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꼭 하는 일.. 잘 버텨준 진달래가 고맙습니다

이숙자 2021. 4. 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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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하듯, 올해도 화전을 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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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는 날만을 나는 기다린다. 올해는 다른 꽃 소식이 빨리 왔다고 다른 지역에서는 말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봄이 항상 뒷걸음을 치듯 늦게야 걸어서 온다. 요즈음 공원 산책을 할 때마다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며 길을 걷는다. 진달래꽃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술래를 찾듯 두리번거린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드디어 산책길에 활짝 핀 진달래를 보고 반가움에 기다리던 친구을 만난 듯 마음이 환해졌다. 나는 꽃이 핀 언덕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진달래꽃과 눈을 마주친다.

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멀리서 찾아온 친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겨울 추위를 견디고 예쁘게 꽃을 피워낸 진달래꽃', 기특하고 고맙다. 진달래는 내가 봄이 오면 기다리는 그리워 하던 친구 같다.

그런데 그날은 아쉽게 꽃을 따서 담을 그릇이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마음만 졸였다. 오후에 또 진달래꽃을 따러 갈까 망설이다가 생각을 멈춘다. '그래 내일 가서 따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다 지고 말지는 않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독인다.

야속하게 주말 내내 비가 내렸지만  

다음 날 주말에는 야속하게 비가 오고, 또 다음날도 비가 왔다. 나는 진달래꽃이 지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빗속에라도 달려가 진달래꽃을 따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다. 꽃이 지지 않을까 초조하고 염려가 되고, 시간이 길게 흐르는 듯 지루한 이틀을 보냈다. 진달래꽃은 꽃잎이 약해서 하루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 진달래 꽃 따가지 온 진달래 꽃은 수술을 제거하고 꽃잎만 다듬어 놓는다
ⓒ 이숙자
월요일, 시니어 클럽을 다녀오면서 집으로 가지 않고 가방을 들고 외출복을 입은채 월명산을 올랐다. '꽃은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다행히 꽃은 완전히 시들지 않았지만 지난 금요일 보았던 꽃만큼 싱싱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지 않고 나무에 달려 있어 기뻤다. 꽃잎이 진하고 예쁜 것만 골라 땄다. 2~3일 정도 지났는데 꽃은 벌써 시든 모습이다. 

사람 사는 일도 한순간 마음을 놓으면 때를 놓치고 낭패를 보기 쉽다. 수많은 날 세월은 가고 계절은 바뀌어 봄은 다시 찾아온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찾아와 축제를 하듯 많은 꽃을 피워 낸다. 삶에 지치고 우울했던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과 살아 있음은 축복이다. 누구는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예전 젊은이들이 사월에 숨져간 슬픔을 이야기하는 듯해 마음이 아려온다.    

진달래를 따다가 화전을 부쳐 한 잔의 차를 마실 때가 내 삶의 기쁨이고 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환희다. 잠자고 있던 대지도 깨어나고 모든 생물은 새로운 생명이 깨어난다. 갖가지 꽃들이 피어 봄은 마치 천연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답다.

삶이란 순간이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자기만의 정해진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자기의 몫은 소멸하고 만다. 봄이 오면 나는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봄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마음을 놓으면 날아가 버리는 일들, 긴장을 하고 시간을 붙잡는다. 화전을 부치는 일도 그중에 하나다.
 
▲ 동그랗게 만들어 놓은 새알 화전 하기전 만들어 동그랗게 만들어 놓은 것
ⓒ 이숙자
▲ 푸라이 팬에 올려 놓은 화전 푸라이 팬에 서 기름을 넣고 지진다
ⓒ 이숙자
 
화전을 부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찹쌀을 3시간 이상 물에 불린 후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다. 그다음 팔팔 끓인 물로 반죽을 한다. 그런 다음 팥죽 새알처럼 동글하게 만들어 동그랗게 늘려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른 다름 지진다. 

한쪽을 익힌 후 뒤집은 뒤 다듬어 놓은 꽃을 올리고, 아래 부분이 익으면 화전이 된다. 그럴 때 재빨리 꺼내 꿀을 바르고 예쁘게 담아 먹으면 된다. 생각보다 쉽다. 

화전을 부친다, 화사한 봄이 온다 
 
▲ 만들어 놓은 화전 완성된 화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놓은다
ⓒ 이숙자
▲ 만들어 놓은 화전 사각 접시에 담아 놓은 화전
ⓒ 이숙자
 
나는 매년 화전을 부치고 봄 마중을 하듯 계절을 보낸다. 살면서 내가 몇 번이나 이 봄을 맞이하고 화전을 부칠까, 나이가 들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마음만 내는 되는 일, '봄이 오면' 노래를 흥얼거리면 살아가는 시름도, 코로나의 아픔도 눈 녹듯 사라진다. 인생이란 사는 게 별 건가, 하고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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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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