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문하신 거북이 한 마리, 택배 왔습니다"

노유림,이주연 2021. 4. 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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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법 사각지대 있는 파충류
중국 온라인 거래 비난했지만, 국내서도 '택배 배송' 버젓이..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월 중국의 유명 블로거가 온라인 커뮤니티 웨이보를 통해 온라인상으로 반려동물이 거래되는 실태를 폭로했다. 고양이, 거북이 등 반려동물을 택배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 역시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거북이 등 살아있는 동물을 구매할 수 있다고 보도했고 이는 한국에서도 기사화돼 큰 비난을 불렀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반려동물을 구매해 택배 거래를 할 수 있는 건 비단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거북·자라·도마뱀 등 파충류 반려동물이 버젓이 상품으로 올라와 살아있는 채로 택배 배송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죽어서 도착하면 새 걸로 바꿔드릴게요"
국민일보가 지난 6~9일 총 9곳의 온라인 쇼핑몰 업체에 반려 거북이·도마뱀을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를 넣은 결과 대다수 업체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 업체는 “거의 모든 상품이 품절돼 몇몇 개체만 남은 상태”라고 답했다. 실제로 판매 목록에 있는 많은 파충류가 일찌감치 품절된 상태였다.
실제 업체들과의 전화 문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카톡. 카톡 내 업체명은 가상으로 설정됐음.

온라인으로 살아있는 파충류를 주문하는 경우 대개 일반 택배로 배송된다. 플라스틱 용기나 물 봉지에 개체를 담고, 그 주위를 신문지나 산소백 등 완충재로 포장한 뒤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배송하는 형태다. 일부 업체는 배송 시 온도 유지를 위해 핫팩을 동봉하기도 한다. 주문에서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사흘 내외. 그 시간 동안 파충류들은 박스에 담겨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배송될 수 있도록 버틴다.

업체 측에 배송 안전성에 대한 문의를 넣어보기도 했다. 거북이가 택배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지는 않을지 우려를 표했으나 대부분 업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A업체는 “거북이가 워낙 생명력이 좋아서 아직까지 사착(死着, 생물이 죽어서 도착한 상태)된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B업체의 경우 “겨울에는 죽어서 도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한데 지금은 날이 많이 풀려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매장으로 직접 거북이를 사러가면 안 되냐”는 질문에 매장 가격이 더 비싸다고 알린 곳도 있었다. 한 유명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입점한 C업체는 “제품(생물)이 물류센터를 거쳐 고객에게 배송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덜 들어 더 싸게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생물을 주문하는 게 매장에 방문해 구매하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뜻이었다.

"차가운 상태로 눈 감은 거북이"…배송 안전성에 의문 제기도
온라인 쇼핑몰 후기 갈무리

그러나 온라인으로 파충류를 주문한 몇몇 고객들은 해당 생물이 죽거나 다쳐서 왔다고 주장했다. 죽은 거북이를 받았다며 사진과 함께 후기를 올린 한 구매자는 “거북이가 좁은 공간에 세로로 박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왔다”고 전했다. 이“박스를 열자마자 냉기가 가득했고 동봉된 핫팩은 차가웠다. 살아있는 애들이라 충격이 최대한 없게끔 보낸다는 설명을 보고 구매했는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곳곳에서 “눈 감은 거북이가 왔다” “(거북이가)죽어서 온 걸 보니 괜히 시킨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는 후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 후기 갈무리

반려 도마뱀 역시 비슷한 후기가 많다. 도마뱀을 구매한 한 고객은 “핫팩을 넣어 포장도 꼼꼼하게 된 상태로 보내주신 것 같은데 배송이 하루 늦었다”며 “(도마뱀이)추운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상태가 안 좋았다”고 썼다. 그는 “도마뱀이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팔,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있더니 3시간 뒤 죽었다”고 했다.

생물이 사착되는 상황이 배송 환경 탓만은 아니다. 처음부터 건강하지 않았던 개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박대식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송 전 건강 상태가 잘 유지됐는지 등을 살펴야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생물이 일반 물건처럼 배송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거북이와 도마뱀은 적절한 온도 유지와 환기를 통해 질식사를 방지해줘야 하고, 충격을 주지 않아야 한다”며 “특히 거북이는 운송 중 개체가 뒤집히지 않게 유지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핫팩의 경우 온도 제공 시간이 제한적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생물 배송 시 완충재나 핫팩 등을 동봉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일부 업자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 "반려동물 구매 목적 택배 배송 금지돼야"

그렇다면 반려동물 택배 배송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까. 동물보호법 제9조의 2(반려동물 전달 방법)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반려동물을 판매하려는 자는 해당 동물을 구매자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동물 운송업자를 통해 배송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및 햄스터와 같은 포유류로 한정된다. 파충류는 반려동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

동물권 연구 변호사 단체 PNR의 김지혜 변호사는 “파충류는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반려동물로 규정되지 않은 동물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려동물이 아닌 ‘동물’의 범주에서 판단한다면 파충류도 보호 대상에 속한다. 동물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파충류는 동물보호법에서 정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에 해당하고, 동물보호법 제9조(동물의 운송)는 동물의 운송과 관련해 준수해야 할 사항을 언급한다.

다만 처벌 규정이 정해진 동물보호법 제9조의 2와 달리 제9조는 일부 조항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김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9조 1항 내 1호에서 3호 규정은 위반하더라도 처벌 근거가 없다”며 “살아있는 파충류를 배송하더라도 마땅한 근거 법률과 과태료를 부과할 처벌 규정조차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살아있는 동물이 택배로 배송된다는 자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물권 단체 동물자유연대의 한 활동가는 “파충류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공공연하게 배송이 이뤄지고 있고, 특히 몇몇 소규모 브리딩 업체는 생물 배송의 위험성에 대해 정확히 잘 모르기도 한다”라고 짚었다.

김 변호사는 “(택배 배송되는)대부분 동물이 먹이나 주변 온도, 습도 등 생육환경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채 며칠간 좁은 박스에 갇혀 지내게 된다”며 “매매 목적이 아닌 예외적으로 동물의 운송이 필요한 경우에만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방법으로 운송케 할 수 있도록 법이 정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유림 인턴기자
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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