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막내도 '강심장' 물려받고 '금 썰매' 탈 겁니다

김용현 2021. 4.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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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켈레톤 전설 윤성빈과 막내 정승기의 베이징 도전
한국 스켈레톤의 전설 윤성빈(왼쪽)과 대표팀 막내 정승기가 24일 평창 알펜시아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코리안컵 3차 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출발 구간을 내달리고 있다. 윤성빈과 정승기는 선발전에서 각각 3위와 2위로 국가대표에 안착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최초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모든 걸 내어줄 준비가 돼 있습니다”

2018평창올림픽에서 한국 스켈레톤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기적을 써낸 윤성빈(27·강원도청)은 1년도 남지 않은 2022베이징올림픽을 두고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가 심은 씨앗에 꽃을 피운 건 그이지만, 스켈레톤이 ‘윤성빈’ 세 글자에만 머무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썰매의 영광이 이어지기 위해선 윤성빈의 반짝 금메달을 넘어 후발 주자의 탄생도 중요하다. 대표팀 막내 정승기(22·가톨릭관동대)가 바로 그 선수다. 그는 고3 때 처음 스켈레톤에 발을 들인 ‘천재’ 윤성빈과 달리 중3부터 제도권에 있으면서 차근차근 만들어진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윤성빈은 6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 전에는 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다른 선수들이 저보다 잘했으면 좋겠다”며 “제가 전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다. 저는 모든 걸 다 내어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한국 썰매의 역사들

스켈레톤은 평창올림픽 전과 후로 나뉜다. 2010밴쿠버올림픽 당시 2억원에 불과했던 썰매 종목 지원금이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자 30배로 뛰었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알펜시아슬라이딩센터를 짓기 전까지 국내에는 제대로 된 썰매 트랙도 없을 만큼 열악했다. 제도권에서 성장했다는 대표팀의 막내 정승기조차도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에서 열린 스켈레톤 대회에 참가해 트랙을 처음 타봤다”며 “그전까지는 출발(썰매에 오르기 전 발 구르기)만 잘하면 썰매가 저절로 가는 줄 알았는데, 트랙에 온몸이 부딪히면서 새파랗게 멍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장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자 스켈레톤 대표팀에도 길이 보였다. 조인호 총감독이 평창올림픽 전에 세계 3대 썰매 제조업체 중 하나인 브롬리를 직접 찾아가 외상으로 썰매 3대를 구했다. 조 총감독은 “내가 선수 시절 중고 썰매를 타며 아쉬웠던 마음이 컸기에 성빈이가 좋은 성적을 낼 방법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윤성빈이 평창 전부터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브롬리를 운영하는 리처드 브롬리를 주행장비 담당 코치로까지 영입할 수 있었다.

트랙 주행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나 분석이 전무했던 대표팀에 브롬리의 영입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조 총감독이 대표 시절 단 한 대였던 썰매는 지금 상황별로 20대 가까이 갖춰져 있다. 조 총감독은 “브롬리 코치가 경기장마다 트랙 노트를 만들어 분석하고 지도해주면서 우리도 선진국의 썰매 장비와 주행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윤성빈도 “저희 팀이 크게 변할 수 있었던 데는 초반 리처드의 도움이 컸다”며 “몇 년을 같이 지냈지만 본인의 일에 한 치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제 인생 멘토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평창에서 시작한 이런 노력은 베이징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1개월간 국제대회 공백이 있었지만 2020-2021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후반기 6~8차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실력을 입증했다. 조 총감독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성적은 신경 쓰지 말자”고 말했지만, 윤성빈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차례로 열린 6, 7차 월드컵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가져왔다. 정승기도 6차 대회에서 자신의 월드컵 최고 성적인 7위를 얻어냈다.

지난 1월 16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2020-2021시즌 월드컵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윤성빈이 이번 시즌 가장 큰 성과로 꼽는 것은 근력 비중의 변화다. 윤성빈은 “스켈레톤 선수들은 상체 훈련을 하면 몸이 둔해진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아무도 시도조차 안 해봤다. 원래는 하체 근력운동만 한다”며 “저는 스타트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번엔 상체 근력운동도 병행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6~7차 월드컵 스타트 기록에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아이언맨 멋있어서…”

스켈레톤에서 중요한 건 ‘평정심’이다. 시속 141㎞의 속도를 썰매에 엎드린 채 머리를 앞에 두고 타면 체감 시속은 400㎞가 넘는다. 흥분하지 않고 실수해도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큰 대회에선 대표팀의 성적 부담까지 묵묵하게 견뎌내야 한다.

윤성빈은 ‘강심장’으로 유명하다. 큰 대회를 앞두고도 긴장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그에게 ‘멘탈 관리 비법’을 물어보자 “부담을 갖고 올림픽을 이겨냈다면 강심장일 수 있지만, 다르다. 메달은 제게 재미였다”며 “제가 스켈레톤에서 재미를 못 느꼈다면 슬럼프나 번아웃이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제를 불러온 ‘아이언맨’ 헬맷도 그에겐 재미를 찾는 요소다. 그는 “아이언맨 멋있지 않나. 중학교 때 처음 봤는데, 다른 히어로물은 안 끌렸는데, 사람의 온전한 능력으로 히어로가 된다는 걸 좋아했다”며 “썰매 탈 때 보이는 게 헬맷밖에 없다 보니까 그냥 좋아하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을 두고도 “제 인생에서 중요한 시합인 것 같지만 막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며 “그냥 다가오는 대회라 생각하고 똑같이 준비하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코리안컵 3차 대회에서 생각에 잠긴 정승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정승기도 윤성빈의 ‘강심장’을 배우고 싶어한다. 정승기는 “감정에 따라서 잘될 때와 아닐 때의 기록 편차가 크다”며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남들을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코스를 내려가야지’하고 되뇐다. 평창 이후 부담감을 덜어낸 뒤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행 기록을 영상으로 볼 때도 저는 30분 동안 붙들고 있는데, 성빈이형은 한 번 보면 쉽게 이해하고 편하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막내 정승기를 향해 “열심히 해야죠”라며 웃다가도 “잘 따라오고 있다. 이제는 제가 조언할 만한 단계는 지났다. 경력으로는 저랑 비슷할 만큼 오래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데 어색한지 잘 안 물어본다”며 “제가 전수할 수 있는 것 다해주고 싶다. 진짜 잘했으면 좋겠다”고 따뜻하게 격려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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