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잘생김" 13세 英여왕, 몰락 왕족 필립공에 빠진 순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릴리벳'으로 불리던 공주 시절, 영국 왕립 해군대학 사관후보생이자 몰락한 그리스 왕족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여왕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70년 가까이 국서 자리를 지킨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9일(현지시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영국 언론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일제히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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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없는 영국 공주와 비운의 그리스 왕자
10일(현지시간) 타임지는 "13세의 엉뚱한 소녀였던 릴리벳"이 "18세의 끔찍할 정도로 잘생긴 해군 장교"에게 푹 빠진 과정을 소개했다. 그리스 왕자였던 필립공은 가난하게 자랐지만, 특유의 남성적 매력과 호방한 성격, 출중한 외모로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필립공의 어린 시절은 불운으로 점철됐다. 1921년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왕 콘스탄틴1세의 조카이자 안드레아스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내 군주제가 전복돼 온 가족이 강제 추방됐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후손이기도 한 어머니 앨리스 공녀는 망명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프랑스 남부로 도망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1935년 그리스 군주제는 다시 복원됐지만 불안정했다. 이 시기 필립공은 영국 스코틀랜드 기숙 학교인 고든스턴에서 수학하며 마음을 다잡아 갔다. 하지만 1937년 누이 세실이 만삭인 채로 비행기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비극을 겪으면서 또 한차례 시련을 겪었다.
이후 필립공은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1939년 해군에 입대했다. 릴리벳 공주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해군학교에서 최고 생도로 뽑힌 그는 학교를 방문한 릴리벳 공주를 안내했다. 수많은 비극을 극복하고, 해군으로서의 삶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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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해군서 승승장구
그는 해군이 체질에 맞았다. 21세의 나이에 영국 해군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갑판사관이자 구축함 월리스의 제2 지휘관이 됐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지중해와 태평양에서각각 시칠리섬 상륙작전, 영국군 구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타임지는 필립공이 구축함 웰프를 타고 태평양에 파견됐을 당시 그를 본 호주 여성들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우리는 모두 완전히 그에게 미쳐있었다", "그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등이 20대의 필립공을 본 호주 여성들의 반응이었다. 그 시기 릴리벳 공주의 방에도 필립의 사진을 담은 액자가 있었다고 한다.
릴리벳 공주는 참전 중인 필립에게 종종 편지를 썼고 드물게라도 답장이 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몰래 편지를 읽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조지6세의 우려와 만류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1947년 11월, 릴리벳 공주가 20세, 필립공이 25세일 때다. 필립공은 왕실의 일원이 되면서 필립 윈저-마운트배튼, 에딘버러 공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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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姓 못 물려주는 英유일 남자"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필립공의 삶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우선 그리스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삼촌과 자신의 대부를 따라 성(姓)도 영국식인 마운트배튼으로 정했다.
애착을 가졌던 해군 경력도 일찍 포기해야 했다. 2차 대전을 치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쇠약해진 조지 6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다. 릴리벳이 1952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즉위했을 때 필립공은 여왕의 대관식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때부터 필립공의 직업은 해군이 아닌 '여왕의 남자'가 됐다.
조지6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뒤 두 사람을 걱정했다고 한다. 남성적 기질의 필립이 너무 젊은 나이인 30세에 그동안 쌓은 모든 경력을 포기하고 여왕의 그림자로 사는 게 쉽지 않은 거라 여겼다. 실제 필립공은 즉위 초기 엘리자베스 2세와 많은 일로 다퉜다. 엘리자베스 2세와 자식들의 성에서 '마운트배튼'이 사라지는 일부터, 쏟아지는 행사와 의무 속에서 자기 자신이 아닌 여왕의 남자로 행동해야 하는 일 등이 짜증으로 쌓인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자식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조지6세는 생전 엘리자베스 2세에게 "필립은 뱃사람 같은 사람이다. 한 번씩 파도를 탈 때도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직설적인 성격으로 설화를 빚기도 했지만, 그는 70년 넘게 여왕의 곁을 지키며 의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왕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리스 왕실의 몰락을 본 탓에 영국 왕실의 현대화를 위해 애썼다. 무수한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2017년 한 행사에 참석한 필립공은 자신을 두고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현판 제막 기계(plaque-unveiler)를 보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남겼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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