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부활절, 그 후

2021. 4.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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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영상부장


2021년 부활절이 지났다.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지난 2월 17일 이른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직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지키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묵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수난의 길을 걸어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 희생의 은혜에 감사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순절 지키기는 이제 특정 교파나 교단을 넘어 기독교계 전체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과거 보수적 교회는 사순절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고난주간과 부활주일만 강조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엔 교회력이나 절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깊게 하려는 신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형식적 신앙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물론 사순절이, 그리고 부활절이 지났다고 경건의 훈련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부활절 이후엔 ‘기쁨의 50일’이라는, 오순절 성령강림주일까지를 연결하는 절기가 이어지긴 한다. 다만 사순절이나 부활절만큼 신앙적 긴장 상태를 끌어올리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순절 기간에 신약성경 복음서 구절과 관련 신앙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서적 중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을 2000년 전 유대, 로마제국의 사회 정치 종교적 배경을 토대로 설명한 책도 있었다. 이런 책은 성경 이해의 폭을 깊게 해줬는데 인상 깊었던 장면 두 군데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베다니 마을의 한센병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는 광경이었다. 고대의 한센병은 오늘날 나병과는 조금 달랐다. 피부 발진이나 상처, 외관 손상 등을 포함하는 흉터가 남는 유전적 피부 질환을 가리켰다고 한다. 이 질병에 걸리면 누구든 추방되거나 공동체에서 제명됐다. 유대 율법에서는 나병환자를 만진 사람도 부정하게 취급했다. 이들과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사람도 모두 부정하게 여겼다. 집 안에 신체 일부만 들여도 부정해졌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질병을 가진 시몬의 집에 들어가 식사했다. 어디 시몬뿐인가. 복음서에는 각종 병자와 귀신 들린 자에게 다가가 질병을 고치며 함께 식사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많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행위였다. 이 세족식 구절은 요한복음에서만 등장한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남의 발을 씻기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노예였다. 두 종류의 노예가 있었다 한다. 유대인 노예와 이방인 노예였다. 토라에 따르면 유대인 노예는 6년만 일할 수 있었지만, 이방인 노예는 평생 노예로 살면서 온갖 잡일을 했다. 그들은 부정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당대 가장 낮은 신분인 이방인 노예가 됐다. 고대 사회는 매우 더러웠다. 사람들의 발은 길가의 오물과 먼지로 가득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발을 만지며 씻기고 닦아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 그리고 부활은 부활절 달걀이나 떡을 먹고, 절기 행사에 참석해 연합예배를 드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0년 전 고대 세계나 복음서 저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고난, 부활은 절기 행사가 아니었다. 그의 못 박힌 손과 발, 사망 확인 차 로마 군인이 찌른 옆구리 창상, 그리고 부활 후 제자들과 구워 먹은 생선은 은유적 사건이 아니라 실제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발생했던 지진처럼, 부활을 믿는 신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진동을 이어가야 한다. 역사적 예수는 압제적 종교와 정치, 제도에 저항했으며 가난한 이들의 불행에 열정적으로 공감했다. 그는 당대의 제도권 종교 지도자들을 조롱하고 어리석게 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의 길을 가심으로 세상의 구원자라는 승리를 이뤄냈다. 그는 여전히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며 저항한다. 자기 사랑과 돈 자랑, 교만과 무절제, 난폭과 배신, 무모함(딤후 3:2~5)이라는 휘장을 찢어 버린다.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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