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깁스 풀던 날, 의사의 태도가 인상 깊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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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기자]
▲ 구슬 바닥에 무질서하게 쏟아져 있는 구슬 속에서 매일의 하나를 주워 실에 꿰어 나가는게 삶이 아닐까. |
ⓒ 김현진 |
삶을 구성하는 것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낱낱의 실체다. 작은 구슬처럼 눈에 보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삶을 만든다. 바닥에 무질서하게 쏟아져 있는 구슬 더미 속에서 매일의 하나를 주워 실에 꿰어 나가는게 삶이다.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 색색깔의 다양한 구슬들이 뒤섞인 혼돈 속을 들여 다 보아야 한다. 엇비슷해 보이는 구슬들 속에서 내 것을 고르고 구슬에 뚫려 있는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구멍을 찾아내어 엉클어진 실 끝을 매만지고 다듬어 간신히 구멍에 끼워 넣는 것이다.
구슬을 잡지 못할 때도, 구멍을 찾지 못할 때도, 풀어진 실의 끝이 영영 다듬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하나씩 구슬을 꿰며 늘려가는게 인생일 것이다. 때로는 깨진 구슬이, 대부분의 날에는 닳고 닳아 광택을 잃은 것,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있는 구슬이 잡힌다. 드물게 오묘한 색으로 빛을 발하는 멋진 구슬을 찾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구슬 하나가 그동안 쌓인 구슬들 곁에서 마침표처럼 무언가를 완성하기도 한다.
병원에서의 갑작스러운 소란
아이가 팔꿈치가 부러져 두 달여 동안 하고 있던 깁스를 풀러 가는 날이다. 깁스를 푼다는 사실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나와 아이에게 깁스를 한 채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고, 그 사이 통깁스(팔 전체를 감싸고 있는)에서 반깁스(팔의 아래쪽면만 감싸고 있는)로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긴장이 줄고 아이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도 희미해 졌다. 예전엔 3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는데 늑장을 부리다 시간에 딱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간호사들이 있는 접수대에서 큰소리가 났다. 중년의 아저씨가 요청한 서류에 오류가 있다며 항의하고 있었다. 소란이 커지지 않게 간호사가 빠르게 응대했지만 아저씨의 목소리엔 더 힘이 실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제대로 일을 처리했으면 내가 이러겠느냐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 보였다.
병원을 다니며 여러 번 불만스런 상황을 경험했다. 환자보다 병원과 의료진의 편의, 정해진 시스템을 우선으로 하는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아저씨의 분노에 공감이 갔다. 환자의 불편을 의료진이 제대로 헤아려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목소리를 높여야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싶어 씁쓸했다.
소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지 간호사는 아저씨와 함께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언쟁은 계속되었다. 진료실 문이 열려 있어 아저씨와 의사의 목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목소리를 높이는 환자에 맞서 의사의 목소리도 커졌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점차 불안이 고조되고 불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다툼에 대한 궁금증보다 걱정이 앞섰다. 호전적인 공격으로 감정이 상한 의사가 우리 아이의 진료를 제대로 봐주지 않을까 봐. 다른 일로 받은 부정적 감정이 환자의 진료에 영향을 줄까 걱정되었다. 정리가 되었는지 아저씨가 떠나고 차분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의사의 기분은 어떨까. 언짢아서 무뚝뚝해 져 있는 건 아닐까.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는데 조심스러웠다.
예상치 못했던 의사의 반응
의사가 유난히 환한 미소와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다. "이제 다 나았네!" 하면서 아이 팔에 고정되어 있던 캐스트를 벗기고 팔을 움직여보게 했다. 오랫동안 고정해 두어 굽혔다 피는 움직임에 통증이 있을 법도 한데 아이는 자연스레 팔을 움직였다. 역시 아이들은 유연하다며 의사가 웃었다. 이제 정상적으로 생활하면 되고 팔이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3개월 후에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조심스레 팔이 휘지는 않을지 물어보았다. 팔꿈치 골절의 경우 자라면서 휘는 후유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의사는 웃으며 그러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다친 것보다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진짜 끝이구나, 진짜로 터널 밖으로 나왔구나. 터널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은 이렇게 환하고 후련한 거였다.
의사에게 특히 고마웠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후라 감정 수습이 잘 안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걸 털어내려는 듯 애써 더 밝은 모습으로 환자를 대한다는 게 느껴졌다. 의사라는 직책에 늘상 마스크를 끼고 있어 나이보다 중후한 인상을 풍겼었는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OO아,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넬 때, "다 풀자!" 하며 환하게 웃을 때 개구장이 소년 같은 모습이 비쳤다. 어쩌면 그 얼굴이 의사가 아닌, 편안한 상태에서의 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아프고 불편했던 긴 시간이 끝나고, 완쾌해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의사가 진심으로 공감해주었기에 더 즐거웠다. 부정적 감정을 재빨리 털어내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감정 회복에 애쓴 그에게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
깁스를 푼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일 줄 몰랐다. 찌그러진 구슬들을 간신히 꿰어낸 끝에 드디어 고운 빛깔에 매끈하게 동그란 구슬 하나를 주운 느낌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모난 구슬들 밖에 끼울 수 없어 가슴 아파하고 힘겹게 숨을 고르던 시간들이 귀하게 여겨진다. 오늘 찾은 동그란 구슬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도 찌그러지고 모난 구슬들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일 테니까. 아이의 깁스 생활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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