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문제, 트럼프도 버핏도 떳떳할 수 없다

김현길 2021. 4. 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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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 외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360쪽, 1만9800원.
2016년 10월 9일 미국 대선 후보 두 번째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향해 발언하고 있다. 당시 트럼프는 자신의 세금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클린턴을 지지하는 워런 버핏 등도 세금을 많이 내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첫 번째 토론에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클린턴의 공격에 “그래서 내가 똑똑한 거요”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는 세금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양가적인 인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AP뉴시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등 힐러리 클린턴을 후원하는 많은 사람들도 큰 공제를 받아요.”

2016년 10월 9일 미국 대선을 30일 앞두고 열린 2차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세금 회피에 대한 질문을 받자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인사들도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버핏은 토론회 후 ‘도널드 트럼프를 위한 세금 관련 몇 가지 사실들’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놨다. 성명엔 2015년 세금 신고서에 기재된 버핏의 총소득(1156만3931달러)과 공제액(547만7694달러), 연방소득세(184만5557달러) 등의 정보가 담겼다.

버핏은 “국세청 감사를 여러 번 받았고, 지금도 받는 중인데 세금 정보를 공개해도 문제가 없다”며 “트럼프씨도 마찬가지겠죠. 적어도 법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은 트럼프와 달리 성실한 납세자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저자들은 2015년 기준 653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한 버핏이 내는 세금 규모를 감안할 때 그 역시 ‘탈세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비튼다. “성실납세자는 모두 비슷하지만, 탈세자들은 모두 제각각인 셈이다.”

‘합법적 탈세’ 권하는 사회


‘그들은…’는 세금 신고 내역을 공개한 버핏마저 ‘탈세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왜곡된 조세 구조를 고발하는 책이다. 한때 가장 가파른 누진율을 자랑했던 미국에서 슈퍼리치가 중산층이나 그 이하의 소득계층보다 낮은 실효세율을 적용받게 된 연원을 따진다. 이를 바로잡을 구체적 제언도 덧붙인다. 토마 피케티와 미국 소득 불평등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를 만든 이매뉴얼 사에즈 UC버클리 교수와 같은 학교 조교수 게이브리얼 저크먼이 책을 썼다.

저자들은 먼저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부터 밝힌다. “부의 비민주적 집중”을 문제시했던 20세기 초반 미국은 누진율을 가진 재산세를 도입하는 등 세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엔 소득세 최고 한계 세율이 100%에 육박할 정도였다. 기업 이익에 부과하는 법인세도 1951년부터 78년 사이 48~52%를 오갔다. 오르내림은 있지만 노동계급과 중산층보다 부자들이 높은 실효세율을 부담하도록 누진적인 체계를 갖춘 것이다.

상황은 81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후 급변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공화당은 그간의 조세 제도를 “비미국적”이라 규정하고, 최상위 구간 소득세율을 28%로 뚝 떨어뜨리는 ‘세금개혁법’을 통과시킨다. 여기엔 여야가 없었다. 상원 표결 결과는 97대 3. 테드 케네디, 앨 고어, 존 케리, 조 바이든 같은 민주당 인사들도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세율을 낮추는 조세 개혁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되풀이된다.

‘합법적 탈세’를 조장하는 조세 회피 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탈세업자들은 고객에게 투자 명목의 허위 손실을 만들어주거나 이익을 나누는 방법으로 세금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80년대 중반 개인과 법인을 포함한 연방소득세액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년 경기침체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세율 인하로 조세 회피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세계화와 함께 다국적 기업들이 버뮤다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 회피처에 둥지를 튼 것도 조세 제도 무력화를 부채질했다. 페이스북 지분 20%를 보유한 마크 저커버그가 2018년 배당을 받지 않아 소득세를 내지 않고, 법인도 세율 0%인 케이맨 제도에서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처리돼 법인세를 내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같은 소득엔 같은 세금을

세금 줄이기가 오늘날 조세의 역진성으로 연결됐음을 저자들은 통계로 입증한다. 2018년 미국 전체 인구를 15개 집단으로 나눠 연방세, 주세, 지방세 등을 합친 실효세율을 계산한 결과 이들 소득집단은 각각 25~30%, 평균 28%의 세율을 부담하고 있었다. 반면 가장 부유한 400명은 23%만 세금으로 내고 있었다. 책은 이러한 문제를 정부 재정과 연결하기보다 불평등 문제에 더 집중한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 줄이기가 노동 계급의 임금 상승 같은 낙수효과로 이어진다는 감세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특히 1946~2018년 사이 소득에 따라 100개 집단으로 나눈 후 각각의 소득 증가율을 계산한 결과는 세금과 불평등의 관계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한다. 46년부터 80년까지 거의 모든 집단은 경제성장률(2%)에 맞게 소득도 비슷하게 증가했지만 레이건 정부 출범 이후인 80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조세 개혁 이후인 2018년까지 대부분 집단의 소득 증가는 경제성장률(1.4%)을 밑돌았다.

프랑스와 비교는 미국의 문제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미국은 1인당 평균 소득이 프랑스보다 30% 정도 높지만 소득 하위 50% 평균 소득은 프랑스보다 11% 낮다. 반면 80년 미국 노동 인구 하위 50%의 평균 소득은 프랑스보다 2000달러 더 높았다. 이는 노동시간, 사회보장 혜택을 제외한 소득만 고려한 것으로 복지 정책에 따른 정부 재정을 감안하면 미국 소득 하위 50%의 사정은 더 열위에 놓인다.

저자들의 해법은 같은 소득에 같은 세금을 부과하고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도입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조세 회피처 문제 해결을 위해선 세금 문제를 무역 정책의 중심에 놓는 등 국가 간 공조를 시행해 기업이 어떤 국가에서 어떻게 이익을 얻든 실효세율을 동일하게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세율에 차등을 두지 말고 전체 부를 감안해 세금을 부과하도록 세제를 개편할 것을 주문한다. 부의 탈집중화를 위한 누진율을 갖춘 부유세 도입도 해법에 포함된다. 저축을 포함한 모든 소득에 과세하는 ‘국민소득세’를 신설해 건강보험, 교육, 노후 대비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책은 세금과 불평등 문제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불평등 문제를 다룬 이전 논의들과 연결된다. “‘21세기 자본’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해법을 모색하는 책”이라는 역자의 말처럼 자본에 더 비중을 둔 피케티의 문제의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공정하다는 착각’ ‘엘리트 세습’처럼 노동소득의 격차 확대와 그 세습을 지적한 능력주의 비판에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여러 통계와 숫자가 난무하지만 책 자체는 술술 읽히는 편이다. 조세 제도에 관심 있는 독자에겐 책에 소개된 웹사이트(taxjusticenow.org)도 유용하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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