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남탓, 검수완박 강행..나만 옳다는 갈라파고스 민주당

오현석 2021. 4.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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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에 갇힌 거여(上)]
김태년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가운데)과 최고위원들이 8일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뒤 허리를 숙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52.8%→39.2%. 174석의 거여(巨與) 더불어민주당이 받아든 지난 1년간의 성적표다. 민주당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서울지역 49개 지역구에서 모두 52.8%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는 2018년 6·10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득표율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민주당 득표율은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39.2%로 주저앉았다. 민주당의 서울지역 득표율이 40% 미만을 기록한 건 2008년 총선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지지층 이탈이 아닌 지지 블록 붕괴 수준”이라는 자평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지역 득표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민주당 지지율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여당이 지난해 코로나19 방역 성과로 총선에서 이기긴 했으나, 그 직전까지는 국정 지지율이 이미 빠지던 상태였다”며 “장기간 축적된 불만이 정권 심판론으로 나타난 것이라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경고에도 ‘검수완박’ 강행 외길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검찰개혁 이슈다. 지난해 총선 이후 60%(4월)→67%(5월)→59%(6월)로 높게 유지되었던 국정 지지율(긍정 평가)은 지난해 7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면서 40%대로 추락했다. 윤 전 총장의 징계를 시도한 지난해 12월엔 지지율이 30%대로 또 주저앉았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평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민생과 무관한 추·윤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지지율은 하락했지만, 민주당은 “선출되지 않은 법조 특권세력의 저항은 반드시 분쇄해야 한다”(신동근 전 최고위원)며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다. “검찰개혁은 국민의 명령이자 시대적 소명”(최인호 수석대변인)이란 논리 앞에 법원의 제동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법원이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효력을 정지하자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이낙연 전 대표)고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윤 갈등에 대해 사과한 뒤에도,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의 속도를 높였다. 그 과정에서 당·청 간엔 ‘속도조절 주문’을 둘러싼 진실게임마저 오갔다. 결국 윤 전 총장은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외친 뒤 지난달 4일 중도 사퇴했다.


박원순에겐 관대…“그렇게 몹쓸 사람이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성추행 관련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윤석열엔 가혹했던 여권은 ‘우리 편’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겐 관대했다. 성추행 사건 고소장이 접수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은 여권 인사들에 의해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졌다. 여당 지도부는 성추행 피해자 A씨를 ‘피해호소인’이라 불러 논란을 자초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장례식장에서 성추행 관련 입장을 묻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다”라며 호통을 쳤다.

민주당이 박 전 시장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당 당헌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공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해 11월 당헌을 개정해 공천을 강행했다. “후보를 안 내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기약할 수 없다”는 실리적 계산 때문이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여권 인사들의 ‘박원순 감싸기’는 계속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선거를 앞둔 지난달 23일 박 전 시장에 대해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라며 “그의 열정까지 매장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박원순은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고 반문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였다. 이 글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슬퍼요’를 눌러 공감을 표했다.


국민이 분노한 부동산은 ‘남 탓’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현직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도 청와대·여당은 보름 가까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신 LH에 대한 강경 대응과 함께 “부동산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면서도 LH 사장 출신인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사태 수습이 먼저라는 이유로 즉각 해임도 안 했다.

집값과 전셋값 상승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해 7월 임대차 3법 강행처리 이후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했지만, 민주당은 “전국의 아파트 매매 및 전세 가격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지난해 9월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 “임대차 3법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지난 1월 허영 대변인)는 말만 반복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시장에선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당·정에선 ‘주택수가 충분하다’는 논리만 반복했다”며 “문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정책 실패를 시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공급 대책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태년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박주민 의원이 지난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하던 모습.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전월세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이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이 법 통과 20여일 전 자신 소유 아파트의 월세를 9%(전월세 전환율 4% 기준) 가량 올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됐다. 뉴스1

‘남탓’으로 일관하던 태도는 ‘내로남불’의 책임 추궁으로 되돌아왔다. 지난해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대표 발의한 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 소유 아파트의 월세를 인상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박 의원이 “시세보다 많이 싸게 계약한 것이라는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님 설명을 들었다”고 해명하자, 야권에선 “이번엔 부동산 사장님 탓이냐”, “전형적인 동문서답”이란 비판이 나왔다.


뒤늦은 반성 “당이 갈라파고스 아닌가”

민주당 내부에선 올해 초까지만 해도 ‘20년 집권론’에 대한 기대가 끊이지 않았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4연승을 거두면서 “유권자의 구성이 탄핵을 거치며 민주당 우위로 바뀌었다”는 유권자 재정렬(realignment) 주장까지 나오던 차였다. 실제 선거 막판 민주당이 “국민의힘 당선은 막아야 하지 않냐”는 호소 전략을 쓴 것도 이런 판세 분석에 기초했다고 한다.

하지만 4·7 재·보선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면서 민주당의 현실 인식이 민심과 괴리됐다는 게 증명됐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불리하다는 여론조사 지표가 쏟아지는데도 의원들과 열성 지지자 사이에선 막판까지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얘기만 오갔다”며 “당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갈라파고스 제도’가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 128석→174석…거여(巨與) 됐으나 ‘Mr.쓴소리’는 없었다

지난해 7월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의 기립표결로 부동산법 등이 통과됐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 내부에선 당시 부동산 법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견을 제기할 용기가 부족했다.”

민주당의 한 2030 초선 의원이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털어놓은 지난해 7월 부동산 임대차 3법 단독처리에 대한 기억이다. 임대차 3법은 당시 상임위(법사위) 상정과 본회의 통과까지 단 28시간 만에 처리됐다. 해당 의원은 “국민 다수에 영향을 줄 법안이라 너무 서두른단 생각을 했지만 지도부 결정이어서 따랐다”며 “내가 참 안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은 4·7 재·보선에서 박주민 의원 등의 월세 인상 논란으로 여권에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21대 총선으로 탄생한 174석 거여(巨與)에선 쓴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헌을 개정해 서울·부산 보선 후보 공천을 결정할 때(지난해 11월)나, 야당 비토권을 삭제하는 공수처법 개정(지난해 12월)에도 당내 이견은 나오지 않았다. 2018년 8월부터 불거진 ‘조국 사태’ 당시 조 전 장관 가족을 옹호한 지도부를 비판한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가 있던 20대 국회와는 양상이 달랐다.

보선 국면에도 쓴소리는 없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불러 논란이 된 고민정·남인순·진선미 의원이 성찰 없이 전진 배치됐다. LH 투기 논란이 가시지 않자 이낙연 전 상임선대위원장은 선거일 8일 전 “이해충돌방지법을 단독 처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운을 띄웠지만 당내 반발은 없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조치였는데 다들 면피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쓴소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핵심은 당의 주류 혹은 대다수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기 꺼리기 때문”이라며 “의원단 숫자나 개별 의원 전문성보단 용기와 각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친문 극성 지지층에게 찍힌 금태섭 전 의원이 공천에 탈락하고 결국 당을 떠나게 된 것은 많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당론에 반대하면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학습효과를 심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대표·원내대표·최고위원 등 소수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된 구조적 모순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도부가 결정한 뒤엔 의원단 의견을 듣고 반영할 정치적 공간 자체가 없다”며 “화상 의총에서 말해봤자 벽을 보고 말하는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인사는 “원내대표는 ‘반장’ 역할인데 마치 ‘선도부’처럼 구는게 문제”라고 밝혔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초·재선 의원들이 더는 수동적 입장이 아니라 최근 이뤄지는 정치적 세대교체의 소임을 갖고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며 “기득권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주면 개별 의원에 대한 유권자 마음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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