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넘긴 노태우..아들이 "광주 갈까요?" 물으면 눈 깜빡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수년째 투병 생활을 이어오며 지난 9일 호흡 곤란을 겪었던 노태우(88) 전 대통령이 현재는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 A씨는 “지난 9일엔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던 거로 안다. 긴급 출동한 119가 도착하기 전에 다행히 상태가 호전됐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이후 2005~2006년쯤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한다. 그는 “소뇌에 문제가 있어 움직일 수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만 대뇌에는 이상이 없어 생각이나 의식 표현은 할 수 있다”고 노 전 대통령의 상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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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안정 찾아”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A씨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 며칠씩 입원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85) 여사도 노환 등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한다. 김 여사는 노 전 대통령 병간호를 하다가 2~3년 전 넘어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노부부는 연희동 자택에서 아들 노재헌(55)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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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빡하면 광주 가란 뜻”
A씨는 노 원장이 지난 2019년 8‧12월, 2020년 5월에 5‧18 민주묘지를 찾아 사죄의 뜻을 밝힌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평소 뜻에 따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노 원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광주광역시를 갔다 오겠다고 물어봤었다”며 “(노 원장이) ‘가지 말까요?’라고 물으면 노 전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고, ‘갔다 올까요?’라고 물으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 식으로 소통해서 노 원장이 광주를 찾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 5월 고(故) 이한열 열사 묘소를 찾았을 때는 김 여사의 뜻도 함께 전했다고 한다. 김 여사는 1988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직후 이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A씨는 “김 여사의 과거 방문 사실을 뒤늦게 접한 뒤 김 여사가 32년 전 두고 왔던 헌화를 재현한 꽃바구니를 이 열사 묘소에 두고 왔다”며 “김 여사가 평소 이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린 학생이 참변을 당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이 수년째 좋지 않아 가족들이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올해 5월에도 노 원장 등이 광주를 찾을 예정이다. 광주에 다녀왔다고 하면 노 전 대통령이 반응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광주 방문을 노 원장의 향후 정치 행보와 연결짓는 데 대해선 “숙제처럼 남은 마음의 빚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딸인 노소영(60)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지가 한마디 말도 못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십여년을 지냈다”고 적었다. 노 관장은 “아버지가 ‘소뇌 위축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대뇌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는데, 그게 더 큰 고통”이라며 “(어제) 또 한고비를 넘겼다. 지상에서 아버지에게 허락된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인내심이라는 확실한 교훈을 주셨다”고 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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