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초선 56명 "이젠 靑·문파 눈치 안보겠다"..文인사까지 비판

김준영 2021. 4. 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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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지도부, 문파(文派)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있게 나가자.”
9일 선거 참패에 대한 원인 분석을 위해 열린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긴급간담회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이날 오전 7시30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강당엔 민주당 초선 의원 56명이 모여들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 174명 중 81명(46%)이 초선이다. 여당 초선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지난해 5월 21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이다. “갑자기 잡힌 일정임에도, 50명 넘게 참여한 건 그간 당 운영 방식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컸다는 의미”(회의 참석 의원)라는 말이 나왔다.

고영인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에서 4.7재보선 참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년간 민주당 초선들은 독자적 목소리 없이 당론을 따라와 야당으로부터 “거수기”, "초식동물" 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3시간 이상 계속된 간담회 논의를 정리한 초선 의원 일동 명의 입장문은 오후 두시에 나왔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주신 국민의 질책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통렬하게 반성한다. 민심은 옳다”는 말이 첫줄이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어느새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이 되어 있었다”며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과신, 일단 시작하고 계획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안일함,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내세워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민주당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다”고 진단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오영환ㆍ이소영ㆍ장경태ㆍ장철민ㆍ전용기 등 2030 의원 5명은 별도로 ‘2030의원 입장문’도 냈다. “참패 원인을 야당 탓, 언론 탓, 국민 탓, 청년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에 저희는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당내에서 비판이 금기시되던 ‘조국(전 법무장관) 사태’에 대해서도 “(당시) 조국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제 검찰개혁은 국민의 공감대를 잃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20~30대 초선 의원들이 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입장문을 내기 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공개 간담회에선 당ㆍ정을 향한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고 한다. 30여 명의 자율 발언이 이어졌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무능ㆍ내로남불ㆍ오만ㆍ위선’에 대한 반성에 더해 청와대와 지도부가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여온데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선 “열린우리당의 108번뇌(제어되지 않는 17대 초선의원 108명을 의미)를 거론하며, 초선들의 입을 막으려는 지도부가 결국 민주당을 이렇게 만들었다”거나 “국민 여론과 상관 없이 친문 회전문 인사만 계속하는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문제였다”, “국민들 눈 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는 하지 말라고 청와대에 요구해야 한다. 인사 원칙이 다 무너졌다”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의 인사권에까지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또 일주일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도종환 의원이 친문계임을 지적하며 “이게 반성의 자세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도 있었다. 앞당겨진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와 관련해 “초선 의원 일동 명의로, 친문 인사는 후보로 출마하지 말라는 공식 제안을 하자”는 말도 나왔다. 다만 “후보 제한까지는 과한 것 같다”는 반론도 있어 입장문에선 빠졌다. 대신 “우리가 직접 출마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지도부에 맞서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고해성사도 이어졌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3월 발의해서 6월 입법하라는 지시에만 충실했다. 민심과 다른 걸 알면서도 그대로 추진했다”(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 “부동산 정책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국회 통과에만 매달렸다”(국회 국토교통위원) 등의 말들이었다.

초선 의원들은 ‘더민초’(가칭)라는 모임을 정례화하고 오는 12일 다시 모이기로 했다. 초선 의원총회를 수시 개최하고, 쇄신안을 준비해 지도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향후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당내 친문계 핵심 인사들과의 갈등이 커지고, 당·청간에도 격랑이 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초선들 사이에선 “개혁 때문에 졌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이야기”(김용민 의원)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의원은 초선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개혁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졌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날(8일) 페이스북에도 “검찰개혁, 언론개혁 중단없이 추진하겠다”며 ‘불공정’의 주체를 검찰과 언론에 돌렸다. 김 의원과 함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법관 탄핵에 적극적이었던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도 같은날 페이스북에 “검찰개혁ㆍ언론개혁ㆍ사법개혁은 180석의 힘이 아니고선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본다. 중도층 눈치 본다는 명목과 그 정도 해도 된다는 오만함으로 개혁을 게을리한 민주당 지도부의 잘못과 실수도 크다고 본다”고 썼다.

이같은 초선들의 움직임에 대해 익명을 원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초선 내부에 성향이 천차만별”며 “무작정 지도부와 청와대를 때리려들거나 오히려 개혁 미진이 패인이라는 식의 목소리가 커지면 열린우리당 시절 ‘108 번뇌’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초선들이 쇄신 동력을 만든다는 건 긍정적이지만 친문ㆍ친조국 성향의 초선이 적잖은데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지는 모르겠다”며 “실질적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아 눈속임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거나 방향 없이 내홍만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당내 원로그룹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끌려다녀서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권이)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받아줬고, 스스로 지지층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한 말이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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