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그라소·리암 길릭.. 남도에서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을 만나보자

손영옥 2021. 4. 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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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광주시립미술관서 전시회

전통 문인화의 성지인 전남에 세계적 현대미술가의 성찬이 차려졌다. 프랑스 뉴미디어 작가 로랑 그라소(49)와 영국의 설치미술 작가 리암 길릭(57)이 각각 전남도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전남의 지역 미술관에서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려 현지인들의 문화접근권을 높여주고 있다. 마침 광주비엔날레가 개최 중이라 함께 관람하기에 좋다. 사진은 전남도립미술관 개관전에 참여한 로랑 그라소 전시 전경.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로랑 그라소는 지난 3월 말 전남 광양시 광양읍에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의 개관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8월 8일까지)에 참여했다. 대도시도 아닌 인구 15만명의 지방 소도시에 세계적인 작가를 초대했다는 것 자체가 지역민의 문화향유권을 높이는 것이라 고무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이응노미술관 관장 등을 지낸 이지호 초대 관장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개관전은 3개 전시로 구성됐다. 먼저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인 의재 허백련(1891∼1977)과 남농 허건(1907∼1987)의 작품을 통해 전통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의재와 남농’전이다. 이어 이이남 허달재 김선두 허진 조병연 황인기 등 10명의 동시대 한국 작가가 참여해 전통 산수를 재해석한 설치, 회화,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전시 구성이다.

개관전이 찬탄을 자아내는 지점은 ‘로랑 그라소- 미래가 된 역사’전에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재 윤두서의 ‘말 탄 사람’과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총도’가 걸려 있어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역사적 그림을 유사한 화법으로 재현하는 개념미술 프로젝트인 ‘과거에 대한 고찰’의 한국 버전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조선시대 회화의 바위와 나무의 준법을 놀라운 묘사력으로 재현해낸다. 그러면서 두 명작을 패러디한 작품 사이에 ‘개기 일식 그림’을 슬쩍 집어넣음으로써 말 탄 선비가 금강산에 일어난 개기 일식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도입부는 어떤 불길한 징조를 암시하며 전체 주제인 ‘상상된 재해’ 속으로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전시는 기승전결의 전개 방식을 취하듯, 돌연변이 식물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설치작품 ‘미래 식물 표본실’, 흰 개가 폼페이 유적을 거니는 세기말적 풍경을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작품 ‘검은 태양’ 등이 펼쳐진다.

이처럼 자연을 경외하는 한편,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도인으로서의 동양 미학을 서양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그의 작품 세계는 상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2008년 마르셀 뒤샹상을 수상한 로랑 그라소는 이후 퐁피두센터, 허쉬혼미술관, 팔레드도쿄, 오르세미술관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며 세계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리암 길릭 전시 전경.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리암 길릭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 출신으로 런던 테이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한국에서도 갤러리에서는 소개됐지만 미술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첫 전시를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연 것이다.

전시 제목 ‘워크 라이프 이펙트’(6월 27일까지)가 시사하듯이 일과 삶의 긴장과 균형을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도 특유의 원색 혹은 무채색 막대들을 수직과 수평으로 배열한 설치 작품이 나왔다. 산업 재료로 쓰이는 알루미늄을 도색한 것이다. 막대들의 간격과 색 배합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작가는 이를 건축적 이미지에서 따온 ‘건축적 추상’이라 명명했다. 얼핏 도시 외관을 연상할 수 있지만 냉각시스템, 배관시스템 등 건물이 숨 쉬게 하는 건축적 내장의 이미지에서 따왔다. 말하자면 “일터인 건물의 내부를 추상화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 일터에서 일하는 우리는 행복할까. 이런 질문이라도 던지듯 작가는 네온 불빛 같은 글씨로 수학 방정식을 한쪽 벽면에 써놓았다. 이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발표한 바 있는 행복을 계산하는 공식이다.

전승보 광주시립미술관장은 “우리는 행복한가. 관객이 이렇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 명상을 유도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광주·광양=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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