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이 장면] 낙원의 밤
최근 들어 한국 액션 영화 캐릭터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총을 든 여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쉬리’(1999)의 이방희(김윤진)가 있긴 하지만,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여성에게 총을 허락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암살’(2015)의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은 역사적 인물을 토대로 한 캐릭터. 그렇다면 ‘악녀’(2017)의 인간 병기 숙희(김옥빈)나 ‘미옥’(2017)의 현정(김혜수) 그리고 ‘마녀’(2018)의 초능력 소녀 자윤(김다미) 등은 순전히 장르적 캐릭터로서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연출한 ‘낙원의 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으로 압축되는 ‘낙원의 밤’에서 남자는 범죄 조직의 일원인 태구(엄태구)이고, 여자는 제주에 피신한 태구가 만나는 재연(전여빈)이다. 여기에 복수와 배신에 굶주린 악당들이 달라붙는다. 일견 감독의 전작인 ‘신세계’(2013)를 연상시키지만, ‘낙원의 밤’은 재연의 손에 총을 쥐여주면서 특별해진다. 수컷들의 피비린내 나는 세계에서 재연은 그들을 넘어선 존재이며, 그가 총을 통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남성들이 칼로 만들어내는 살육의 끈적한 육체성을 초월한 금속성을 지닌다. 뜨거운 감정과 차가운 총기 그리고 유일한 여성 재연. ‘낙원의 밤’의 독특한 감성은 이 조합에서 나온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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