수입 금지를 유예했다. 미국 내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면서 양사 간 합의를 열어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설득에 주력했다. 김준 총괄사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 정치권 인사 등을 만나며 설득 작업을 지휘했다.


SK 조지아 공장 돌릴 수 있어
이번 합의로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 공장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부터 조지아주 1공장에서 전기차 배터리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이와 별도로 조지아 2공장 신설도 진행하고 있다.

양사는 11일 각각 입장문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선제 투자를 통해 대규모 배터리 공급 확대 및 전기차 확산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양사가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생태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도 입장문을 통해 “이번 분쟁과 관련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조지아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며 “포드 및 폴크스바겐 등 고객사들의 변함 없는 믿음과 지지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앞으로 더 큰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SK는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의 불확실성과 K배터리의 미래를 고려해 대승적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부도 두 기업의 합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이번 일을 계기로 2차전지 산업계 전반의 연대와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또 “이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 준비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강기헌·김경미 기자 emck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